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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친구가 기억하는 '내'가 달라서 당혹감을 느낀적도 있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나와 관련된 무엇에 대해서는 조금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밀게 됩니다. 하물며 내 아버지, 내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간결하게 적어내려 간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거라 짐작됩니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작가 아니 에르노는 해내고 있습니다. 1984년 르노도상 수상작인 <남자의 자리>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있는그대로의 모습을 적어내려간 작품입니다.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왔던 한 남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읽고 쓰기를 겨우 배운 남자는 소를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밧줄 공장에서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보수가 더 좋은 기와장이 밑에서 일을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작은 가게를 열게 됩니다. 그 후로는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남자는 무뚝뚝하지만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많이 공부한 사람에 대해 막연한 경외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렸을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 나이가 차서도 일하지 않고 공부하는 일을 딸에게는 허용합니다. 교사 자격을 얻은 딸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남자와 딸은 점점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많이 배운 딸의 인생이 자신의 인생 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냉정하게 유지됩니다. 감정은 싹 도려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아니 에르노의 방식인가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나도 '나의 아버지'를 이렇게 담담하게 간결하게 적어내려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아버지,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 이 책으로 아니 에르노를 처음 만났지만 내 스타일의 작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간결한 문체가,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차근차근 읽어봐야겠습니다. 머지않아 어머니의 일생을 다룬 <한 여자>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하고 기다려야겠습니다. 이번에 느낀 느낌들이 잘못된게 아니길,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그런 문장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