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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톰 슐만 지음, N. H. 클라인바움 각색, 김라경 옮김 / 시간과공간사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이야기의 시작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학교 다닐 때의 선생님. 즉 스승으로서의 자격 미달인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놀랍게도 악몽으로 기억될 굵직한 얘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결코 자기 정당화가 아닌 어른이 된 지금에도 큰 충격으로 남아 있는 얘기들이었다.
그 옛날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고 하였 것만, 스승을 폭행하는 제자 이야기를 종종 텔레비전에서 접하면서 그런 류의 아이들의 잘못이 크다는 결론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온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스승,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은 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건 아니다. 100%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겐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기에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생님을 직업으로써만 여기는 스승이 있다면, 또 그렇다고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보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처음 읽은 건 초등학교 때였다. 어릴 적 공공도서관이 집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행운으로 알고 있었던 난, 추천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제목만으로는 말 그대로 어느 한 시인이 죽어 그 시인에 대해 기록한 글로만 알았다.
시골 학교에 다니면서 아직 약지도 못했던 때라, 혹 몰지각한 스승이 있었다 해도 잘 인식하지 못 했던 그때, 아니 내 기억으로는 좋은 분들에 대한 기억이다. 스승에 대한 아픈 기억이 없어도 키팅 선생님은 나에게 아주 존경할만한 인물로 각인되었고, 지금까지 포기하지 못한 꿈인 선생님이란 직업에 대한 나만의 작은 아집도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에 키팅만의 교육방식은 학생들에게는 낯설어 거부감을 일으키고, 동료들에게는 유발난 수업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왕따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요즘 일괄된 교육방식을 벗어나 주입식 교육과는 다른 대안학교를 찾는 이들이 많은데, 대안학교의 표본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개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 꿈 등은 무시하고 무조건 대학만을 강조하는 어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글이다. 우리나라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수능시험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고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있듯 인생에 있어 대학은 이제 통과의례처럼 따라 다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주입식이 아닌 학습을 하려고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당장에 교육 정책이 180도 바뀌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의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제 2의 키팅을 학교 밖으로 내몰지 말고, 많은 교사들이 키팅과 같은 맘으로 학생들을 대할 수 있게 되길를 그래서 스승이 스승으로 남아 존경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