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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2
알베르 까뮈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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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에서 세계문학선 리뉴얼 표지 이벤트가 있었다. 리뉴얼되는 도서의 제목과 작가를 맞히는 이벤트였다. 바로 맞힐 수밖에 없는 힌트였다. 바위를 산꼭대기에 끌어 올리는 시시포스를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부조리한 영웅으로 간주한 <시지프의 신화>아니겠는가. 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책이라 여러번 놓아야했고 병렬독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알베르 까뮈는 1957년 역대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3년 뒤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책을 썼을까 싶은 안타까운 작가의 1942년 작품이다. 끝없는 고통의 굴레에 빠진 시지프를 알베르 까뮈는 어떻게 해석했을지 눈으로 확인해보겠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만큼 무익하고도 희망없는 일은 없을거라는 신들의 생각은 일리있다. 신들의 비밀을 누설하고 경시했다는 비난을 받은 시지프의 형벌이다. 이 신화가 비극적이라면 주인공인 영웅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신들은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비참함이 조건이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인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뛰어난 성실성을 가르쳐준다. 이제부터 주인 없는 이 우주는 그에게 불모의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다.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로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보아야 한다.
<부조리한 논증>
자살이 중대한 철학적 문제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바로 부조리와 자살과의 관계를 밝히고, 자살이 어느 정도로 부조리의 해결책이 되는가를 가늠해보는 것에 있다. 과연 부조리가 죽음을 명령하는 것이라면, 논리적인 사고만이 필요하다.
부조리의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발견된 것들의 결과다. 굳이 자의로 목숨을 끊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무릎쓰고 희망을 품어야 할 것인가? 먼저 지성의 차원에서 간략한 검토가 필요하다.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어처구니없는 침묵 사이의 대비에서 생겨난다. 그렇다고 해서 부조리의 감정이 부조리의 개념은 아니다.
부조리한 인간과 부조리한 창조는 지면상 생략한다.
부록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서 희망과 부조리'를 카프카의 모든 예술이 독자에게 다시 한번 더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를 담고 있다. 까뮈는 부조리에서 비켜서는 모든 것. '부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부조리를 바라보는 일이다' 라고 한다. 마침내 부조리의 세 개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 반항, 자유, 열정이다.
"나의 삶, 나의 반항, 나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느끼는 것, 이것이 최대한으로 사는 것이다" 라고 카뮈는 부르짖는다. 신화 속의 한 인물을 넘어서 항상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인간의 참다운 모습이 시지프다.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바위를 밀어올리는 순간만큼이나 바위를 따라 내려가는 순간. 바로 반성하는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간은 반드시 죽기 때문에 인생은 허무하다, 부조리하다' 는 것이다.
카뮈는 자신의 사상이 3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고 한다. 부조리에 대해 언급하며 세 가지 다른 장르로 성찰을 전개한다. 가장 먼저 소설 <이방인>을 쓰고, 희곡<칼리굴라>를, 모두를 한데 모아 철학적인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를 썼다고 한다.
<이방인>은 부조리한 세상에 살인죄를 범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는 이야기다. <칼리굴라>는 부조리한 인간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의 어려움을 역설한다.
<시지프의 신화>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신화속의 인물 시지프를 통해 인간은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부조리에 반항하며 살아가야 할 숙명이란 것을 반항과 의욕을 철학적으로 설명한다.
얕은 지식으로 읽고 느낀점을 개인적인 생각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한다. 뭐든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알베르 까뮈는 대부를 떠올리게 하는 낭만과 고독이 공존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좋다.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그를 더 잘 나타냈던 시간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