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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평점 :
'아침이 되자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부부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낳고 복닥거리며 사는 부부의 삶이 그러하듯 티격태격하는 날도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는, 단조롭고도 평화로운 그런 삶들을 다른 부부들도 사는 거라고 생각하며 정하는 살아간다. 하지만 내심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모른체하고 싶었을 뿐....
늘 그렇듯 늦게 귀가한 남편이 그날따라 오랫동안 욕실에서 나오지 않자 정하는 궁금한 마음에 욕실 틈새로 엿보게 된다. 그리고 뭔가를 빨고 있는 모습과 피 묻은 칼을 보게 된다. 하지만 정하는 남편에게 묻지 않고 모른 채 한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한 후에야 남편이 욕실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퇴근한 남편을 맞이한다. 하지만 정하의 우려는 곧 인근에 발생한 살인사건과 그날 밤 수상했던 남편의 행동으로 연결되지만 여느 날처럼 출근했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며 실종으로 이어진다.
정하의 집 맞은편 60평대에 사는 우성의 아내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을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보기에 정하는 매번 우성의 아내가 불편하기만 하다. 같은 동에 사는 자영이 엄마가 실어 나르는 소식을 들으며 간혹 하대를 받기도 하지만 정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최대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런 정하의 남편이 실종되고 우성의 아내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남의 얘기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며 오히려 우성과 정하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이웃에서 호감을 느끼는 남녀 사이로 발전한 정하와 우성, 전 남편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며 정하는 비로소 자신이 여자임을 느끼게 되는 날들을 만끽하며 가슴 설레던 시간을 보내던 중 정하는 딸에게서 혼자 고시원에서 살고 있던 동생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십 년 전 실종된 남편처럼 사라져버린 아들, 그리고 남편이 가지고 있던 칼을 아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정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게 된다.
겉으로는 모든 걸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어쩌면 허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아내만을 위하는 다정다감한 남편,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내조하는 바람직한 아내, 단란하며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만 보고 우리는 곧잘 비교하며 부러워하곤 한다. 그런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소설인 <배니시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두 부부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초반부터 너무 적나라한 아파트 간 격차로 시작되는 인간의 본성에 불편한 감이 있지만 너무도 사실적이기에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졌던 것 같다. 읽는 내내 그런 불편감이 들었던 소설인데 결말조차 입이 떡 벌어지게 되는지라 가족형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소설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