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정 장편소설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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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뿔>의 주인공인 정원섭씨의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들은게 전부였습니다. 삼십 대의 나이에 살인 혐의로 수감되었고 출소 후 기나긴 재판 끝에 여든이 다 된 나이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포기하지 않고 굳건하게 닫혀있는 법원의 문을 계속 두드려서 결국은 무죄판결을 받아낸 끈기도 놀라웠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할 중년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노구의 몸으로 무죄 판결은 받아냈지만 그 사람의 인생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지나간 세월을 되돌려 받을 수는 없을테니 말이지요. 그 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로 나왔다는 소식은 반가웠습니다. 뉴스에서 접한 단편적인 사실 보다 좀더 깊이 있는 사실을 알고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줄기로 흘러갑니다. 정원섭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 진행되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던 원섭은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요시찰 인물이 되고 신도 중의 한 사람이 원섭의 설교를 몰래 녹음해서 경찰에 넘겼다는 고백을 듣고 목회를 그만둡니다. 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큰 아들을 병으로 잃고 고향 춘천으로 돌아와 만화가게를 엽니다. 1972년 9월, 춘천 경찰서 역전파출소 소장의 딸이 논둑에서 성폭행 당한 사체로 발견되면서 원섭의 인생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증거 조작, 고문 등의 부당한 수사를 받은 후 살해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5년 후 1987년 12월 크리스마스 특사로 가석방됩니다. 그 후로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한 어려운 싸움을 하고 결국 78세의 나이에 무죄 선고를 끌어냅니다.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살해혐의로 구속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사람의 가족들 또한 살인범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을겁니다.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된다는 옛말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거나 사형을 당한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오해만 받아도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기 마련인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고 절망스러웠을지 감히 짐작하지도 못하겠습니다. 부디 약한 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소설이라는 형태보다는 논픽션 형태의 르포로 다루어졌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잘못된 법 집행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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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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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영국 문학상인 맨 부커상이 아주 친숙해졌습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이언 매큐언 <암스테르담>,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등 국내에 출간된 부커상 수상작들이 즐비합니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 등과 함께 세계적인 문학상 중 하나라고 합니다. 부커상은 일반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수상작을 결정한다고 하는데 그런 때문인지 그동안 만났던 부커상 수상작들을 돌아보면 작품성은 물론 재미까지 갖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작품은 놓치지 않고 읽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은터라 이번에 나온 하워드 제이콥슨의 <영국 남자의 문제>도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준수한 외모를 가졌지만 자꾸만 실패를 거듭하는 줄리언 트레스러브와 최근 부인과 사별한 아픔을 가진 기자 리보르 세프치크, 줄리언 트레스러브와 동창인 철학자 샘 핑클러... 이렇게 세 남자가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샘과 리보르는 유대인이라는 점과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상실할 기회조차 없었던 줄리언은 공통점으로 묶여 있는 두 남자를 은근히 부러워하며 유대인의 세계에 편입되고 싶어합니다. 어느날 줄리언은 유대인 여성 헤프지바를 알게되고 마음을 빼앗깁니다. 줄리언은 이제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43년 부커상 사상 최초의 유머 소설'이라는 책소개가 책을 읽고나니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유머 소설이라기에는 마음을 울리는 짠함이 있고 유머 코드가 달라서 그런지 그다지 유머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기대와 다르다는 이야기이지 이 소설이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희극적인 부분만 강조한 책 소개문구를 과도하게 믿어버린 때문이지요. 하워드 제이콥스의 <사랑의 행위>가 조만간 출간된다고 하니 기다려야겠습니다. 그 책을 읽고나면 하워드 제이콥스 작품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희극으로 시작해서 짠함을 남긴 <영국 남자의 문제>는 '상실'과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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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맛집 - 쇼핑보다 즐거운 미식 여행 여행인 시리즈 8
김동운 지음 / 시공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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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맛있는 가게를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맛을 보고 사진을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맛 블로거들이 많습니다. 좀 유명하다는 식당에 가면 음식을 앞에 두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맛집 기행을 직접 올리지는 않지만 어디를 여행하게 되면 인터넷으로 그곳의 맛집을 검색해서 여행길에 들러 맛을 보곤합니다. 그런 때문인지 요즘엔 맛집을 다루는 책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전국의 면 요리를 소개하는 책, 서울의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책, 전국 곳곳의 맛집을 소개하는 책... 게다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맛집을 다루는 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공사에서 나오는 여행인 시리즈는 주제가 있는 여행서라 즐겨보는 편인데 시리즈 중에서 맛집을 다룬 책으로는 <도쿄 맛집>, <유럽의 맛집>, <터키는 맛있다>등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홍콩의 맛있는 가게를 소개하고 있는 <홍콩 맛집>입니다. 홍콩의 각 지역별로 맛있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책의 뒷부분에는 상세한 지도가 실려 있어 실제로 홍콩을 여행할때 유용하게 쓰일것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홍콩의 특색을 맛집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풍의 요리부터 양식, 일식, 한식 등 국적과 상관없이 다양한 맛집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 가게, 홍콩의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것 같은 소박한 식당, 사진을 보기만해도 침이 고이는 길거리 맛집,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급 레스토랑, 미슐랭 가이드가 선택한 맛집...

 

다양한 맛집들을 보고 있자니 배가 고파집니다. 여름 휴가에 친구랑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으로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홍콩으로 마음이 확 쏠립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홍콩에 가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맛집을 몇 군데라도 들러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길거리 음식은 꼭 맛보고 싶은데 말이죠. 여행인 시리즈에서 앞으로도 주제가 있는 그런 여행을 계속 다뤄주면 좋겠습니다. 한 권, 한 권 참고 삼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겠다는 상상만해도 흐뭇해집니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를 어떤 주제로 소개해 줄지 기대하고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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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 장영희 교수의 청춘들을 위한 문학과 인생 강의
장영희 지음 / 예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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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으면서 장영희 교수와 첫만남을 가졌습니다. 어렵지 않게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책은 아는 언니가 소근소근 속삭여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를 딛고 지금의 자리에 있다는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책 안의 글들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 부분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애라는 어려움을 겪다보면 자칫 어두워질 수도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녀의 글들은 따뜻하고 평온했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3년이 되어갑니다. 그 사이에 마지막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과 1주기 기념 유고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등이 출간되어 그녀가 떠난 아쉬움을 달래줬습니다. 이번에는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문학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가 출간되었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듣는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좋은 책입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라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강의를 정리한 것과 장영희 교수와의 문답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문학적인 이야기를 곁들여서 이야기해 줍니다. 문학의 주제를 크게 얘기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장영희 교수는 말합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왜 소설을 그렇게 읽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소설을 읽는게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 등장하는 삶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배우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녀의 전작들이 그렇듯이 이번 책도 편안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문학과 접목시켜서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읽는 동안 그녀가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는게 새삼스레 안타까웠습니다. 그녀의 글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대신 장영희 교수의 기존 책들을 곁에 두고 차근차근 곱씹어 가면서 읽어야겠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지, 어떻게 사랑할 지 더 많이 생각하면서 문학을 접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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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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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친구가 기억하는 '내'가 달라서 당혹감을 느낀적도 있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나와 관련된 무엇에 대해서는 조금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밀게 됩니다. 하물며 내 아버지, 내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간결하게 적어내려 간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거라 짐작됩니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작가 아니 에르노는 해내고 있습니다. 1984년 르노도상 수상작인 <남자의 자리>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있는그대로의 모습을 적어내려간 작품입니다.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왔던 한 남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읽고 쓰기를 겨우 배운 남자는 소를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밧줄 공장에서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보수가 더 좋은 기와장이 밑에서 일을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작은 가게를 열게 됩니다. 그 후로는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남자는 무뚝뚝하지만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많이 공부한 사람에 대해 막연한 경외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렸을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 나이가 차서도 일하지 않고 공부하는 일을 딸에게는 허용합니다. 교사 자격을 얻은 딸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남자와 딸은 점점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많이 배운 딸의 인생이 자신의 인생 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냉정하게 유지됩니다. 감정은 싹 도려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아니 에르노의 방식인가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나도 '나의 아버지'를 이렇게 담담하게 간결하게 적어내려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아버지,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 이 책으로 아니 에르노를 처음 만났지만 내 스타일의 작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간결한 문체가,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차근차근 읽어봐야겠습니다. 머지않아 어머니의 일생을 다룬 <한 여자>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하고 기다려야겠습니다. 이번에 느낀 느낌들이 잘못된게 아니길,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그런 문장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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