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참 눈부시다
크리스티안 생제르, 백선희 / 다른세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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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참 눈부시다..

 

생각의 차이를 많이 느낀 책이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 속에서 느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무엇인가가 공감되어졌다. 여성이 쓴 책이라 더 공감이 되었을까? 가르치려고도 지시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많은 메타포를 통해 잔잔함으로 다가와 세포 하나하나에 천천히 스며드는 감동이 있었다. 그러다가는 머리가 쭈삣설만큼의 임팩트한 무엇에 반응하여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참으로 오랫만에 100%의 공감을 느꼈다.

 

첫장에 타이핑체로 쓰여진 단 두마디  "삶은 성스럽다" 에서 크리스티안 생제르의 메세지를 감지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단어는 "나를 사랑하라"라는 단어와 오버랩 되어졌다. 너무 많은 책들이, 시선들이, 행복해져라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말처럼 정말 행복해 보이려는 의무처럼 되어졌을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주문에 세뇌되어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책은 행복해져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행복을 휘발성이라고 정의함으로서 그저 여러가지 예를 들어 자신을 돌아보게 할뿐이었다. 그리고 성스러운 삶을 사는 나를 사랑하도록 하고 있다.

 

금욕주의, 경쟁주의로 물들어가는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우리의 예민한 지적감각을 탐욕스런 문어발과 바꾸고, 우리의 뿌리깊은 본능을 소비벽과 바꾸며, 분화된 우리의 지식을 강력한 슬로건과 맞바꾸고 있다고 표현함에 동의한다. 이런환경에서 어린아이들은 점점 더 볼모가 되어가며 인위적인 삶외의 다른것을 알지 못함에 진짜 경험으로의 접근이 막혀있다고 하여 컴퓨터를 비판하고 있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처럼 위장하고자 가장 값싸고 가장 파렴치하고 가장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 낸 사회를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컴퓨터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고있지 않은가? 더 쉽고 더 신속하고 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시대에서 우린 정말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핸드폰, 컴퓨터가 없이 하루를 살기엔 참으로 불편하고 불만스럽지 않던가. 컴퓨터는 인간과의 대화를 거두고, 눈빛을 거두고, 자연과의 소통을 거두고, 감동과 감성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성성의 문제에 대한 공감을 한다. 여성성, 난 은연중에 여성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살아왔다.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그러했으니 말이다. 작금의 시대에 여성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란 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바뀌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평등이니, 여성상위시대니 하는 외부의 강요된기준, 외모와 사회적, 직업적 이미지에 따라 소비와 유행에, 사회적 강박관념에 순응되어 인공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여성성, 구조와 기능 차원에서 대지를 닮은, 관계를 맺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재능을 갖은, 생명을 창조해내는 재증을 갖은, 그것이 여성이며 여성성이다. 카프카의 연인 밀레나는 수용소에서 자기막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간수 몰래 훔친 3-4분동안 순식간에 공포를 없애고 죽어가는 여성들을 환영받고 사랑받는 소중한 손님으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소개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3-4분에 그들이 느꼈던, 내적 삶을 받아들이고, 존재하는것을 받아들이는 그런 기분을 나 역시 느낄수 있었다고 감히 말한다.

 

교육, e-ducere. 밖으로 인도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빛나는 임무는 우리가 받은 것을 전수하고 우리의 자식을 교육하는 일이다라고 생제르는 말하고 있다. 동물들은 세포와 신경계에 특수한 지식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DNA속에 본능이라고 불리우는 특수한 지식을 갖고 태어나지 않던가? 그러나 인간이 갖는 특수성은 교육이란 단계를 통해서 삶의 메세지를 읽고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교사가 무기력한 청소년들을 데리고 딱 3주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한 학생이 요약한 메세지는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안에 무언가가 있다는걸 결코 알지 못했을거에요, 이제는 느낀것을 실천할 겁니다. 아찔한 확인이다. 인간안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는 그것을 깨우지 않는 이상 시간의 끝까지 잠들어있다는것. 그것을 깨우는것이 교육인것을, 내가, 그리고 전수자가 해야 할일이란 것을 배운다. 그리곤 눈을 감고 나를 돌아본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온 수필의 일부, 너무나 중요한 수필이었다고 해서 외웠던기억이 난다.  생제르는 65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책은 생의 마지막에 썼음을 느낄수 있다. 젊은시절의 영혼은 유행성 류마티스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이데올르기와 현행규범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청춘예찬의 부분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청춘이 주는 가능성은 무한하겠디만 청춘이기에 가혹한 판단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빛을 감추고 있다. 사람이 마음과 사유를 넓혀 영적 자유를 얻는데는 한평생이 필요하다. 한평생이다. 청춘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실수투성이의 청춘일뿐이다. 내 아이를 좀더 이해한다. 내아이가 겪는 시절을 본다.

 

이렇듯 이책은 여러부분에서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수용하고, 자연과 호흡하고, 자발적으로 변화하기를 권한다. 아마 몇일이 지난후 난 또 유혹과 탐닉의 세상에서, 행복을 강요당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내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글귀처럼.. 말이다.

 

 

2011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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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철학자의 파이프와 파리아의 파이프 해설이 있는 명작 읽기 5
자끄 앙리 베르나뎅 드 생 피에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와우라이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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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전, 영국 왕립학회는 20명의 학자에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저명한 학자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방법, 인간을 개명시키는방법에 대한 3500가지의 질문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기로 한다. 우리의 주인공 영국의 철학자는 그 질문지를 들고 암스텔담의 유대인교회, 그리스의 정교회, 파리의 솔본 대학, 이탈리아의 피렌체박물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도서관, 로마의 바티칸, 이집트의 콥트, 레바논의 마론파교도들을 만나고 3년간의 여행끝에 갠지스강 연변의 베나레스 서고에서 브라만 계급의 희귀원고나 서적등을 수집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해답은 명쾌하지 못하고 증명과 또다른 증명을 요구하여 결국 단순한 진리마저도 문제점을 드러냄을 인식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3500개의 질문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로 진리를 정의한다는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브라만 대승을 만나기로 결정하고 그를 찾아 가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형식을 만들어 내고 그 형식에 얽매여 실제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바른것을 추구하지 못한 사례들이 얼마나 많던가.. 우리나라 양반이 그랬고, 중국의 주자가 그랬고,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그랬고 작금의 시대에서도 그런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이 책의 인도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태어났다는 브라만 역시 그랬다.  실제로 누가 그에게 은총을 주었고 누가 흰두교의 4가지 계급을 만들었던가? 결국은 최고의 이익을 갖을 집단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갖은 자들의 진리란 결국 특권과 이익을 쫒는 진리일수 밖에 없을것이고, 이책에서도 브라만을 만나기 위해 영국 철학자가 행해야 했던 형식은 얼마나 우스꽝 스럽던가? 철학자가 이세상 반바퀴를 돌아다녀 본것이라곤 오해화 불화밖에 없었다고 했던것이 진실이었을것이다. 인간이 무리를 짓고 사회를 형성하면서 부터 발생한 계급사회에서 기득권위주로 돌아가는 형식이란 절차에 쌓여있는 그 곳에서 진리란 결국 특권임을 철학자는 느꼈을 것이다.

 

그가 만난 천민중에 천민 파리아는 갖은것이 없고 아무나 죽여도 되는 천민이라 예의나 법이 적용되지 않는 불행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 역시 파리아는 아니었지만 불행을 많이 겪은 여자였다. 그네들이 불행속에서 느낀것은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도우이 필요할때 거절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자연속에서 살게 된것은 불행한 인간사회에서 도망친것이 계기였다. 그래서 그가 불행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자연속에서 그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진리가 되었다. 그가 인간사회에서 보고 느낀것은 기득권이 갖은 방탕과 명예욕과 미신과 욕심에 사로잡혀 잠을 제대로 못자는 , 인간의 불행은 환락의 재미를 맛보면 맛볼수록 더 불행해지는것. 파리아는 황제보다 덜 불행할수도 있다는것을 느끼게 된다.

 

파리아에게 철학자가 주고 싶어했던 산호줄을 갖은 시계는 홀로사는 파리아에게는  당연히 아무 소용이 없었을것이다. 시간의 개념이 필요없이 사는 사람, 태양이 뜨면 아침이고 지면 저녁인 그런 개념을 갖은 사람에게, 또 타인과 섞이지 않는 사람과 사는 파리아에게 목걸이가 무슨소용이 있으랴. 겉모습이나 형식은 그네들에게 아무 필요가 없었을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사회에 속해 살았다면 어찌되었을까? 파리아란 계급이 아니고 최소한 수드라의 직급이었다면, 그는 사람과 섞이기 위해 시계가 필요했을것이고 다른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목걸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살수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교환하게 된 파이프, 그곳엔 감사와 좋은 벗에 대한 추억만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성선설로 연결되어 진다면, 철학자 아니 누구나 아무욕심없이, 착하게 살며, 작은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파리아에게서 느낀것은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할것이다. 갖지못한자, 욕심이 없는 자의 행복은 당연히 단순할수 밖에 없다.

 

앞 페이지 부분에 나오는 진리 자체가 그것이 어떤 부족의 관습이 될때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옵니다. 라고 말한것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 현실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살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책의 파리아 처럼 인간사회를 떠나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시대에서도 갖기를 조금하고,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더 생각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면 지금보다 조금더 행복해질수 있다는 진리를 이 책은 파리아와 철학자의 대화에서 주고 있다.

 

인간은 순수하고도 단순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 진리를 자연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찾아낸 진리는 오로지 착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말할 일입니다.

 

2011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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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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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소설의 몽유도원을 읽으면서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었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의 견해 차이와 학자로서의 양심, 그리고 해석을 통해 주입된 사고를 보면서 분노와 이해를 함께 하기도 했었다. TV에서 광개토태왕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것들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이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쭈욱 읽어가며, 역시 가장 관심을 갖고 주의깊게 본 부분도 8장, 고구려에 등장한 왜국의 이야기였고, 그다음이 9장 후연과의 관계였다. 이렇듯, 접한 만큼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에서 일고 있는 고구려에 대한 관심과 TV에서의 사극바람은 역사바로 알기에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 책은 1775자의 구성된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근거로 삼국사기와 박제상열전, 또 일본본기와 고구려를 연구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이 쓴 무수한 문헌의 비교 분석을 통해 작가가 추측하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이야기이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미천왕때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때까지의 이야기와 그 시대의 중국의 상황- 즉, 전연, 후연, 북위, 거란의 관계-과 아래 백제, 신라, 가야, 왜 등의 정치, 경제, 문화 및 실생활등을 설명함으로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답답했던것은 우리나라 민족이 정벌보다는 방어위주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느꼈듯이 고구려 외에 백제 신라 역시 왜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가지였겠지만, 그러한 것들이 고려로,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늘 방어만을 했기에-물론 사대부의 나라였던 조선에서는 의미가 다른방어였겠지만 -, 900번의 침공을 받은 나라로 되어있다. 이것은 900번의 침공에서도 살아남은 끈기있는 나라로 볼수도 있겠지만, 900번이나 침공을 당할만큼의 나라이기도 하였다는 의미다. 과연 그것이 미덕이었을까? 현대와 같이 완전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최선의방어는 공격이었다.

 

이책에서는 광개토태왕의 백제 신라정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광개토태왕의 성품은 대인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책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고구려 천하의 수호자인 광개토태왕은 천하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처단해야 할 의무가 있던 사람이고, 더군다나 백제는 같은 조상을 섬기는 나라였기에 백제인을 수묘인으로까지 쓰도록 한다. 그런의미에서 작가가 말한 고국원왕을 죽인 백제에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한다는 정벌원인보다는 마음을 얻고 같이 화합해 나가며 조공을 받치는 것으로 우위의 국가임을 알려주는 선에서 완전정벌은 하지 않았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예전 중국이 그랬던것 처럼 말이다.

 

이책이 비록 광개토태왕과 비문을 위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광개토태왕의 정복정책이 단지 재위기간인 22년만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알수 있는데, 소수림왕의 율령반포라든지, 태학설립, 또 불교수용같은것들이 광개토태왕의 정복정책의 밑바탕이 되었고, 광개토태왕이 이루지 못한 평양천도라든가, 남하정책 및 고구려 부강은 장수태왕에 와서 확고히 이루어진점을 보아, 작금의 시대에 일회성 정책들이나, 새로운 정책이라 하여 과거의 것은 모조리 갈아치워 연계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겼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왜국은 무려 여덟번이나 등장한다. 이는 백제가 등장하는 횟수와 비슷하다고 할정도다. 이것은 일본에게 그들의 조상에 대한 과대평가를 하도록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기네 식으로 비문을 해석하여 식민사관의 타탕성을 주장하게도 하였지만, 어째든 비문에 여덟번이나 등장했다는것은 그만큼 비중이 컸던 곳이 왜국이었다는 설명이 되겠다. 물론 자체적으로 고구려를 침공했든 백제의 사주를 받고, 신라의 사주를 받고 고구려를 침공했든간에 왜국의 위치나 역량이 우리가 단순히 알던 소국은 아니었을거란 이야기가 된다.

 

일본학계는 고대 왜국의 활동을 과장해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한국 학계는 고대 왜국에 대해 가급적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의 시대가 있었고, 그에 따른 일본에 대한 반감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초중고 교과서에서 또는 위인전에서도 고대왜국은 미개한 나라고, 국가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나라로 배우지 않았던가? 민족주의적 편견을 버리고 고대 일본에대한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동감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우리는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작금의 시대에 일본과의 많은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역사는 현시대의 거울이다라고 말한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현시대를 바로 이끌수 있으며 미래도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이러한 역사찾기 노력들이 조금씩 되어지는것이 참으로 기쁘며 논문처럼 어렵게만 쓰여진 책들을 작가의 추측으로 풀어쓴 이 책을 접하게 되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1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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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체탄 바갓 지음, 정승원 옮김 / 북스퀘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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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 내 큰아이가 수험생인 이유이다. 그아이는 지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속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지독한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제 100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시험에 대해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아이와의 대화를 그닥 잘 끝내지 못했다. 결국 학벌을 무시할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그애나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저 이미 결정되어진 길에 대해 잠시 가벼운 논쟁을 벌였을 뿐이다.

 

세 얼간이는 인도 최고 공과대학인 IIT에 입학한 수재들 -하리, 알록, 라이언은 확실한 수재다.- 의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여정을 각기 상황이 다른 세명의 학생이 그네들이 다른사람들과 달리 겪었던 몇가지의 에피소드를 엮어가며 20대초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일들을 일기를 쓰듯이 가볍게 엮어 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앞구절을 읽을때쯤엔 그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을 내 대학시절을 생각했고, 책을 덮고 나서는 앞으로 그런 대학생활을 하게될 내 큰아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 행복을 위해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몇명이나 될까? 이책의 주인공 하리, 알록, 라이언의 행복은 과연 IIT에 입학하는것이 행복이었을까? 어째든간에 첫 페이지에 보면 2년동안 욕창을 닦아내며 공부를 해서 들어간곳이 IIT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 현실과 너무 비슷하다. 그렇게 입학해 놓고보니, 학점을 겨우 5점대를 유지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그네들이 반란을 꾀할 이유는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른이었다면 시험지를 훔칠생각따위는 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에 대한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알록의 경우, 집안의 기대때문에 친구를 포기하고 그 결과 일년에 겨우 1포인트를 얻었을 뿐이다.  그가 하리와 라이언에게 돌아온것은 알록에게 지워진 짐에 대한 최소한의 거부이며,  스스로의 자유본능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라이언의 부모님께 편지를 썼던 하리, 편지를 쓰게 된것을 알면 라이언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편지를 부치는 하리를 보면서, 라이언이 진정한 친구를 얻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라이언은 늘 친구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고, 제일 반항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이고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그의 정체는 역시 애정결핍이었다. 라이언의 애정은 친구에게 쏠리게 되었을거고, 전염처럼 하리와 알록도 결국 변화되었지 싶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4학년, 정상으로 졸업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하리와 알록은 소프트업계에서 라이언은 창의력을 바탕으로 대학연구소에 남게 된다.  아~ 베라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세 얼간이들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바로 보아준 베라교수, 만약 그네들에게 베라교수가 없었더라면 마지막 글에 "나는 가끔 IIT를 그리워한다."라고 쓸수 있었을까? 아니 이 소설 자체가 완성되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베라교수와 같아져야 한다. 어느 누구라도 IIT에 들어온 만큼 그들은 분명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재능을 보아주지 않고 단지 학점만으로 평가하는 IIT속에서 유일하게 그네들을 이해해준 사람, 결국 그네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해결책이 되어, 세명의 인생을 바꾸어준 사람이었다. 난 내 아이들에게 진정한 울타리가 되어지고 있는지, 바르게 이끌고 있는지, 그아이를 진정 이해하고 있는지.. ...

 

이 책은 우리 사회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난, 20대의 내 아이가 열정을 갖고 자유의지로서 살며, 평생의 재산인 좋은 친구를 만들기에 노력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애의 행복이 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수능을 끝낸 후에~ 어쩔수 없었다라는 핑게와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몰아가지 마십시오. 이 문제에 관한한 우리 교수들이 훨씬더 비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최대한 즐기십시오.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여러분이 사귄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친구를 사귀는데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습니다. 때때로 저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낮은 평점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한밤중에 강의동 옥상에 올라가 보드카를 마시는것도 좋을것입니다. " -하리의 꿈속에서 체리안교수의 졸업연설문의 일부~

 

2011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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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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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주도의 인조반정후 북인정권이 무너지며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이 참여하는 양상으로 붕당정치가 전개되었다. 두차례 예송과 숙종때 여러차례의 환국을 겪으면서 상대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현상까지 나타났고, 붕당정치는 합리적인 주장과 민심에 의거하기 보다는 자기 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띠었다. ... 서인는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주로 노론이 정치를 주도하다가 노론중에서도 소수 특정가문의 중심이 되어 정치를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가문은 권력을 독점하고 지위를 세습하여 장기 집권을 하게 된다. 이는 왕권의 약화를 초래하는것이었다. 송시열 : 효종~ 숙종때 학자 관료로서 서인중심의 인물이었다.

- 중학교 국정도서편찬위원회의 국사책에서.

 

인조반정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서인은 주자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였다. 노론과는 달리 6경과 제자백가등에서 사회 모순을 해결할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려는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노론은 이들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박해하는 사상적 경직성을 보였다.

사문난적 : 유학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비난하는 표현이다.  숙종때 송시열이 반대파였던 윤휴와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비난하였던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중학교 국사책에서는 전혀 윤휴의 이름을 찾을수가 없었고 고등학교 한국사책에서 사문난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송시열의 반대파로서 윤휴를 설명하는 것을 찾을수 있었다.

 

그 시대는 윤휴에게 더 이상 한마디의 말도 허용하지 않았다.

 

가슴이 저미어 왔다. 책을 읽는 도중 한숨을 수십번 쉬기도 하였다. 분개하였다. 교과서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 그리고 지금껏 우리에게 각인되어왔던 조선시대는 유교가 뒷받침 되는 나라였고, 병자호란을 막아낸 나라였고, 임진왜란을 막아낸 나라였다. 작은 나라였지만, 침략자를 물리친 자랑스런 나라이다. 어느 통계에 보면 900번의 침공이 있었다고 하는 우리나라 역사는 그 침공속에서도 꿋꿋이 맥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나라였다.  물론 어느시대든지 당파의 싸움은 있었다. 현재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작금의 시대만을 보더라도 당파싸움은 얼마나 치졸하고 얼마나 허구가 많던가? 조선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던건 자명할것이다. 그러나, 윤휴의 침묵의 제국을 읽으면서 윤휴뿐만 아니고 이렇게 묻혀진 인사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짐작하게 된다. 잘못된 지식으로 잘못된 교육으로 묻어져버린 학자들 승자의 기록에 의해 씌여진 역사서에 아무 비판 없이 외우기식에 급급했던 내게 이 책은 큰 돌맹이었다. 그래서 윤휴란 인물을 통해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윤휴는 그시대에 서인영수인 송시열과 비길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통하였다. 예송논쟁에서도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서 학문에만 뜻을 두었던 그가 벼슬을 하게 된것은 북벌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삼번이 난이 일었을때가 기회임을 인식했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으로 북벌을 계획하였고 숙종이 그의 뜻과 함께할 꿈을 꾸었기에 벼슬에 나가게 된것이다.  물론 서인에게 북벌은 당의 구호였다. 그러나 겉으론 북벌을 주장했디만, 실제로 북벌을 원하지 않았다. 북벌은 그저 왕을 압박하고 백성들에게 군림하고자 하는 서인의 당략이었을뿐이다. 당연히 윤휴의 북벌은 서인의 눈에 가시였을것이고 서인중심의 조선은 윤휴를 곱게 볼일이 없었을것이다. 북벌을 원했던 조선의 왕들은 어찌되었던가?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 뒤이에 현종이 북벌의 뜻을 비친 후에 죽음, 조선은 이미 사대부의 나라였다.

 

윤휴는 또한 성리학 이외의 학문이 이단으로 몰리던 시대, 사회의 요구와는 달리 신분제가 되레 강해지던 시대, 남녀차별이 마치 하늘의 원칙인것처럼 호도되던 시대에에 사회흐름이 옛 성현들, 즉 공자와 맹자의 생각과는 다르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유학의 성인들중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공자 맹자는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지 않아다. 다만 인격을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으로 분류했다. 주희가 신분제를 하늘이 정해준 경계로 분류하고 나서 신분제가 마치 유학의 기본 이론인거처럼 호도되었을뿐이다. 조선의 사대부가 왜 주희의 주자학을 주장했는지는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윤휴의 생각을 살펴보면,

 

윤휴는 북벌대의 실현을 출사의 명분으로 삼았기에 벼슬에 들어서는 대변혁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첫째로 문제삼은것은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대부들과 유학자들이 북벌은 생각치 않고 저들을 섬기는 것을 달게 여기고 수치도 없이 무릎을 꿇는다고 책자소에 적고 있는데, 이런 패배주의를 벗어나는 방법은 현재 삼번의 난에 휩쓸리고 있는 시기에 청을 치면 청을 꺾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윤휴가 주목한 세력은 겉다르고 속다른 사대부 대신 백성이었다.

 

윤휴에겐 스승이 없었다. 독학이었다. 그것은 특정사고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였다. 윤휴는 유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한국 고대사에도 통달해 있었다고 전한다. 병자호란의 삼전도 굴욕이라든가,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삼번이 난이 있는 그 시대가 천시라고 본 윤휴는 북벌을 위해서 백성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리하여 백성을 북벌에 동참시키고자 하면, 법이나 정책이 백성들 중심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윤휴는 지패법과 호포법, 오가작통을 주장하게 되고, 당연히 이것은 양반들에게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킬수 밖에 없다. 이는입으로는 성현의 말씀을 달고 살지만 행동은 성현의 말씀과 정반대로 사는 특권을 갖은 사대부에겐 통하지 않았다. 결국 지패법만 2년정도 시행되다가 다시 원래 호패법으로 돌아가고 호포법은 좌절된다. 또한 만인과를 실시했다. 신분을 망라하고 능력있는 자를 선발해 북벌에 앞장서게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만과를 실시하고는 북벌을 단행하지 않았으니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윤휴가 출사한 이유가 북벌에 있었기에, 주희의 경전해석만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상도 변해야 하고, 말로만 북벌을 외치는 사대부의 이중적 처신도 변해야 하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다하지 않는 사대부의 계급 이기주의도 변해야하고 능력이 아닌 신분을 따지는 신분제도도 바뀌어야 했다. 그래야만 북벌대의를 이룰수 있었다. 그러나 윤휴의 야심찬 계획은 나라보다 당이 중시되는 시대, 군부보다 당수가 중시되는 시대, 국왕보다 스승이 중시되는 시대, 옳고 그름보다 유불리가 중시되는 시대이기에 매번 저지되었다.  윤휴의 주장은 대부분 채택되지 못했고 윤휴는 사퇴를 결심한다. 그러나 삼번의 난이 끝나고 숙종은 더이상 윤휴의 편에 서지 않게 되고 서인의 편에 서게 되며 경신환국을 격으며 조관이란 단어와, 도체찰사부를 설치할때 부체찰사가 되기를 원했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내리게 된다. 이때 윤휴는 자신의 처지를 시대의 우환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제 한몸의 영화와 제 집안의 부귀만 힘쓰는것이 조선의 형세였는데 이를 무시하고 북벌에 나선것이 시대의 우환을 범한것이요, 사대부들의 힘없은 백성들의 등골을 빼서 제 배를 채우는 것이 시대의 형세였는데 양반들에 게도 군역을 부과해야 한다는것이 시대의 우환이었으며, 입으로 주자학을 외우는것이 학문의 완성인 시대에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려고 햇던것이 시대의 우환이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기막히지 않은가?

 

윤휴가 역적이 아니란 사실은 숙종이 누구보다도 더 잘았았을것이란것이 작가의 추측이다. 숙종은 서인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자신을 쫒아낼수 있다고 두려워했을것이고, 삼번의 난이 끝난후 청나라에서 조선의 북벌움직임을 조사할것이란 두려움에 대한 면피용이었을것이다. 윤휴가 죽어야 할 실제 죄는 북벌을 추진한죄, 양반사대부들도 평민처럼 똑같은 의무를 지어야 한다는 개혁을 실시하려했던것이고 이 두가지는 서인정권에게는 금기였기에 윤휴는 사라져야 했을것이다. 이렇듯, 시대는 형세는 진정한 정의를 묻어버릴수도 있는것이다.  

 

주자가 절대적 가치로 군림하던 시대, 그가 죽은후 조선은 침묵과 위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사후 3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숙종실록의 노론사관은 노론이외의 모든 정파를 극도로 비난하고 있기에 비난의 속내를 가려서 해설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쓰고 있고 실제로 작가는 숙종실록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그외에 백호연보, 책강소, 당의통략등의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승자의 기록으로 씌여진 역사서를 반박하고 추측하도록하여 바른 식견을 갖도록 하엿다. 서인의 중심인물인 송시열과 그 당파로 인해 사문난적과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던 윤휴는 작가를 만나 북벌과 개혁, 민초의 편에 섰던 인물로 재해석 되어지고 이렇듯 이시대에 와서라도 진실이 알려지게 된 것을 윤휴는 알고 있을지...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을 가졌었음을 고백한다.

 

푸른산에 찬 기운 일어 망해루에 바람이 거세고

강구름이 비를 불러 해는 모래톱으로 사라지네

이때에 높이 올라 바라보는 것도 우연한 충성인데

눈 들어 산하를 바라보니 시름을 이길수 없도다.     -366page 삼막사 망해루에 올라 북벌대의를 이루지 못한것을 시름하며 지은 절구.

 

2011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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