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아시스
김채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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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작가님이 그동안 발표했던 작품들을 묶어 낸 소설집이다.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부터 미발표작까지 여덟 편의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보겠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아무도 아닌 날에 동우와 석용과 성아가 만났다. 유림이 새벽 일찍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고 서로에게 연락을 했다. 세 사람은 유림이 살던 원룸에 남아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만났는데 밥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시종일관 비춘다. 현관이 수국 뒤에 있는 것과 뭔 상관인지 모르겠다. 다만 친구의 비보를 들은 세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삶도 여전히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빛 가운데 걷기>
노인은 자신의 딸을 위해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동안 언제까지고 이렇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손녀를 낮잠 재우고 산책길에 나선다. 양지를 걷고 폐에 염증이 생기지도 않은 채로 잘 지냈고 아직 할 일이 충분히 남아 있다. 노인의 주변인물들이 아무 상관없이 나열된다. 남은자의 버팀과 심리적인 견딤을 빛 가운데 걷기로 표현한듯 하다.

<서울 오아시스>
어떤 사람은 건강하지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다던 외삼촌이 강가에서 실종되었다. 우리가 이사를 갈 것이라고 짐작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욕심내지 않고 살기를 택한다. 손을 움직이고 싶다는 엽서를 보낸 엄마는 병원에 있다. 외삼촌하고의 과거와 학교에서의 연극 럭키 클로버에서 맡은 배역 나무를 떠올린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서울의 오아시스일지도 모른다.

<쓸 수 있는 대답>
아르바이트를 마친 유림이 승용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다. 운전자는 중년이었고 유림의 다리에서 피가 많이 나자 구급차를 부른다. 언젠가 보험사 직원이 알려준 정보가 치료가 끝날때까지는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먼저 합의하자고 말한다. 밥먹자는 성아의 전화에 사고가 났다고 전한다. 자살하기를 그만둔 유림의 이야기가 왠지 자살로 마감되어 슬프게 읽힌다.

<영원 없이>
정부영의 어머니는 정부영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자살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던 집은 먼지 뿐이다. 정부영이 자살에 실패한 이후로 떠나버렸다. 근래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 어려움을 느끼지만 오래전 아동 병동에서 배운 것들은 좀처럼 잊지 않는다. 난 정부영을 잘 모르겠다.

<럭키 클로버>
자영은 그럭저럭 자두 농장을 해나가고 있다. 자영의 엄마는 농장을 물려주고 떠났다. 종종 엄마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벌목된 나무 밑둥 아래서 처음 클로버 병정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걷거나 뛰지 못했다. 한 다발로 태어난 여덟 명의 클로버 친구들은 농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제식훈련을 한다. 보초서는 일을 좋아하는 파수꾼 클로버들과 떠난 엄마를 용서하려 한다.

<외출>
말을 아주 길게 하고 싶은 사람, 그러니까 말을 아주 길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는 못한 사람이 적은 글이다. 사실 이미 한차례 소개된 바 있다. 노인이면서 외조부는 화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노인이 가고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이렇게 자랐구나 싶다.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구아미는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을 정성 들여 기르고 있다. 다 자란 오렌지 열매를 기계에 넣고 납작하게 말려 먹는다. 구아미가 하는 혼잣말을 듣는 것은 오아름뿐이다. 남은 자는 잊지 않기 위해 소설도 쓰고 걷고 살아간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상실과 부재가 심리적인 것에 고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한한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백을 방법화하는 소설집이다. 인식과 지성을 통해 어딘지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고 여겨온 우리의 오랜 믿음 체계가 아니라, 불가해함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공백 쪽에 서 있다. 사라짐, 공백으로부터 시작하는 무한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서울 오아시스>는 단편이면서 긴 장편을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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