-
-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ㅣ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다다미넉장반신화대계 #모리미도미히코 #청춘소설 #비채 #비채3기서포터즈 @drviche
<다다미 넉 장 반 사랑의 훼방꾼>
대학 3학년 봄까지 이 년간 실속없이 살아온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노여움에 휩싸인다. 악명 높은 사랑의 훼방꾼이 되어 마장에도 가까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말에게 걷어차여 죽을 까봐. 내가 발을 들여놓은 배경에는 나의 숙적이요 맹우인 오즈가 있다.
타인의 불행을 반찬으로 밥을 세 공기 먹는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의 영혼은 맑았으리라. 1학년 영화 동아리 '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애초에 화근이다. 나답지 못하게 그의 감언에 현혹되어 가입한 그날 이후 이 년을 훌쩍 넘겼다.
3학년이 된 5월 초, 영화 동아리 '계'에서 자체 추방당한 참이다. 애초에 오즈와의 악연이 질기게 이어진 이유가 시모가모 유스이 장에 묵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찾아 온 이유는 '스승'이란 자가 있어서고. 우연히 라면 포장마차에서 신과 마주친다.
나에 대해서는 뭐든 다 안다는 가모타케쓰누미노카이를 자칭하는 남자는 오즈와 저울질까지 하면서 아카시와 맺어주겠다고 한다. 어쨌거나 판단력에 대한 기대를 접었더라면 비뚤어진 동아리에 들어가지도 않고, 꾸불꾸불한 오즈라는 인물을 만나지도 않고, 사랑의 훼방꾼이라는 낙인이 찍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다미 넉 장 반 자학적 대리대리 전쟁>
무슨 제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히구치 스승님인 히구치와 얼간이가 아닌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남자'로 표현한다. 거북 수세미같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히구치의 무수한 우행 중에 조가사키와의 치열한 '자학적 대리대리 전쟁'이 있었다.
스승의 교묘한 기술을 하누키 씨는 '히구치 매직'이라 부른다. 악연이라 부르고 싶은 오즈와 스승만 없었더라면 대를 이어 바보같은 대리전쟁을 이어가지도 않았을테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았을까? 그건 장담할 수가 없다.
대학 3학년 봄까지 이 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로 시작해서 그렇게 더러운 것은 필요 없다로 끝나는 네 편의 이야기는 다다이 넉 장 반의 공간에 사는 얼간이 나와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엉뚱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내내 티격태격하는 얼간이 나와 오즈, 무시무시하게 조직적인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카시, 쥐똥 만한 카리스마로 군림하는 조가사키. 과음하면 느닷없이 남의 얼굴을 핥는 하누키, 정상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는 히구치 스승. 단골멘트 콜로세움을 외치는 노파까지. 다양한 캐릭터 집합소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는 한국어판 출간 17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동명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의 일러스트를 표지로 해서 안팎이 모두 새로운 책으로 재탄생되었고 16년 만에 속편으로 귀환했다.
모리미 작가는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는 독특한 세계관과 문체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본인이 대학시절을 보낸 교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교토 청춘 판타지'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닮은 듯 다른 듯 장마다 예측불허로 변주되는 치밀한 구성,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는 똘끼 가득한 천재가 분명하다. 다다미 넉 장 반 속의 천태만상 교토 청춘들의 신화대계 탄생은 변함없는 운명이지만, 오합지졸 청춘들의 이야기는 결국 청춘예찬이다. 그저 마음껏 읽고 즐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