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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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후삼국 시대를 걸치고 왕건이 후백제 견휜 비롯한 신라 경순왕에게 항복을 받아 삼국시대 후삼국 분열된 한반도가 첫 통일왕조를 열 때 중국은 당나라가 절도사 세력들로 인해 분열 결국 5대 10국 시대를 맞이해 북방에선 발해 눈치를 보던 거란이 야율아보기가 세력을 키워서 고비사막 및 몽골지대 및 원수지간으로 여긴 발해를 정벌해 수도 상경까지 한달만에 함락시켜 만주 및 한반도 북부 일부 지역을 차지하자 왕건은 상경(평양) 성을 쌓고 동시에 거란이 보낸 사신들을 유배를 보내고 선물로 받은 낙타를 만부교에 묶어서 아사 시키는 등 거란과의 의도적인 적대정책을 펼피면서 고려와 거란 간 악연은 시작되었다.



1차 거란의 침입 우리가 단순히 시희의 언변으로 이겼다는 소손녕과의 외교담판 이것은 당시 북방의 영토 때주고 협상을 하자는 할지론 원래 수도 개경으로 귀환 항복론 어느 누구도 감히 청천강 이북지역 강동 6주를 되 찾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암울한 상황에 서희의 애국심 한 치의 땅도 내어 줄 수 없다는 의지와 거란 소손녕도 고려군은 완전히 섬멸치 못해 차짓 역공을 당할 수 있단 두려움 둘의 만남은 서로 약점을 숨긴 채 회담으로 오히려 서로의 원하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거란군을 철군시킴과 동시 압록강 동쪽 6주를 얻고 국교를 맺는 것으로 끝났지만 언제든지 다시 양국 간 전쟁이 일어 날 수 있어 서희는 축성와 동시에 서북면에 방어선 구축 및 국경수비대가 방어 중앙군이 모집해 일전 벌히는 창과 방패 방어전략을 세움과 동시 거란의 공주와 결혼으로 긴장상태 완화 시킨 당근도 있었다.

성종과 서휘의 죽음으로 나약한 현종 즉위 이후 강조가 마치 조선의 이괄처럼 국경수비대장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어 목종이 개경이 돌아가 호위해 달라는 부탁에 부하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위협하는 천추태후 및 간신들 제거하자는 의견 받아들여 왕이 시해 당했다 거짓명분으로 개경으로 진격 오히려 목종을 폐위 독약을 내려 죽이고 현종을 즉위시켜 이 쿠테타로 거란이 자기가 책봉한 왕을 살해했다는 명분 삼아 1010년 2차 여요전쟁 발발 중대사 강조와 서북면도순검사 양규가 방비 홍화진을 우회해 삼수진에 진을 친 강조의 군대를 섬멸 강조를 처형시키고 서경(평양)을 공격했지만 양구가 곽주를 기습해 거란군 보급로 끊는 쾌거 이루지만 거란은 서경 대신 우회해 곧장 수도 개경으로 진격 개경이 함락되어 현종은 전라도 나주 깊숙히 피난을 갈 정도 큰 위기 왔지만 적은 군사 3000명 4만의 대군으로 통주 귀주를 수복해 퇴가하는 거란군을 총 공격해 승리로 이끌었다.

귀주 별장 김숙흥이 중랑장 보량과 함께 거란군을 습격하여 10,000여 급을 베었다. 양규는 거란군을 무로대에서 습격하여 2,000여 급을 베었으며 포로가 되었던 남녀 3,000여명을 되찾았다. 다시 이수에서 전투를 벌이고 추격하여 석령까지 가서 2,500여급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1,000여명을 되찾았다. 3일 후에는 다시 여리참에서 싸워 1,000여급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1천여명을 되찾았다. 이 날 세 번을 싸워서 모두 이겼고 다시 그들 선봉을 애전에서 맞아 싸워 1,000여 급을 베었다.

<<고려사>> <양규 열전>


3차는 서휘의 담판으로 얻은 강동 6주로 거란의 성종이 야율자충(야율평행) 사신으로 보내 강동 6주를 반환과 요세 허무는 것을 요구를 고려가 거절하자 명분으로 성종은 소배압에게 정벌도를 하사해 도통으로, 소굴렬(蕭屈烈)을 부통으로 삼아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3차 여요전쟁을 일으키는데 고려는 우리가 아는 평정사 강참찬 상원수,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삼아 군사 20만 8,000 명을 이끌고 영주(寧州, 安州)에 대기시켜 소배압이 수도를 공격하려는 무리수를 두다 오히려 강감찬의 둑으로 몰살 선발대도 금교역에서 기습을 받아 전멸 퇴각하자 강감찬은 김종헌 부대와 함께 진격해 구주성 동쪽에서 전멸시킨다. 이게 바로 한국역사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이라 불린다.

새로 알게 된 점은 강감찬도 서희와 같이 무관이 아닌 총리격인 문하시중과 후작을 겸한 문관이고 귀주대첩 때 받은 무관직 상원수직은 임시 군단의 지휘관이지 정식 공식 무관직은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며 인조 1636년 조선의 참담한 전술적 지휘 무능과 방비를 하지 못해 홍타이지에게 삼전도 굴욕으로 겨우 왕조를 보존케 한 치욕을 보다 오랫만 우리 민족의 외세를 제대로 물리친 사이다 같은 느낌을 받아서 참으로 좋았다. 이 책은 단순히 사건 나열 강조 뿐만 아닌 만화 그림 및 자세한 자료로 이해를 돕고 재미를 돋구는 좋은 소설 형식이지만 이보다 전쟁사 및 어려운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 책을 쓴 길승수 작가께 찬사를 보낸다, 11월 나오는 여요전쟁이 고증 및 징비록처럼 흥미 진진 좋은 결과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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