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죽은 이 아이를 낳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품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무리 시설이 훌륭한 보육원이라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비비안나더러 혁명의 딸이라고 명자가 그럤던가. 이제 진정으로 내 딸이 아니라 국가의 딸이 되었구나. 그것도 조선이 아니라 소련의 딸이 되었구나.

"역사가 나선형을 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로마노프왕조 마지막 백 년을 봐도 그래요. 니콜라이 1세부터 알렉산드르 2세, 3세, 니콜라이 2세까지 황제가 바뀔 때마다 개혁과 반동사이를 왕복하면서 결국 볼셰비키혁명에 이르렀잖아요? 스탈린체제가 아무리 어떻다 해도 차르시대보다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어쨌든 진화의 노정에 있는 거고 혁명정부가 자리 잡아가는 과정도 1보 후퇴가 있으면 곧 2보 전진이 따라오지 않을까요."

 소련의 의료체제는 여전히 감동이었다. 출산은 개인이나 가족을 떠나 국가를 위한 일이므로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소련은 그런 나라였다. 망명객 부부를 품어주고 근사한 휴양지와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을 빼앗아가고 대신 가장 노릇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집 안은 어둠과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남편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남편은 어디에 있을까.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을까. 시베리아로 유형 갔을까. 살아 있기는 한 걸까.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일상적인 혼란이었다. 아기와 함께 집에서 겨울을 난 세죽은 세 달짜리 아들을 탁아소에 맡기고 출근을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