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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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거친 황갈색털의 책표지가 인상적이다. 인류학을 전공한 나르타샤 마르탱이 곰의 습격을 받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곰이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고 나는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첫 문장이다. 곰에게 공격당해 찢기고 부서진 나스타샤. 시간관념을 잊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누군가 찾으러 온다. 반의식 상태로 이송되고 숨이 막히고 곰과의 일 이후로 처음으로 의식을 잃는다.

다시 깨어나자 침대에 묶여 있다. 튜브 하나가 코와 목구멍을 지나간다. 기관절제술, 알몸으로 묶여 누군가가 튜브로 넣어주는 액체를 먹으며 인간성의 경계의 한계 끄트머리에 선다. 이들은 곰에 대항해 생존한 여자가 치러야 할 대가를 톡톡히 요하고 있다. 언젠가 이 순간을 모두 기록할 거라고 다짐한다.

다행이도 병실에서 보내는 밤들은 지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초현실적이다. 당번 간호사를 부르는 원장의 부름에 매일 밤 반복되는 신음소리는 성적인 고찰 덕분에 기운을 찾고 고통이 완화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믿지 못한다. 곰과 정면으로 맞붙고 닷새 만에 독서를 한다.

이 황폐한 페트로파블롭스크의 중환자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는 나스틴카에 대해서다. 저주로 곰으로 변한 애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애인은 그녀에게 보일 수 없다는 슬픔에 죽고 만다. 이름이 같은 소녀의 이야기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불현듯 끝내 나를 잡아먹지 않은 나의 곰을.

곰이 턱 한조각을 자기 턱 안에 넣고 가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오른쪽 광대뼈를 부러뜨렸기 때문에 곧 수술을 해야 한다. 어머니와 오빠가 캄차카 반도로 올 거라는 소식을 듣는다. 마지막 수술은 잘 끝나고 안드레이가 찾아온다. 나스티아, 곰을 용서했어?

곰은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표식을 남기고 싶어 했다고..이제 미에드카,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라고 한다. 다리아와 그의 아들 이반과 함께한 시간 그들은 그 특별한 날에 대해, 곰을 맞이하러 달려갔던 그날에 대해 얘기한다.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북동부에 거주하는 에벤인을 대상으로 인류학 연구를 진행하던 중 캄차카 화산 지대에서 곰의 습격을 받고 얼굴 전체와 오른쪽 다리가 찢기고 턱 일부마저 사라지는 극한의 위기속에서 등반용 얼음도끼를 휘둘러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곰과의 폭력적인 만남과 타자성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펴냈다"는 평과 함께 프랑수아 소메르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물아홉살이라는 젊고 아름다웠을 나스타샤 마르탱이 느꼈을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프랑스에서 다시 진행된 수술 또한 고통은 더 심했으리라 본다.

P107
무엇인가 일어난다
무엇인가 다가온다
무엇인가 나에걱 닥쳐든다
나는 두렵지 않다

곰 이전에 마추카였고, 이제는 반반인 미에드카가 된 것은 내 꿈이 그의 꿈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곰의 주둥이로 이끈 꿈과 같은 꿈이라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너무나도 무섭기 때문이다. 과거의 결속에서 자신을 해방하는 이상한 과업이다.

멜랑콜리가 세상에서 비롯되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의미가 있긴 하다고 받아들인다.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날의 사건은 캄차카 반도의 산 어딘가에서 곰 한마리가 프랑스 인류학자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사건은 곰 한마리와 한 여자가 만나고 세상의 경계가 파열한 것이다. 이것은 현실과 신화의 만남이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고, 꿈과 실재의 만남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고 불가능한 일에서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영화 레버넌트가 떠오르면서 무시무시한 곰에게서 살아날 확률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리라 본다. 나스타샤 마르탱은 이 엄청난 사건을 의연하게 바라보며 <야수를 믿다>라는 어떤 틀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들을 믿는다는 의미로 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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