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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오로지 수플레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정말 음식에도 치유의 힘이 있는지, 달달하고 부드러운 이 디저트를 먹고 있으면 저절로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잠깐이라 할지라도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 행복을 안겨주는 수플레. 그런 이유에서 종종 수플레를 찾는다. 책에서도 수플레는 비슷한 역할을 한다. 만들기 까다롭고, 한 순간 푹 꺼져버리기 쉬운 형태가 우리 인생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적을 만들어 나가도록 돕는다. 따뜻한 파스텔 톤의 책 표지와 감동적인 이야기에 읽어보고 싶었는데, 무려 이 소설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터키작가의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층 더 궁금해진 책이다.
책 속 세 명의 주인공은 각기 다른 곳에서 살고있다. 뉴욕, 파리, 그리고 터키. 이런 각기 다른 삶의 배경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삶과 다른 아픔들을 간직하고 있으나 수플레라는 요리가 그들을 하나로 묶어나간다. 그렇게 그들의 아픈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뉴욕에 살고 있는 릴리아에게 가족이란 어쩌면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각방을 쓰며 개인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릴리아와 남편 아니. 비단 부부관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베트남에서 입양한 두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언어장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던걸까? 아니면 이미 자랄대로 자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 문제였을까? 가족들은 사전을 끼고 다니며 서로에게 적응하려고 노력했으나 어느 순간 대화가 줄고 그런 습관이 굳어져갔다. 결국 커서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고, 아이들은 릴리아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원망으로 가득차 보였다. 단지 돈이 필요할 경우, 의지하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느 날 릴리아가 쓰러져 있는 남편 아니를 발견하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터져버렸다.
뉴욕보다 여섯 시간 앞선 파리에 살고 있는 마크와 클라라는 참 이상적인 부부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 클라라는 마크의 삶의 전부이자 그의 행복이다. 그들에게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문제가 있었지만, 서로를 꼭 빼닮은 아이를 원했기에 입양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화랑을 운영하고, 세계를 누비며 요리법을 개발하면서 서로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여느 일상과는 다른 하루가 마크에게 찾아왔다. 부엌에 쓰러져 있는 클라라가 보였고, 맥을 짚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마크의 클라라는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그녀가 원하는 삶대로 언제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던 마크였다. 삶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정도로 아프다.
마지막 주인공인 페르다. 그녀는 터키에 살며, 파리에 떨어져 있는 딸과 정해진 시간에 통화하는 것이 낙이다. 그녀는 딸이 좀 더 가까이 살기를 원했지만, 파리를 선택한 딸 오이쿠는 6년째 그곳에 머무르고 있다. 오늘도 딸의 전화이겠거니 하며 집어든 수화기에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어머니 옆 집 사는 셋집 주인 세마다. 어머니가 넘어져 지른 비명을 듣고 페르다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많이 다치질 않길 바라는 걱정과 함께 이젠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만 하는건가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하는 그녀이다. 그렇게 세 주인공들에게 새로운 일들이 눈앞에 닥쳤다.
결국 목숨은 잃지 않은 릴리아의 남편, 그녀에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꼼짝없이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한다. 장례식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마크였기에 그는 여전히 힘겹다. 페르다 또한 팍팍한 성격의 치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지쳐만간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는 그들이다. 삶의 위기의 순간에서 그들은 수플레 요리책을 꺼내든다. 그 어렵고 어렵다는 악명높은 디저트를 만들며, 현실을 잊고 싶었던 것이다. 부엌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위안을 찾아나가는데....... 수플레 한 가운데가 푹 꺼질 때 마다 자신의 삶의 공허함을 느낀 마크의 얘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삶은 다 그런거라며 이해되는 한 편, 씁쓸하기도 했다. 모든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만 한다는 바람을 가진 나에게 릴리아의 이야기는 안타깝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녀의 이야기가 현실에 제일 잘 맞는지도 모르겠으나 먹먹한게 가슴아팠다. 이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닐까 싶다. 수플레를 만들며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인상적이었던 책. 수플레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우리의 인생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아픔도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