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유럽의 동쪽과 서쪽에서 코뮤니즘과 나치즘의 이름 아래 두 개의 팽창주의 파시즘이 학살을 밥 먹듯 하던 1930~40년대는 20세기에서 가장 참담한 시기였다.(본문 366쪽) -를 치열하게 사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역사와 동떨어진 듯한 나중심적이고 편협한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억압과 혼돈의 시기를 사는 피지배민족으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버리고 ‘최선의 인간(394쪽)이라고 선택한 공산주의자를 택한 세 여자의 삶!
˝인간의 이기심, 자본주의의 악마성이 번식하지 못하도록 만든 방부제가 소비에트인데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에 방부제가 없는 것일까.‘라는 정숙의 말이 권력를 향한 인간의 탐욕으로 이미 공산주의의 미래 모습을 보았기에 참 가슴이 아프다!

내 삶에 새로운 시작이었던 1991년 4월 서울을 에필로그로 시작된 책! 표지의 사진과 새 여자의 행로를 표시해 놓은 지도를 보며 ‘도대체 무슨 책일까? 르뽀형식인가?‘몇 번이나 앞장과 지도를 살펴보았다. 심지어 바랜 옛날 사진 때문에 작가이름인 줄 모르고 ‘조선의 장편 소설‘인줄 알았다 !

2편을 마저 읽어봐야 정리가 되겠지만 세 여자가 함께 했던 20세기의 봄은 봄으로서 끝나기도 하고, 여름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제법 길게 새 시대 속에 스며들어 꽃을 피우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 것 같다.
고명자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 홀로 20대 사진인 것으로 보아 인간 한계의 장막에 부딪혀 더 진전될 것 같지 않아 씁쓸하고 마음 아프다. 희생과 도전이 꽃 피우지 못하고 꺽였을 때의 비통함과 상처가 쓰리다.
주세죽에게서는 ‘노란 목도리를 둘러 준 소녀상‘ 이 연상된다. 역사에 의해 유린 당한 우리의 아픔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이제 진정으로 내 딸이 아니라 국가의 딸이 되었구나. 그것도 조선이 아니라 소련의 딸이 되었구나.˝라는 그녀의 울림이 가슴 저리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바친 그녀의 삶에 주어진 처참힌 보상들!
국가의 딸! -국가라는 권력에 의해 사상과 행동이 통제되고 조정당할 수 있는 비독립된 인격체-라고 의미가 느껴진다.

반면 허정숙의 삶은 가장 당차고 시원하다. 공산당에서조차 좁은 입지였던 여성으로서 선구자적인 행보를 보인다. 여장부로서 헌영과 논쟁을 벌일 때도, 감옥에 들어가기 전 자녀들과 어머니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도, 실질적인 대안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가차없이 떠날 때 떠나더라도 자녀들을 세심하게 양육하는 것도 참 멋지다.
2편에서는 허정숙의 이야기가 더 기대가 된다. 에필로그 1991 평양은 그녀의 이야기가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한 급박한 상황때문에 2편음 언제 다 앍을 지 모르게ㅛ다.

˝정치에 최선은 없소. 차선을 택하는거지.˝라는 창익의 말이 총선시기와 맞물려 묘하게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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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은 새삼 중국이 넓구나 싶었다. 그녀가 처음 만난 중국은 유럽을 한 귀퉁이 떼다 놓은 듯한 상해였지만 지금 머무르는 연안은 황토 언덕이 중국인의 맨살처럼 누렇게 드러나 있는 헐벗고 가난한 오지였다. 중국에는 여러 민족이 있고 기후와 풍광이 다른여러 지역이 있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을 만치 다른 방언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39년의 중국에는 여러 시대가 공존하고있었다. 홍구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중국의 다음 시대라 굳건히 믿었지만 큰길에서 조금만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직 황제의 세상인줄 아는 변발의 청나라 백성들이 있고 이들은 신해혁명이 일어나 국민당정부가 들어선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조선에 있을 때는 사회가 미성숙하고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최선의 인간이라는 공산주의자들조차 쓸데없는 파벌투쟁에 힘을 낭비하고 있구나 했어요. 연안은 물론 많이 달랐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 아닌가 싶어요. 당이 전투력을 유지하려면 때로 숙당작업이 불가피하겠지요. 한데 온갖 개인감정과 파벌적 음모가 끼어들면서 활동가들이 개죽음한단 말이지요. 그걸 피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면 인간성이란 원천적으로 진화가 불가능한 걸까요. 혁명 과정의 문제이고 혁명이 완료되면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소련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정숙은 레닌 사후 소련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에 대해 대강 듣고있었다. 인간의 이기심, 자본주의의 악마성이 번식 못 하도록 만든 방부제가 소비에트인데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에 방부제는 없는것일까.

정치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요. 어떤 정치에도 최선은 없소.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것뿐이오. 마르크시즘이 봉건제보다 낫고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니까. 끼니도 해결 못하는 중국 인민들에게 아편을 강제로 떠먹인 것이 자본주의요, 그자본의 나갈 길을 개척하는 게 제국주의의 총칼 아니오? 부르주아정치라는 게 뭐요? 자본가들과 지주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요. 장개석이 지금 하는 짓이 그것 아니오? 지주 자본가들이 장개석군대를 먹여 살리고 있잖소? 장개석 일파는 중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더라도 공산정부의 토지개혁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오.
장개석은 끊임없이 일본하고 뒷거래하고 있소. 아마 서안사변 없었으면 일본에 황하 이북을 내줬을 거요. 중국을 반토막 내서 그반쪽이라도 챙기는 게 낫다는 심보요. 그런 장개석에 비해 모택동은 단연 우월하오. 정치에 최선은 없소. 차선을 택하는 거지."


 지금까지 정숙은 뜻대로 살아왔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한적 없다. 싫은 남자와 참고 산 적도 없다. 특별한 생활신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모험과 자존과 충동의 강렬함이 그녀를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에 안 들면 떠났다.
 떠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하책下策이었다. 이제는 머무르고 눌러두고 견디는 걸 배워야 한다. 인내는 나이가 주는 선물이다.
떠날 때와 머물 때, 버릴 때와 견딜 때를 알면 중년이 되었다는 뜻일까?그것을 성숙이라 부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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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터가 그럴 것이다. 죽고 사는 게 한순간의 일이다. 이처럼 생사의 갈림길을 거듭 지나오다 보면 당장 내게 닥쳐오는 운명조차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덤덤해진다. 목숨이 가벼운데 무엇이 문제겠는가. 경성에서 어깨를 짓눌렀던 번민들은 어느 하늘로날아가버렸는지 흔적도 없다. 격렬하고 절박한 하루하루의 현실이 전차 부대처럼 과거의 기억들을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어느 아침 정숙은 경성에 두고 온 막내아들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하기도 했다. 삼청동 골짜기의 볕 잘 드는 2층 양옥 태양광선치료소에서 하얀 가운 입고 기계를 만지던 일이 어느 한낮의 백일몽인듯 아련했다. 경성을 떠난 지 2년도 채 못 되었지만 20년은 지난듯했다. 그녀는 모호한 침묵이 흐르는 식민지 수도를 빠져나와 콩볶듯 요란한 전화戰火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그녀가 바라던바였다. 적敵과 아我가 분명한 전선에서 총 들고 싸우겠다고 중국에 온 것이다. 적의 전투기가 폭격을 퍼붓는 하늘 아래서 그녀는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의 문턱에 섰지만 식민지의 뿌연 하늘을 함께 덮고서 적들과 이상한 동침을 하는 것보다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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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쪽 혁명운동한다고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농토 찾아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조국을 잃고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에서 그녀는 유랑민들이 겪었을 수난을 막연히 집작해볼 뿐이었다. 넝마처럼 낡은 옷은 물구경 한 지 오래인 듯 황토빛이었다. 우물이 있지만 우선순위 첫째가 식수, 다음은 농업용수라 목욕이나 빨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극동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 한다. 가축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를 타고 왔는데 먹는 것도 부실하고 약도 없고 해서 병들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와 노인이 많이 죽었고 시체는 철로변에 묻었다. 세수도 목욕도 할 수 없어 여자들이 달리는 열차에서 차창 밖으로 머리칼을 털면 비듬과 이가 눈보라처럼 날렸다 한다. 화물열차는 역도 아닌 곳에 서서 허허벌판에 사람들을 부려놓았다. 그들은 가져온 농기구로 움집을 파고 풀을 베어 얼기설기 지붕을 엮었다. 식량이라고는 정부가지급한 가족당 밀가루 백 킬로그램이 전부였다. 열차에서 병들어죽고 겨울 나는 동안 굶어 죽고 얼어 죽고 해서 지금은 처음 떠날때의 절반이 되었다. 누구나 가족의 절반을 잃은 셈이다. 이주민들은 가을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야생의 초원에서 잡목과 풀을 뿌리째 뽑아낸 다음 돌을 골라냈다. 봄이 오자 밭이랑에 콩과 옥수수를 심었다. 겨울 나고 얼었다 풀린 고운 흙을 짓이겨벽돌을 만들어 살림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 얼추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이들은 극악한 시간을 보내고 이제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1930년대 내내 스탈린은 전시체제 구축에 몰두했다. 한편에선 공업과 철강 생산과 무기 개발의 5개년계획 시리즈, 다른 한편에선 숙청과 유형과 처형의 공포정치, 그리고 소수민족들을 뒤섞어버리는 거칠고도 과격한 동화정책이었다.
 1937년은 소련 내 조선인들에게 최악의 불운한 해였다. 극동지방 조선인 대략 18만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고 이주 직전에 당간부와 지식인, 전문가 상당수가 즉결재판 받고 처형됐는데그 수가 2500이었다. 김단야처럼 이들도 대개 일본 밀정 혐의였다. 스탈린정부로서는 강제이주정책이 일거양득이었으니 어느 쪽 에 봉사하는지 의심스러운 국경지대 소수민족들을 청소하고 중앙아시아 황무지도 개척하자는 것이었다.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카자흐스탄이 소련에 편입된 것이 1936년이었으니 이 광활한 땅을소비에트체제 안에 흡수하는 일도 시급했다.

 유럽의 동쪽과 서쪽에서 코뮤니즘과 나치즘의 이름 아래 두 개의 팽창주의 파시즘이 학살을 밥 먹듯 하던 1930~40년대는 20세 기에서 가장 참담한 시기였다. 아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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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죽은 이 아이를 낳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품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무리 시설이 훌륭한 보육원이라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비비안나더러 혁명의 딸이라고 명자가 그럤던가. 이제 진정으로 내 딸이 아니라 국가의 딸이 되었구나. 그것도 조선이 아니라 소련의 딸이 되었구나.

"역사가 나선형을 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로마노프왕조 마지막 백 년을 봐도 그래요. 니콜라이 1세부터 알렉산드르 2세, 3세, 니콜라이 2세까지 황제가 바뀔 때마다 개혁과 반동사이를 왕복하면서 결국 볼셰비키혁명에 이르렀잖아요? 스탈린체제가 아무리 어떻다 해도 차르시대보다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어쨌든 진화의 노정에 있는 거고 혁명정부가 자리 잡아가는 과정도 1보 후퇴가 있으면 곧 2보 전진이 따라오지 않을까요."

 소련의 의료체제는 여전히 감동이었다. 출산은 개인이나 가족을 떠나 국가를 위한 일이므로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소련은 그런 나라였다. 망명객 부부를 품어주고 근사한 휴양지와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을 빼앗아가고 대신 가장 노릇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집 안은 어둠과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남편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남편은 어디에 있을까.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을까. 시베리아로 유형 갔을까. 살아 있기는 한 걸까.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일상적인 혼란이었다. 아기와 함께 집에서 겨울을 난 세죽은 세 달짜리 아들을 탁아소에 맡기고 출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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