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에 불을 지르고 - 제4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전강산 지음 / &(앤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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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큐 촬영 현장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온 건지 선배에게 연락이 온 건 4년 만이다. 스마트 양돈 농장에 관한 다큐로 청년 세대의 귀촌을 유도하기 위해 외주 받은 프로젝트라고 했다.

건지 선배가 M단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영화판에서 행방불명된 이후 내가 우리 과에서는 두번째, 여성 감독으로는 영화제 최초였다. 자기 작품으로 상업 영화 판에 데뷔할 거란 기대를 받았다.

선배는 한 달만 고생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라고 한다. 공고를 꼼꼼히 살펴보니 욕심이 났고 하겠다고 답한다. 눈 감고 한 달만 죽었다고 생각하자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다.

형식적인 면접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켜니 진수의 스토리가 올라와 있다. 모든걸 누리고 있는 진수는 연인이면서 동지였다. 진수와는 수차례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 결국 헤어졌다.

이번 기회를 성장의 기회로 쓰자고, 아주 잠시 생업 전선에 뛰어든 것뿐이라고 선배처럼 되지 않으리라 맘먹는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전 숙소를 물어보자 대표는 농장주가 동생이라고 한다.

양돈 농장은 방송에 나와 봤자 도움되는 것도 없대서 설득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거들먹거린다. 적산가옥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지만 대충 아는 척하고 칭찬하자 입을 찢으며 웃는다.

드디어 스태프들과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일촬표 마지막에 굵은 글씨로 당부 사항이 적혀 있다. 농장주를 돼지아빠라는 캐릭터로 구축시킨 치밀함이 지자체로부터 입찰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표가 물려받았다는 적산가옥은 압해에 도착해서도 산골짜기안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탐진강 내리막 도로 끝에 적산가옥과 축사가 보인다. 대표는 잘생긴 동생에게 우리들을 소개 한다.

촬영은 지체 없이 진행된다. 500마리의 돼지를 기르는 축사와 돼지아빠를 카메라에 담는다. 촬영이 끝나자 선배가 꾸중을 한다. 보조로 들어온 입장이라 못 견디게 화가 나지만 스스로를 위로한다.

둘째 날은 직접 키운 돼지를 구워 먹으며 육질을 체크하는 장면을 찍는다. 대표는 조금만 더 힘내고 마지막 주에는 바다에 놀러 가자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선배의 계속되는 질책에 유리 씨만큼 못하고 있는것 같아 자꾸만 수치스러워진다.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나오고, 촬영이 있던 사이 군청에서 적산가옥의 LPG 가스통이 불씨와 접촉하면 화재가 우려돼 찾아온다.

돼지아빠는 힘들게 일하는데 이런 환경이라 미안하다며 벽난로가 있는 지하실로 안내한다. 유리 씨와 서로를 달래며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여긴다. 하지만 바로 대표의 질타가 쏟아진다. 초 단위로 쪼개서 쓰라고 한다.

바닷가 외진 양돈 축사에서 이루어지는 다큐 촬영은
영화 감독의 삶과 예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대립적이고 화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끝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애쓰는 주인공 나연이를 다루고 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을 발견하고 서늘하고 암시적인 깨달음은 조화와 소통에 대한 접근 방식이 매력적이다. 딱히 주인공만의 일이 아닌 꿈을 향해 어렵게 한 발씩 딛고 나가는 청춘들의 고달픈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유리도 마찬가지고 진수도 여전히 급여 앞에서 성장과 맞바꾸는 굴욕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남성 작가가 일하는 여성의 비애도 잘 담아내서 좋았다.

처음엔 제목이 참 이상하고 궁금했다. 다 읽고 나니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제목이 스포다. 이런 깨달음이 주는 웃음이라 뒷끝은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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