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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ㅣ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분명 속편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책인데, 진짜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인 검은과부거미섬. (영어로 한다면 블랙 위도우 스파이더 아일랜드네?!)
이곳은 '무피귀', 그러니까 정말 '피부가 없는' 괴물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섬의 끝 쪽에 있는 해저 터널에 들어가 입구를 봉쇄하고 40년째 사는 중이다.
터널 안의 삶은 역시 끔찍하다. 구더기를 튀겨 먹고, 청설모로 육포를 만들어 먹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어 잘 돌아가고 있기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은 개들을 훈련시켜서 설치류들을 잡아오게 하는 등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식수는 우물이 있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살아간다.
그러나, 이제 터널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다.
터널에 바닷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우물에서 짠맛이 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위기를 느낀다.
그러나 터널 바깥은 무피귀들로 가득하다.
무책임한 촌장은 주인공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교묘하게 머리를 쓴다. 결국 주인공은 터널 바깥에 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하지만, 죽음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는 주인공들 때문에 정말 흥미진진하다.
반전 스토리도 재미있었다. 또, 여러가지 독특한 설정들이 신선했다.
특히 작가님의 상상력은 스릴러 분야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등장하는 괴물들이 어찌나 섬뜩한지 진짜 무서웠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메세지는 '어디까지 누구의 책임인가'이다.
사람들을 죽이는 괴물은 사람을 죽였으니 괴물이지만, 존재 자체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사실은 억울한 희생양이고, 자아를 빼앗겼기
때문이니 괴물의 잘못이 아닌 걸까? 괴물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가는 책임도 크지만, 어쨌든 사람들을 죽였으니 괴물도 책임이 있는 걸까?
괴물들을 피해 가족들을 구한 사람들은 어떨까?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괴물에게 잡히게 내버려둔 사람은 가족을 지켰으니 괜찮은 걸까? 아니면 가족 때문에 남을 희생했으니 책임이 있을까? 설령 남을 희생했다고 인정해도, 어쨌든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으니 책임이 없을까?
자기 가족을 지키려고 내 가족을 버린 사람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면 무시해도 괜찮을까? 내 가족을 버렸으니 나의 행동은 이해받을 수 있을까?
쉽게 결정지을 수 없는 메세지들이 끝없이 던져지니 정말 머리가 아팠다.
선과 악을 명백하게 구분 짓지 않는 점은 훌륭하게 생각한다. 또, 이런 메세지를 여러 형태로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
괴물을 물리치는 방법들이 꼭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연상시켜서 재미있었다.
사람을 사냥하러 다니는 괴물들이 나온다면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추격전도 여러번 등장하는데,
정말 몰입해서 읽다 보면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다.
또, 프로젝트라든지, 괴물 이름 등을 성경에서 나왔던 괴물들에서 따온 점도 재미있었다.
(거인 괴물은 네피림으로 나온다.)
영화 '터널'을 기대하고 읽었다는 사람들의 글을 종종 보았는데,
미안하지만 이 책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크리쳐 스릴러물에 가깝다.
독특한 매력의 '터널 103' 서평이었다.
*이 서평은 창비 소설Y클럽 서평단에 참여해 제공받은 가제본으로 쓰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