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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한 커리어 우먼이 무너지는 모습을 다룬 책이다.
이 여성의 인생은 곧 커리어이고, 커리어가 무너지는 순간, 인생 역시 함께 무너진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이고, 정치인이다. 딱 이슈화되어 무너지기 쉬운 조건에 최적화되어있었다.
또, 남편과 이혼하고, 사춘기 딸이 학교폭력 문제에 깊숙이 관련돼있다.
한마디로 무너지기 쉬운 최고의 환경에 있었다.
그녀가 저지르는 실수들, 오해, 미숙한 발언 등으로 인해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등장인물들 사이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간다.
1권에서는 이 인물의 인생에 관해서 다루고 있고, 또 중요한 사건들로 인해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다룬다.
아마 2권에서는 무너진 것들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까, 추측해 보고 있다.
먼저, 주인공 엠마 웹스터는 하원 의원이고, 주로 여성이 당한 폭력에 대한 발언을 한다. 이로 인해 다른 남성 의원들의 저격에 시달린다. 또, 유명한 잡지에 실린 인터뷰로 인해 SNS에서도 온갖 욕을 먹고 저격당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며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활동하는 이유는, 그녀 역시 같은 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다른 형태의 폭력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두 번째, 위의 이유로 인해 기자에게 시달리게 된다. 자신을 유난히 따라다니며 취재를 하려는 기자와 정치적 발언 등을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며 해명과 답변을 요구하는 메일이 온다. 여기서 그녀의 실수는, 기자 한 명과 사적으로 친해져버린 것이었다. 이제 매우 불리한 조건에 있게 된 것이었다. 사생활이 캐내질 수도 있었다.
세 번째, 사실 이혼한 남편에게 미련이 있지만, 막장 스토리인 것은 딸의 피아노 선생님이자 그녀의 절친이었던 사람이 바로 전 남편의 새로운 아내가 된 것이었다. 덕분에 이들 부부와는 사이가 몹시 별로이다. 게다가, 딸은 중학교에 들어가며 사춘기가 온 줄 알았더니,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자신처럼 SNS라는 감옥에서 장난감처럼 다뤄지고 있었다. 딸은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 이 아닌 (나는 이 부분이 매우 놀라웠는데, 흔한 '클리셰'를 깨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 한 명에게 보복한 것이었다. 엠마는 여성이 당하는 여러 가지 모습의 폭력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발언하는 정치인인데, 반대로 그녀의 딸은 바로 그 폭력을 저지른 범죄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비행소년이 되어버린...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것이었다. 이것도 참 꼬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사적으로 친한 기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받고, 딸과 더 멀어지고, 전 남편과는 물론이고 전부 망가져버린다.
네 번째, 그녀는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문자로, 편지로 '니같은 X에게 염산을 부어버리겠다'라는 등 무시무시한 협박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그녀의 사생활을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하며 자신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한번은 이 사람으로 추측되는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추격하기도 한다. 사실은 그녀와 사적인 친분이 있는 기자가 바로 이 스토커가 아닐까, 싶기도 한다.
권력, 가정, 평판, 관계, 비밀이 차례대로 하나하나 너무나도 쉽게 망가지고 무너지고 사라져버렸다.
이 책에서는 SNS가 주는 영향력과, 특권층이 가진 삶, 그리고 사람들이 주는 혐오가 한 사람에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생생하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인터넷에 떠도는 봇과 가짜 뉴스가 어떻게 사람들을 선동하고 믿게 만드는지,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할 수도 있고, 없는 사람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우리가 보는 세상의 범위를 좁혀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선택할 권리를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인공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이 '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 생생하게 묘사해 주어 오히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지금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이유가 쉽게 이해되는 것 같아 마음이 시원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라는 이슈는 사실 굉장히 논점과 바라보는 시점이 다양하다. 게다가 개개인마다 다르고, 형태도 정말 많이 나뉘어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복잡하다는 뜻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에 관한 문제가 여러 개 등장한다. 여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폭력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화되는 일, 여성이 당하는 폭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에 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제기하는 의문은, '과연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여성이 아니었다면, 같았을까? 여성이기 때문에 무엇이 다를까? 왜 남성의 정의한 여성상만을 추구하는가?'에 대해서 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주인공에게 닥치는 시련들을 주인공이 뚫고 헤쳐나가 승리하는 소설이 아닌, 반대로 '주인공을 무너트리는' 반전 매력의 소설이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책이 마무리되는데, 스포일러로 인해 밝히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주인공이 지게 될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오랜만에 내용에 휩쓸리듯 같이 감정 속으로 떠내려가듯 읽어 내린 범죄 소설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된다는 소식으로 홍보되고 있어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책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빠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본 서평은 서평단에 참여해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솔직한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