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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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후삼국 시대를 걸치고 왕건이 후백제 견휜 비롯한 신라 경순왕에게 항복을 받아 삼국시대 후삼국 분열된 한반도가 첫 통일왕조를 열 때 중국은 당나라가 절도사 세력들로 인해 분열 결국 5대 10국 시대를 맞이해 북방에선 발해 눈치를 보던 거란이 야율아보기가 세력을 키워서 고비사막 및 몽골지대 및 원수지간으로 여긴 발해를 정벌해 수도 상경까지 한달만에 함락시켜 만주 및 한반도 북부 일부 지역을 차지하자 왕건은 상경(평양) 성을 쌓고 동시에 거란이 보낸 사신들을 유배를 보내고 선물로 받은 낙타를 만부교에 묶어서 아사 시키는 등 거란과의 의도적인 적대정책을 펼피면서 고려와 거란 간 악연은 시작되었다.



1차 거란의 침입 우리가 단순히 시희의 언변으로 이겼다는 소손녕과의 외교담판 이것은 당시 북방의 영토 때주고 협상을 하자는 할지론 원래 수도 개경으로 귀환 항복론 어느 누구도 감히 청천강 이북지역 강동 6주를 되 찾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암울한 상황에 서희의 애국심 한 치의 땅도 내어 줄 수 없다는 의지와 거란 소손녕도 고려군은 완전히 섬멸치 못해 차짓 역공을 당할 수 있단 두려움 둘의 만남은 서로 약점을 숨긴 채 회담으로 오히려 서로의 원하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거란군을 철군시킴과 동시 압록강 동쪽 6주를 얻고 국교를 맺는 것으로 끝났지만 언제든지 다시 양국 간 전쟁이 일어 날 수 있어 서희는 축성와 동시에 서북면에 방어선 구축 및 국경수비대가 방어 중앙군이 모집해 일전 벌히는 창과 방패 방어전략을 세움과 동시 거란의 공주와 결혼으로 긴장상태 완화 시킨 당근도 있었다.

성종과 서휘의 죽음으로 나약한 현종 즉위 이후 강조가 마치 조선의 이괄처럼 국경수비대장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어 목종이 개경이 돌아가 호위해 달라는 부탁에 부하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위협하는 천추태후 및 간신들 제거하자는 의견 받아들여 왕이 시해 당했다 거짓명분으로 개경으로 진격 오히려 목종을 폐위 독약을 내려 죽이고 현종을 즉위시켜 이 쿠테타로 거란이 자기가 책봉한 왕을 살해했다는 명분 삼아 1010년 2차 여요전쟁 발발 중대사 강조와 서북면도순검사 양규가 방비 홍화진을 우회해 삼수진에 진을 친 강조의 군대를 섬멸 강조를 처형시키고 서경(평양)을 공격했지만 양구가 곽주를 기습해 거란군 보급로 끊는 쾌거 이루지만 거란은 서경 대신 우회해 곧장 수도 개경으로 진격 개경이 함락되어 현종은 전라도 나주 깊숙히 피난을 갈 정도 큰 위기 왔지만 적은 군사 3000명 4만의 대군으로 통주 귀주를 수복해 퇴가하는 거란군을 총 공격해 승리로 이끌었다.

귀주 별장 김숙흥이 중랑장 보량과 함께 거란군을 습격하여 10,000여 급을 베었다. 양규는 거란군을 무로대에서 습격하여 2,000여 급을 베었으며 포로가 되었던 남녀 3,000여명을 되찾았다. 다시 이수에서 전투를 벌이고 추격하여 석령까지 가서 2,500여급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1,000여명을 되찾았다. 3일 후에는 다시 여리참에서 싸워 1,000여급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1천여명을 되찾았다. 이 날 세 번을 싸워서 모두 이겼고 다시 그들 선봉을 애전에서 맞아 싸워 1,000여 급을 베었다.

<<고려사>> <양규 열전>


3차는 서휘의 담판으로 얻은 강동 6주로 거란의 성종이 야율자충(야율평행) 사신으로 보내 강동 6주를 반환과 요세 허무는 것을 요구를 고려가 거절하자 명분으로 성종은 소배압에게 정벌도를 하사해 도통으로, 소굴렬(蕭屈烈)을 부통으로 삼아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3차 여요전쟁을 일으키는데 고려는 우리가 아는 평정사 강참찬 상원수,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삼아 군사 20만 8,000 명을 이끌고 영주(寧州, 安州)에 대기시켜 소배압이 수도를 공격하려는 무리수를 두다 오히려 강감찬의 둑으로 몰살 선발대도 금교역에서 기습을 받아 전멸 퇴각하자 강감찬은 김종헌 부대와 함께 진격해 구주성 동쪽에서 전멸시킨다. 이게 바로 한국역사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이라 불린다.

새로 알게 된 점은 강감찬도 서희와 같이 무관이 아닌 총리격인 문하시중과 후작을 겸한 문관이고 귀주대첩 때 받은 무관직 상원수직은 임시 군단의 지휘관이지 정식 공식 무관직은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며 인조 1636년 조선의 참담한 전술적 지휘 무능과 방비를 하지 못해 홍타이지에게 삼전도 굴욕으로 겨우 왕조를 보존케 한 치욕을 보다 오랫만 우리 민족의 외세를 제대로 물리친 사이다 같은 느낌을 받아서 참으로 좋았다. 이 책은 단순히 사건 나열 강조 뿐만 아닌 만화 그림 및 자세한 자료로 이해를 돕고 재미를 돋구는 좋은 소설 형식이지만 이보다 전쟁사 및 어려운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 책을 쓴 길승수 작가께 찬사를 보낸다, 11월 나오는 여요전쟁이 고증 및 징비록처럼 흥미 진진 좋은 결과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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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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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많이 말한다. 특히 전쟁사 같은 경우는 특히 그런 성향이 젤 짙은데... 그렇 수 밖에 없다 전략 전술 병력 무기체계 등 유리한 쪽과 불리한 쪽 지휘관이 어떤 사람이냐 따라서 승리자가 혹은 패배자가 되는 운명이 결정되어진다.

이 책은 블로그 최애 이웃이신 욱이님 (권성욱)님의 올해 신작으로 2차대전 추측군과 연합군 아프리카와의 열강 전투(이탈리아) 보불전쟁 1차대전 마지막은 동족상전 우리에게 상처를 남긴 6.25를 끝으로 맺는 졸장 패장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읽어보고 어느나라보다 특히 추측군 진영이 이런 졸장 한심한 작태의 똥별들이 더 많았음을 이탈리아와 일본제국이 훨씬 무능과 한심 자기만 살겠다고 부하들을 버리고 줄랭랑을 치거나 부하들을 학대 부려먹는 종놈으로 심심풀이로 구타와 욕설 일삼지 않고 자국뿐만 아닌 점령지에서 민간인들을 향한 학살과 약탈 강간을 일삼은 것들

제2차대전을 통틀어서 자국민들조차 군대를 꼽는다면 이테리군과 일본군이 있다 전후 일본인들이 쓴 책에서도 일본군은 혹평 일색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이런 막장군대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똑같은 패전국인 독일이 나치에 대한 비판과 별도로 세계 최강 군대라는 자부심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64페이지 중에서


이런 졸장 패장들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성과를 내곤 싶은데 상대방 적국보다 전력이 부족하거나 상황이 불리한데 최고 지휘부(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일본 대본영) 같은 높으신 분들 쪽에서 하도 닥달 성과 좀 내라고 무조건 밀어 붙이기에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분명히 그렇게 하면 질 걸 알지만 명령대로 실행 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무엇보다 저런 상급 양반들에게 잘보여서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그런 조건들 및 적들의 상황 규모 파악도 안하고 자기 자존심만 내세워서 병사들을 개죽음으로 모는 점 그렇게 하고서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줄랭랑을 치며 고집불통 사고가 유연하지 않아서 어떤 보고가 들어와도 절대 듣지 않고 임용한 박사님이 말한 적들의 관점 논조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 우물안에 개구리식으로 하면 이기고 적들을 곤란하게 할 것이란 자만감과 착각들 난 책임이 없고 부하들에게 있었다 란 치사한 변명과 뻔뻔함

오늘날 우리 사회 및 세계 정세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전쟁 양상을 본다면 더욱 이런 자들의 모습을 빼닮은 것이 21세기임에도 19세기 및 1차대전 수준으로 달려가는 러우전쟁의 양상 수 많은 전쟁들을 치루고 경험이 풍부한 (적백내전 2차대전(대조국전쟁) 아프간 원정 체첸 전투) 러시아군이 패배의 모습을 넘어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약탈 강간을 일삼는 자기 선배격인 소련군아 동유럽 지역에서 특히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독일에서 했던 짓을 고대로 역사의 기원이 같고 형제격인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주고 지금 바그너 그룹이 쿠테타를 일으켜 로스토나노프를 점령해 농성을 벌여 러시아 국방부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 2차대전 특히 보로실로프가 자기 권위를 높임과 동시 스탈린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유능한 명장들을 동지들을 싹 다 반혁명 분자로 숙청으로 처형해 버림과 동시 정치위원이 발언 및 지휘권을 말살함으로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레닌그라드 완충을 목적으로 카렐리아 일대 영토를 욕심이 나 핀란드를 침략해 만네르헤임 방어선에서 추위와 험난한 숲과 핀란드군의 게릴라로 동사와 아사 기습에 의한 전사자가 늘어 부하들만 개죽음으로 몰아 지휘관들을 총살 및 헤임으로 책임을 떠 넘겼던 스탈린의 모습을 오늘날 푸틴 및 러시아군 수뇌부가 고대로 재현을 한다. 역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탓이다.

전쟁사적인 측면이 아닌 우리 사회 특히 대한민국 군대 나 개인과 삶도 어떠한가,,? 우리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룹원들에게 책임을 떠 넘기고 난 아무것도 모른다 너희들끼리 잘해봐라 책임을 떠넘기고 나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한 채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 타자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란 반성과 되돌아 보게 되어진다. 대한민국 군대 및 장교들의 열약한 처우 및 심각한 병력 부족 국방의 위기 속에 과연 롬멜 주코프 아이젠하워와 같은 역량을 발휘할 지휘관이 등장할까..??


롬멜과 주코프 아이젠하워 이들은 우리가 흔히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책에서 영화에서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유명한 명장들 이들은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책임을 부하들 남들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전략 지휘부터 만약에 패전을 한다면 자기에게 책임을 달게 받을 것을 각오하였으며 부하들을 자기의 가족처럼 아끼고 싸워야할 의욕 용기를 북돋아줌 무엇보다 적들의 책략 및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승리를 안겨줌 점 아이젠하워가 노르망디 작륙 작전 직전 자기의 일기 속에서 했던 내용을 끝으로 이 책이 역덕과 밀덕들에게 소문이 나고 리더를 맡게 된 경영임원 특히 국방을 책임질 장교를 꿈꾸는 사관생도들이 읽어보았으면 한다,

육해공군 장병들은 자신의 임무를 모든 용기와 헌신을 다했으며 이번 작전에 대해 어떤 비난과 잘못은 전적으로 저의 몫입니다.

미국 34대 대통령 및 서부전선 책임 아이젠하워 장군의 일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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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쟁의 흑역사 - 시장 질서를 박살 내고 세계경제에 자살골을 날린 무모한 대결의 연대기
이완배 지음 / 북트리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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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4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읽어보고 경제적 분쟁 및 문제를 진단한 것이 3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자원의 저주 및 이로 인한 지원의 무기화 및 분쟁

  2.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의 장 단점 선진국들의 민낮

  3. 금융의 발전 달러의 세계화

부흥카페 분들의 서평을 읽어보고 하나같이 했던 평가 이 책은 역사서라기 보단 거의 경제교양 서적에 가깝고 역사적 원인 과정 결과를 생략한 체 무조건 저자 경제적 관점으로만 본다. 저자의 생각이 넘 깊숙이 들어가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어보고 사실 그렇게 생각이 들긴 했다. 그것이 흠 단점이긴 하지만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운동권 비주류 언론에서 칼럼을 쓰고 유명세 및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니 또한 이 책보다 전에 경제학 교수로 유명한 홍춘욱 박사가 쓴 돈의 역사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쓰여진 경우가 크니.. 이해는 간다.

경제를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칼 무력을 사용해 경제적으로도 무너뜨린 점과 경제적 압박을 통해서 굴복시킨 케이스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고 해야할까 돈의 역사에 비해 그런 역사적인 맥락들이 많이 서술된 것과 개인의 생각이 역사적 사실인 것 마냥 쓰여진 것이 좀 아쉽다고 평가가 된다. 예를 들면

사라고사 조약대로 라면 조선과 일본도 포루투칼의 식민지가 된다. 16세기 중반 일본에게 조총을 전수해 준 게 포루투칼 상인들인데 이들은 자기가 언제든지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왜냐고.? 교황님이 그걸 허락하셨으니까.?


자원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의 다이아몬드를 두고 둘러싼 내전 볼리비아와 페루의 새똥 구이노 비료의 원료가 되는 지역을 두고 치열한 싸움 이라크 후세인과 미국 부시 대통령 간 석유의 패권을 두고 싸운 걸프전 석유파동 중동전으로 또 한번 석유 수출로 전성기를 이루다 80년대 미국 및 선진국들의 단합으로 저유가로 폭망한 소련 센카쿠 열도두고 중일 간 분쟁에서 희토류로 굴복시킨 사례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오늘날 뉴스에서 많이 본 트럼프가 중국에게 경제전쟁 선포한 2018년 미 중 무역전쟁 초계기 갈등 및 과거사로 한일 간 앙금이 최고조에 이르자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배제 불화수소 및 포토레지스트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원료를 수출하지 않음과 동시 우린일본제품 불매 보이콧으로 맞선 노 재팬 운동 이슈로만 알았던 내용들을 읽어보니 일본과 미국이 왜 그렇게 했고 또한 그것이 세계경제 및 본인들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 알았고

쇼크 및 첨 알았던 것 코로나로 2020년 펜데믹 기간에 중국이 마스크 24시간 가동 생산 체계 들어가면서 공급을 늘리자 미국 역시 코로나 발생 하면서 마스크 의료 물품 수출 금지조치 및 독일이 중국에서 구입한 마스크를 태국에서 이동할 때 미국이 도중에 가로채서 빼았다 란 점 구글 페이스북 넥플렉스 등 IT 및 컨덴츠를 생산한 기업들이 넘 수익을 독점 법인세마저 그렇게 해 타국에서 쉽게 사업을 하면서 유럽 각국들이 이 기업들에게 디지털 세금을 어느 정도 많이 벌면 15~25% 세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미국 및 기업들의 항의 보복이 있었지만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서 보호무역 대신 자유무역으로 전환한 점 미국의 항공 회사 보잉의 독점 및 보조금 문제로 미국과 유럽의 무역전쟁 보잉과 에어버스 간 WTO에 제소와 동시 각 수입물품에 엄청난 관세를 때리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못지 않은 점 흥미로웠다.

이 책은 앞에서도 말했듯 경제학자가 저자이기에 그런 점 감안하면서 또한 문장 서술 또한 재미있고 흥미유발로 부담스럽지 않게 경제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된다. 하지만 저자의 주관이 넘 크고 약간 미국에 대해 악의 축인 것 처럼 주장하는 뉘앙스도 있어서 홍춘욱 박사님의 돈의 역사랑 같이 읽어본다면 역사와 경제의 배경지식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니 그렇게 읽어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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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말하다 - 우리가 꿈꾸는 그 가정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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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워크북으로 성경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결혼생활 부부 자녀와의 관계를 적립해 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참고로 저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가정생활과 교육이란 전공과목 및 여러 결혼생활 가정에 대한 과목을 3~4학년 때 많이 들으면서 배우고 나서 이후 제 절친 및 대학 선 후배 결혼식들 참석해 보고 난 결론입니다.

아..... 웨딩 드레스를 입고 정복을 입고서 화려한 조명과 예식 속에서 치뤄치는 결혼식만이 다가 아닌 결혼 이후의 가정생활이 얼마나 돈을 들여서 서로 좋아 식을 치루었어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허무한 가정일까

이에 저자인 이규현 수영로교회 담임목사님은 그것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화와의 죄로 인하여 자기편항성 자기에게로 굽어지는 자기 중심적인 마인드로 살아가게 되어서 남편과 아내 서로 머리가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복종 및 지배하고자 하는 군림적인 권력욕이 서로의 관계를 망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신약성서에 남편과 아내 서로 피차 복종하라 또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는 구절들은 그런 군림적인 욕구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의미는 육체적 사랑 에로스와 더불어 무엇보다 아가페 이기심을 내려놓고 서로 친밀한 관계를 적립하라고 말합니다.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핵심만 담아 적고 오늘날 텔레비전만 켜면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같은 내 아이부터 고딩엄빠 등 서로의 부부생할의 모습을 엿 볼수 있는 것부터 차마 보기 민망한 이혼하게 되어 깨졌다는 방송까지 결혼 이후 어려움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젊은세대들은 저를 포함 이젠 퐁퐁남 설거지론 등 헌신적인 사랑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뿐만 아닌 기본적인 성욕까지 오히려 감소해 연애조차 하지 않는다 해보지 않았다 라는 비율이 늘었고 우리나라가 이젠 출산률이 0.8% 거의 꼴찌 수준을 넘어 아예 나라가 소멸될 수가 있다는 염려가 점점 현실화 되는 이 시대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 좋았다 나빠지는 현상을 겪어보고 난 이런 아픔 겪지 않을거야 라고 도피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전 오늘날 이런 현상들이 비판만 하기 보단 오히려 더 이해가 되는 것은 남녀 간의 갈등 또한 자녀를 낳아 양육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유치원 및 보육시설이나 지원제도가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선진국들은 이런 제도가 뒷받침이 잘 되어서 결혼제도가 작살났다 하더라도 출산률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정부가 좀 더 이 문제에 깊게 고민해보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또한 남녀가 부모를 떠나 서로 한 몸이 될지라 창세기의 구절이 그저 성경 속 구절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다시 한번 세워져 이 난국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 교수님의 결혼생활에 대한 번역서 결혼과 이 책을 같이 묶어서 공부해본다면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에게 가정생활에 대한 지혜와 대처를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뭐지 앞에서 이 책들의 내용을 알고 싶다면 친한 지인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어보길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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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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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사망 후 그의 아들 이혼 李琿 이 조선의 국왕이 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광해군이다. 그러나 광해군에겐 자신의 이복 동생인 영창대군 및 따르는 소북 小北파와 광해를 따르는 대북 大北파 간 당파 무엇보다 명나라에게 공식적인 책봉을 받지 못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서 겨우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왕위를 이어 갔지만 왕위는 불안했다. 그것을 불을 붙힌 것이 바로 명나라를 위해 파병을 하되 소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강홍립에 대한 명령과 무엇보다 이볻 동생인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유배를 보낸 후에 가마 열기로 살해 측근인 유영경을 사약을 보내 사사 시키고 박웅서 및 의주 목사 서양갑의 칠사의 옥으로 인한 서인들의 반란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왕비서 폐하고 서궁에 감금하느 폐모실제로 서인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1623년 3월 12일 이괄의 군대가 반정군으로 창덕궁으로 향하는데 우리가 아는 인조반정의 시작으로 대북파인 류희분과 동생을 비롯한 40여명의 사람들이 처형 나뭐지 200명은 관직을 삭탈 후 유배형으로 광해군의 세력을 사라지고 인목대비는 다시 왕후로 복귀 아들인 광해군의 처형을 주장하지만 오성 한음으로 유명한 이덕형의 만류로 겨우 목숨을 보존해 강화도로 유배를 보낸다,

이괄은 인조반정의 선봉을 선 자로 자신의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지만 공신목록 1등은 김류 이귀 김자점 심기원 신경전 최명길 이홍립 등 10명 2등은 김경진 신경인 15명 나뭐지 3등 28명 총 53명인데 이괄은 공신목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을 평안도 영변으로 보내져 이로 인해 이괄은 불만이 커져 반란을 계획해  도성인 한양을 함락시키지만 관군이 재정비해 이괄을 궁지로 몰았고 반격을 가했지만 정예군의 이괄의 부대를 막아내긴엔 역부족이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가게 된다,

인조는 1625년 칙사가 도착 중국의 황제가 조선에 파견한 사신을 칙사 勅使라 불리는데 칙사들의 횡포 및 재물의 탐욕은 상상을 초월했다. 개성에 도착마자 개독례 즉 황제의 편지를 열어 읽어주는 의식을 명분으로 대놓고 뇌물을 요구 접빈사가 갖고 있던 은12000냥을 주지만 불만은 표시하자 도성에 오고나서 주겠다는 달래면서 인조실록에 나와 있는 명나라 황제 천계제의 책봉교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 조선은 그대로 충근(忠勤)을 드러내어 매양 왕위를 계승할 초두(初頭)에 계속 봉해 줄 것을 청하니 이는 감히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생각하건대 우리 황조께서 일찍이 전 국왕 이혼(李琿)을 책봉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전번에 실덕(失德)하였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 소경 왕비(昭敬王妃) 김씨가 나라의 사정을 갖추 아뢰고 그대 이종(李倧)을 세워 대통(大統)을 이어서 동쪽 지방을 진정했으면 하였기에 지금 특별히 그대를 봉하여 조선 국왕으로 삼는다. 명령이 천조에서 나와 위호(位號)를 바르게 정하였으니 그대의 작호(爵號)와 국토는 이제부터 소속된 데가 있다. 나라의 대소 신민들은 다함께 내가 신중하게 뽑아서 부여한 뜻을 몸받아 힘써 왕을 도와서 정치를 잘하고 수비를 철저히 하여 나라를 견고하게 해서 오랑캐를 막음으로써 나의 달벌(撻伐)하는 공렬을 빛내라. 나 한 사람이 그대 새 임금에게 사의를 둔 것이 아니다. 그런 때문에 이에 조서를 내려 모두가 알게 하노라."


이후 명나라 칙사는 인삼과 은자 뿐만 아닌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해구심마저 요구 승정원일기엔 호랑이 표범 일본 수달 가죽  채화석 일본도 등 각종 검 등 국고의 전반에 이르는 물품들을 보냈다는 것만 봐도 명나라 말기 얼마나 부정부패가 심했고 횡포가 더했는지 보여주는 사례 보여준다.

만주에선 건주여진 누루하치가 여진부족들을 흡수해 여진족이 나라를 세웠던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 후금 後金으로 칭하고 사냥 및 생업에 종사하다 말을 타고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청의 군사체계인 팔기군 8개의 색깔의 깃발아레 모인 부대들로 누르하치의 아들에게 패륵이란 지휘관으로 두면서 예병 즉 싸우지 않고 탈영하는 병사들을 살해하는 부대도 둔 군기가 엄격한 것이 특징이면서 부상병 전사자의 유가족에게 생계를 돕고 전리품을 분배에 우선권을 주는 등 병사들의 사기고 짐작시키는 것이 또한 특징인 후금은 아들 홍타이지가 淸으로 국호를 바꾸기까지 10년간 불렸다. 누르하치가 자신의 8가지 원한을 발표하면서 명나라에게 선전포고로 이후 중국대륙을 두고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바로 우리 조선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게 된 것 명은 우리가 임진왜란 때 너희에게 천군 天軍 보내줘서 살려준 그 은혜를 갚으라며 당시 최전선인 사르후에 군대를 보낼 것을 요구 광해군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파병 지휘관 강홍립에게 싸우되 불리하면 항복하라는 명으로 사르후 전투에서 조선군은 13000명 중 포로 4000명 5~600명은 처형 나뭐지는 아사와 동사로 죽은 사람들이 많아 생존한 병력은 2700명 처참한 결말을 맞는다,


누르하치는 중원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특히 수도인 북경으로 가는 길목 만리장성 관문 산해관 외곽인 영원성에 지휘관 원숭환이 지키고 있었다. 누르하치는 원숭환에게 투항하면 살려주면서 동시 관직과 재물을 준다는 요구를 거부하면서 누르하치의 6만의 팔기군 원숭환의 2만의 명나라 군대가 붙은 영원성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때 포르투칼에서 수입한 화포 홍이포를 영원성을 요세로 만들고 조총병으로 기마병이 중심인 팔기군을 무력화 시키는데 이때 한번도 패배해 본적이 없는 누르하치는 큰 충격을 먹고 자기를 도운 몽골을 향해 칼을 빼들어 몽골을 정벌하고자 영원성의 패배로 약화된 팔기군으로 배후인 몽골을 굴복시키는 성공시키 성과인 동시 누르하치는 패전 쇼크로 병이 악화되어 68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아들 홍타이지가 후금의 2대 황제로 등극 이때 명나라는 요동 지휘관 모문룡이 평안도 가도에 거물면서 식량 및 피난처를 제공하자 이를 빌미로 또한 이괄이 후금으로 망명하면서1627년 정모년 침략 정묘호란의 시작이다,


정묘호란에서 놀라운 것은 의주부윤이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윤이 이곳에서 치열하게 싸워 전사한 점과 정봉수 및 의병들이 나선 정골산 전투에서 후금의 팔기군을 꺽은 것 이것이 병자호란의 예고편 청태종의 경고장으로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 척화파와 주화파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져 이때도 정신을 못차리고 강화를 맺는 것은 오랑케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며 반대하지만 경제력 및 이때 인조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지휘관들 앞에서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리는 의식으로 조선과 후금 간 조약 정묘약조를 채결 내용은 후금군은 즉시 철병할 것, 후금군은 철병 후 다시 압록강을 넘지 말 것, 양국은 형제국으로 정할 것, 조선은 후금과 화약을 맺되 명나라와 적대하지 않을 것 철수 했지만 평안도 황해도 등 서북지역의 백성들을 터전을 잃고 성에 피신한 사람들을 살육당하고 여성들은 전리품으로 납치를 되는 큰 피해를 보았는데 이때 인조가 정신을 차리고 후금을 적대시 하지 않았다면 또 한번의 청의 침공 병자호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원성을 지킨 원숭한이 또 한번의 침공을 막아냈지만 홍타이지가 꾀를 써서 몽골군 주력을 중심으로 만리장성을 지나 희봉구 걸쳐 명나라 수도 북경을 공격하자 원숭환이 병력을 빼서 수도를 지키려 하자 광거문에서 자신의 병력을 갈아 겨우 후금을 물리치지만 홍타이지의 간계술수 환관을 포로로 잡다 매수해 거짓말로 원숭환이 길을 내줘서 북경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문으로 원숭환을 벼른 명의 대신들이 탄핵을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에게 주청해 원숭환은 관직을 삭탈로 부족해 의심이 더해져 그를 책형 살점을 뜯어내 내장 터지거나 머리 골을 부수는 가장 잔인한 형벌로 죽였으니 이후 숭정제가 나무에서 목 매달아 자살 명나라의 멸망은 이전부터 관료들의 부정부패 뇌물을 요구 더욱 황제의 측근 환관의 힘이 넘 강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선양의 궁전에서 홍타이지는 나라이름을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관온인성황제 란 존칭으로 연호는 덕을 숭상한다는 崇德 숭덕으로 바꾸어 황제 즉위로 청의 황제가 되었는데 문제는 몽골 한족들은 삼배고두례 절을 하지만 조선의 춘신사로 온 나덕헌과 이확은 오직 황제는 명나라 황제 숭정제만을 여겨 절 하는 것을 거부하자 청의 대신과 장군들은 이들을 의식이 끝나고 조선의 사신들을 두들겨 패면서 무례함에 격분하자 홍타이지는 조선과 맺은 맹약을 깨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겨우 분노를 참으며 진정했다 그러나 인조에게 보낸 청태종의 봉서 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이 이르기를 너희 나라는 천조(명나라)와 더불어 200년 우호를 닦았으니 하루아침에 단절할 필요는 없다


후금은 이후 명나라를 정벌할 병력과 배를 요구함과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는 것을 조선이 거절 이후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되어 1637년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만다,
청의 진격속도 빠르고 한양에 다다르면서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을 가고자 했지만 이미 강화도는 청의 수중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남한산성에 들어가 각 도에 있는 감사와 근왕병들은 나를 구하하 교지를 내려 1000명의 병사로 청군과 맞서는데 우리 역사의 뼈 아픈 패전인 쌍령전투 전술에 대한 이해 부족 무능한 지휘관 청군의 먼저 빠른 기습공격 무엇보다 동원된 조선군이 조총에 쓸 화약이 떨어지고 평지에서 장애물은 겨우 목책을 의지해 싸우는 반면 청군은 전부터 단련된 활솜씨와 주력이 기마병이였기에 조선군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고 더욱 화약을 받으러 간 조총병들이 화약이 폭발해 오히려 아군을 팀길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주화파와 척화파 간 갈등이 고조되고 더욱이 이 날의 날씨는 눈이 오면서 마이너스 가장 추웠고 피난민들까지 몰려오면서 부족한 식량사정은 더욱 악화 결국 안에 있던 말들을 잡아 말고기를 줘야 할 정도로 식량사정마저 좋지 않게 되면서 고립된 형국이 되고  청군이 귀순한 명군들에게 들여온 홍이포와 삼판선 82척을 동원해 강화도로 상륙작전을 위해 강화해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휘관이 김경징은 지형적 특성 및 조그만 대비를 했다면 적어도 봉림대군과 조정 대신의 가족들이 포로로 잡히진 않았을텐데 습기가 차서 화포를 쏘지못해 청군의 상륙은 아무런 피해 없이 속절없이 이뤄져 봉림대군과 대신드이 포로로 잡히게 되면서  인조는  더 충격을 받아 항전 의지가 꺽이게 되어 인조는 홍타이지에게 조선 국왕 李倧 이종은 대청국황제께 글월 올려드립니다 란 제목으로 제가 약조를 어기고 제 잘못을 깨달았으니 절 살려주세요 란 편지를 올림과 동시 이후 1월 27일 청나라의 포로로 잡히지 않을까 란 걱정에 또 한번의 글을 올리자 홍타이지는 귀순만 하면 살려준다 난 거짓말 안한다. 답서와 함께 조유문 조선의 12개 항목 요구사항으로

그대가 만약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롭게 하여 은덕을 잊지 않고 자신을 맡기고 귀순하여 자손의 장구한 계책을 삼으려 한다면, 앞으로 명(明)나라가 준 고명(誥命)과 책인(冊印)을 헌납하고, 그들과의 수호(修好)를 끊고, 그들의 연호(年號)를 버리고, 일체의 공문서에 우리의 정삭(正朔)을 받들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는 장자(長子) 및 재일자(再一子)를 인질로 삼고, 제대신(諸大臣)은 아들이 있으면 아들을, 아들이 없으면 동생을 인질로 삼으라. 만일 그대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짐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짐이 만약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칙을 내리고 사신을 보내어 그대 나라의 보병(步兵)·기병(騎兵)·수군을 조발하여, 혹 수만 명으로 하거나, 혹 기한과 모일 곳을 정하면 착오가 없도록 하라. 짐이 이번에 군사를 돌려 가도(椵島)를 공격해서 취하려 하니, 그대는 배 50척을 내고 수병(水兵)·창포(槍砲)·궁전(弓箭)을 모두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대군이 돌아갈 때에도 호군(犒軍)하는 예(禮)를 응당 거행해야 할 것이다.
성절(聖節)·정조(正朝)·동지(冬至) 중궁 천추(中宮千秋)·태자 천추(太子千秋) 및 경조(慶吊) 등의 일이 있으면 모두 모름지기 예를 올리고 대신 및 내관(內官)에게 명하여 표문(表文)을 받들고 오게 하라. 바치는 표문과 전문(箋文)의 정식(程式), 짐이 조칙을 내리거나 간혹 일이 있어 사신을 보내 유시를 전달할 경우 그대와 사신이 상견례(相見禮)하는 것, 혹 그대의 배신(陪臣)이 알현(謁見)하는 것 및 영접하고 전송하며 사신을 대접하는 예 등을 명나라의 구례(舊例)와 다름이 없도록 하라.
군중(軍中)의 포로들이 압록강(鴨綠江)을 건너고 나서 만약 도망하여 되돌아 오면 체포하여 본주(本主)에게 보내도록 하고, 만약 속(贖)을 바치고 돌아오려고 할 경우 본주의 편의대로 들어 주도록 하라. 우리 군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사로잡은 사람이니, 그대가 뒤에 차마 결박하여 보낼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내외의 제신(諸臣)과 혼인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하도록 하라. 신구(新舊)의 성벽은 수리하거나 신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대 나라에 있는 올량합(兀良哈) 사람들은 모두 쇄환(刷還)해야 마땅하다. 일본(日本)과의 무역은 그대가 옛날처럼 하도록 허락한다. 다만 그들의 사신을 인도하여 조회하러 오게 하라. 짐 또한 장차 사신을 저들에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동쪽의 올량합으로 저들에게 도피하여 살고 있는 자들과는 다시 무역하게 하지 말고 보는 대로 즉시 체포하여 보내라.
그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데 짐이 다시 살아나게 하였으며, 거의 망해가는 그대의 종사(宗社)를 온전하게 하고, 이미 잃었던 그대의 처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마땅히 국가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를 생각하라. 뒷날 자자손손토록 신의를 어기지 말도록 한다면 그대 나라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다. 짐은 그대 나라가 되풀이해서 교활하게 속였기 때문에 이렇게 조칙으로 보이는 바이다. 숭덕(崇德) 2년 정월 28일.
세폐(歲幣)는 황금(黃金) 1백 냥(兩), 백은(白銀) 1천 냥, 수우각궁면(水牛角弓面) 2백 부(副), 표피(豹皮) 1백 장(張), 녹피(鹿皮) 1백 장(張), 다(茶) 1천 포(包), 수달피(水㺚皮) 4백 장, 청서피(靑黍皮) 3백 장, 호초(胡椒) 10두(斗), 호요도(好腰刀) 26파(把), 소목(蘇木) 2백 근(斤), 호대지(好大紙) 1천 권(卷), 순도(順刀) 10파, 호소지(好小紙) 1천 5백 권, 오조룡석(五爪龍席) 4령(領), 각종 화석(花席) 40령, 백저포(白苧布) 2백 필(匹), 각색 면주(綿紬) 2천 필, 각색 세마포(細麻布) 4백 필, 각색 세포(細布) 1만 필, 포(布) 1천 4백 필, 쌀 1만 포(包)를 정식(定式)으로 삼는다."
인조실록 15년 1월 28일



정문인 서문이 아닌 남문으로 나오며 곤룡포가 아닌 흰 세마포로 입고 나와 항복의식으로 함벽여츤 손을 등 뒤에 묶어서 입에 구슬을 물려 관짝을 등에 맨 상태로 가장 치욕적인 것과 삼배고두례 3번 절하고 9번 조아리는 의식 결국 그나마 덜 굴욕적인 삼배고두례를 삼전도에서 한강에서 절을 했다고 일화도 있고 이마가 피가 날 정도로 쌔게 했다는 일화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후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척화론자 등과 아들 소현세자를 볼모로 내주고 수많은 백성들 역시 포로로 붙잡혀 가게 되는데 이들을 피로인 여인을 당시 화냥년 당시 환향녀 還鄕女 다시 돌아온 여성을 오랑케와 정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정결울 지키지 않아 자결을 명했고 다시 돌아온 피로인들에 대한 아무런 보상 및 대책을 내놓지 않게 된다. 산해관은 오삼계 장군이 지키고 있었지만 높은 세금과 징집에 이자성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이 북경 점령 자금성이 함락되고 이자성의 군대가 오삼계의 딸을 납치하자 청에게 투항 산해관을 열어주면서 이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신의 딸들과 아들을 자결로 죽게 하고 자신도 결국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함으로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는 276년만 멸망하게 되고 청의 팔기군이 이자성의 부대를 격퇴하면서 북경을 점령 소현세자는 상국으로 모신 명나라의 멸망을 직접 지켜보게 되고  홍타이지가 사망 후 예친왕인 도르곤이 섭정을 하게 되어 청나라는 심양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면서 소현세자와 도르곤은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으며 당시 독일인 신부 아담 샬이 북경에 남아 있어 소현세자에게 카톨릭의 교리와 망원경 지구본을 보여주면서 최신의 서구의 문물을 보고 조선과 중원이 세상의 전부라 보던 소현세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이 물건들을 선물로 받아  도르곤은 칙사를 보내면서 다시 조선으로 함께 피로인들도 소현세자가 지불한 돈으로 함께 귀국하게 되는데 인조는 자기 아들의 귀환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현세자의 죽음엔 독살설 질병설 심지어 소현세자가 인조 앞에서 아담 샬이 보내준 망원경과 지구본 또한 카톨릭의 교리서 천주실의 및 각종 서적을 보여주면서 우리도 서구의 문물 받아들이고 청을 인정하고 카톨릭의 교리를 받아들이자 란 말에 인조가 열 받아 벼루를 집어 던져 벼루에 맞아 그 충격에 몸살로 숨졌다는 일화 소현세자는 귀국 후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고 세자를 치료한 의원들이 침을 놓고 치료하고 나서 사망 후 장례로 염을 하는데 세자의 모습이 검은 빚으로 약물에 취해 죽은 자와 같았다 란 기록과 치료한 어의가 세자 및 왕실 사람이 치료도중 사망을 하면 국문을 열어 처벌하는 것이 관례인데 인조는 의원들이 신중하지 않은 일이 별로 없으니 굳이 잡아다 국문 열 필요 없다 란 말로 추궁을 하지 않은 점으로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 타살시켰다는 의혹으로 아직까지 소현세자의 죽음은 사학계의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한 나라의 리더십이 중요한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국방을 대비하고 철저하게 하지 않고 청을 적대시 해서 병자호란이 발생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잘못된 주장이다 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의 폐허와 더불어 최근의 후금이 쳐 들어 온 정묘호란의 피해까지 겹쳐서 청을 맞아 싸울만한 국력을 쌓을 애초에 여유조차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 후금이 무리한 공물 및 병력요구까지 겹치면서 그럴 상황을 못한다면 적어도 청을 적대시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하지 않았다면 병자호란을 피할 수 있었다 홍타이지 즉위 때 대놓고 절을 하지 않거나 우리의 주군을 대명이다 라고 도발을 한 점 무엇보다 가도에 주둔한 모문룡의 군대를 철군시키지 않는 것으로 청의 분노를 일으킨 점 더욱 전쟁 중에도 백성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 포로로 붙잡힌 백성을 위한 대책이 아닌 오히려 오랑케와 정을 나누었다고 정결로 자결을 요구하는 여성과 피로인들을 멸시하거나 추방 사람대접을 하지 않았다는 것 병자호란을 겪고도 오히려 우리가 중화의 중심이다 라는 소중화와 충북 괴산군에 명나라 황제 만력제와 숭정제를 모신 만동묘를 세워 멸망한 한 나라의 황제를 제조지인으로 모셔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으로 삼아 성리학만을 더욱 극단히 추구해 소현세자가 마지막으로 조선의 희망이였지만 그의 죽음 조선은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거부 우물 안에 개구리로 만동묘가 흥선대원군 때 까지 존재했다는 점만 봐도 명나라에 대한 사대가 사대부들의 보물로 여긴 가치 성리학으로 인해 조선은 개혁 다운 개혁을 하지 못해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직면 지도자들이 중국에게 일본으로 주인을 바꾸어 나라를 팔아먹고 왕실을 보존하는 조선왕실의 후안무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리더는 국민과 앞으로 미래를 위해 더욱 신중하고 외교란 한 나라에게 충성 바치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자국의 이익 안전을 위해서 다면적인 외교 실리적인 면을 차려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조가 죽어나는 명나라만 받들고 새로 떠 오르는 청을 배척한 실수가 우리 대한민국에게 없기를 희망해본다,
#인조1644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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