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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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거두는시간 #이선영 #비채 #비채2기서포터즈 #도서협찬

이선영 작가님 초면이신데 여러 작품을 발표하신..또 나만 몰랐나. 그럼 다가가 보겠다.

이모가 자서전을 출간하고 싶다고 오 여사를 통해 듣는다. '디자이너 오선임'은 엄마의 막내 동생이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던 이모는 이모부가 회사를 그만둘 즈음 떠밀리듯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다. 의상학과를 나온 이모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지 모른 채.

이모의 첫 사업은 명동의 양장점이고, 밀라노로 유학길을 강행한다. 이모부도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결혼 십 년을 훌쩍 넘겨 늦둥이를 출산하자 이모부는 형서를 보며 외조를 자처한다. 그러나형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별거에 들어간다.

이모부가 한량처럼 밖으로 돌 때쯤 이모에겐 매니저 겸 개인비서의 그림자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고 디자이너로 성공하지만 가족들에게 외면 받으며 형서의 결혼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고스트라이터로 일하는 조카 윤지에게 자서전을 의뢰한다.

이모는 가부장적인 외삼촌들 틈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성장했다. 이모의 얼굴은 쓸쓸한 회한이 스친다. 외가에서 이모는 수치의 표상이다. 외삼촌들은 외숙모를 내세워 필요한 걸 얻어내고 이모부는 호의호식하며 빌붙어 살면서 대놓고 경멸한다.

그런 탓인지 형서도 이모와 절연한 채 살았다. 오여사는 이모를 스님이라 부른다. 정말 이모가 머리를 삭발하고 나타나자 외가에서는 수치스럽게 여겼다. 이모에게 다녀온 이튿날 민혁이란 남자에게 전화가 온다. 강수진을 기억하느냐 묻는다.

앨범에서 찾은 강수진은 사진 밑의 이름까지 잘려져있고, 단체사진엔 매직펜으로 덧칠해져 있고 옆에는 선재가 서 있다. 도려낸 사진처럼 기억도 사라진 채였다. 두 사람을 보는 순간 감정이 올라온다. 누군가를 이토록 도려내고 삭제해버린 걸까.

충격에 놀란 오여사마저 민망해진다. 수진의 부고 소식에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앨범을 꺼내 보지 못했다. 앨범을 박스에 넣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나간다. 강수진이 남긴 물건을 전해주려는 민혁은 단지 강수진을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한다.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을 준비하며 인터뷰를 이어가는 동시에 모자간의 화해를 도모한다.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던 선임의 정체성, 오랜 시간 가족에게 아로새겨진 상처가 점차 드러나는 가운데 자신의 과거 또한 멋대로 편집되어 있음을 회상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가정을 이끌고 고루한 사고방식과 그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선임이 마지막으로 끌어모아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긴 삶을 되찾으려 한다. 또한 침잠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래전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윤지,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욕망과 집착이라는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망각의 바다에 던져진 그물을 거두는 시간은 봉인해 두었던 과거를 끌어 올리며 희생과 용서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죄책감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삶이 위태로워 질지라도. 읽는 내내 뻔뻔한 인간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선임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P200
부조리와 모순으로 점철된 일상은 결국 생의 이면에서 무심히 던진 부메랑의 작용은 아닐까? 간절히 원하는 것을 손아귀에 쥐었을 때, 그것이 차라리 포르릉 날아가는 파랑새이거나 한 줌의 별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손바닥에 깊은 상처를 내는 유리 조각일 수도 있는 법이다.

선임과 윤지 두 사람은 이모와 조카사이면서 과거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 있다. 이제 내려놓으려는 선임과 이제야 깨달은 윤지를 통해 손바닥의 유리 조각을 빼야할 차례다. 질투가 악의가 되어 가시가 된 삶을 참회하려 한다.

망각이라는 편리한 바다에서 걷어올린 시간을 윤지 또한 잊어선 안될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치기나 기억 저편의 치부를 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 올바른 판단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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