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은 새삼 중국이 넓구나 싶었다. 그녀가 처음 만난 중국은 유럽을 한 귀퉁이 떼다 놓은 듯한 상해였지만 지금 머무르는 연안은 황토 언덕이 중국인의 맨살처럼 누렇게 드러나 있는 헐벗고 가난한 오지였다. 중국에는 여러 민족이 있고 기후와 풍광이 다른여러 지역이 있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을 만치 다른 방언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39년의 중국에는 여러 시대가 공존하고있었다. 홍구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중국의 다음 시대라 굳건히 믿었지만 큰길에서 조금만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직 황제의 세상인줄 아는 변발의 청나라 백성들이 있고 이들은 신해혁명이 일어나 국민당정부가 들어선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조선에 있을 때는 사회가 미성숙하고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최선의 인간이라는 공산주의자들조차 쓸데없는 파벌투쟁에 힘을 낭비하고 있구나 했어요. 연안은 물론 많이 달랐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 아닌가 싶어요. 당이 전투력을 유지하려면 때로 숙당작업이 불가피하겠지요. 한데 온갖 개인감정과 파벌적 음모가 끼어들면서 활동가들이 개죽음한단 말이지요. 그걸 피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면 인간성이란 원천적으로 진화가 불가능한 걸까요. 혁명 과정의 문제이고 혁명이 완료되면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소련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정숙은 레닌 사후 소련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에 대해 대강 듣고있었다. 인간의 이기심, 자본주의의 악마성이 번식 못 하도록 만든 방부제가 소비에트인데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에 방부제는 없는것일까.

정치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요. 어떤 정치에도 최선은 없소.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것뿐이오. 마르크시즘이 봉건제보다 낫고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니까. 끼니도 해결 못하는 중국 인민들에게 아편을 강제로 떠먹인 것이 자본주의요, 그자본의 나갈 길을 개척하는 게 제국주의의 총칼 아니오? 부르주아정치라는 게 뭐요? 자본가들과 지주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요. 장개석이 지금 하는 짓이 그것 아니오? 지주 자본가들이 장개석군대를 먹여 살리고 있잖소? 장개석 일파는 중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더라도 공산정부의 토지개혁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오.
장개석은 끊임없이 일본하고 뒷거래하고 있소. 아마 서안사변 없었으면 일본에 황하 이북을 내줬을 거요. 중국을 반토막 내서 그반쪽이라도 챙기는 게 낫다는 심보요. 그런 장개석에 비해 모택동은 단연 우월하오. 정치에 최선은 없소. 차선을 택하는 거지."


 지금까지 정숙은 뜻대로 살아왔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한적 없다. 싫은 남자와 참고 산 적도 없다. 특별한 생활신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모험과 자존과 충동의 강렬함이 그녀를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에 안 들면 떠났다.
 떠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하책下策이었다. 이제는 머무르고 눌러두고 견디는 걸 배워야 한다. 인내는 나이가 주는 선물이다.
떠날 때와 머물 때, 버릴 때와 견딜 때를 알면 중년이 되었다는 뜻일까?그것을 성숙이라 부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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