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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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큰집이라 명절이나 할머니 생신, 아빠 생일 등 친척들이 모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빠는 7남매의 맏이라 친지들이 모이면 그 숫자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거실에서는 어른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어린 우리들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학교 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그러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언니, 오빠가 우리들을 모아놓고 으스스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는 무서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누군가 한 명 울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누군가 한 명이 소리라도 지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면서 거실로 뛰쳐나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무서운 이야기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무서웠던 분위기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그런 무서운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폭우 속에서 엄마와 아빠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사에 기자로 취직하게 된 정우는 선배 대호를 따라 취재를 나가게 됩니다. <월간 풍문>은 비밀스럽게 정기구독자에게만 판매되는 잡지로 괴담, 미스터리, 심령사진, 흡혈귀, 귀신, 저주, 괴물, UFO 등을 다루는 기묘한 잡지입니다. 정우가 취재하게 된 일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폐가에서 1년에 한 번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모임에 관한것이었습니다. 폐가에 도착한 정우는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 당하고 '밤의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소설은 '밤의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다섯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숨가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요즘 들어서 국내 작가들의 장르 소설도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어서 미스터리 팬인 나로서는 즐거운 비명이 나옵니다. 항상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 밀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최근 들어 국내 장르 소설이 눈부시게 발전하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다음 작품도 분명 재미있을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잔뜩 기대하고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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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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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는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다란 시련이 몰려왔을 때 남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허물어지고 대신 여자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경우를 많이 보게되는 까닭입니다. 분명 체력적으로는 남자보다 약할텐데 정신적으로는 남자보다 강한 여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여자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까요... 어쩌면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보니 스스로 강해져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어깨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짊어지고 묵묵히 세상 속을 걷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자가 강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활동분야도, 국적도 다른 스물 두 명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을 통해 사회적인 악습에 저항했던 수전 손택과 아룬다티 로이, 남자들과는 다른 부드러운 정치력으로 권력자가 됐던 아웅 산 수치와 앙겔라 메르켈,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던 루 안드레아스살로메와 시몬 드 보부아르, 여성의 섬세함과 인내심으로 자연 과학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레이철 카슨과 제인 구달.... 다양한 분야, 각기 다른 자리에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여자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어린시절 생각했던 '나'의 미래와 지금의 내 모습이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다른지.... 일정부분은 꿈꾸던 모습과 닮아 있고 어떤 부분은 꿈꾸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얼마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여자가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처럼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업적을 남기는 것과는 다르지만 나만의 자리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부드러운 강인함을 지닌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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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의 연인 - 제126회 나오키상 수상작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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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끼리 있을 때 인기가 좋은 여자가 있고 남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데 여자들 사이에서는 꺼려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어깨너머의 연인>에서도 상반된 두 명의 여자친구가 등장합니다. 냉정한 말투로 단호하게 말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망설이는 모에, 모에와 유치원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여자 '루리코'. 겉보기엔 전혀 다른 그녀들, 나와도 전혀 다를것 같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읽다보니 나와 다를것 없는 '여자'의 이야기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결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루리코의 결혼식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길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루리코는 첫번째, 두번째 결혼에 실패하지만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번 결혼이야말로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에 가자 모든것이 시들해졌습니다. 연애때는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섹스도 전혀 하고싶지 않고 남편이 그저 귀찮기만 합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결혼에서도 그랬던것처럼 세 번째 결혼에서도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이 시시해집니다. 모에의 애인이었을땐 멋지기만 했던 지금의 남편도 내것이 되자 언제그랬냐는듯 탐탁치가 않습니다. 루리코의 세 번째 결혼도 그녀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지 못했습니다.

모에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남자를 친구인 루리코가 빼앗아 갔지만 루리코가 원망스럽기는 커녕 고마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녀는 조금씩 깊어져가는 그와의 관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지요. 모에는 지난 상처로 인해 남자를 믿지 않고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작은 회사지만 모에는 성실하게 일하고 능력도 인정받습니다. 모에는 루리코의 세 번째 결혼식에서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 남자를 만나기 시작하지만 둘은 조금씩 진심을 느끼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번에도 모에느 사랑 앞에서 망설입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처음엔 어쩜 저렇게 이기적일수 있을까 싶어 루리코가 싫었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소유하고 싶어지면 소유하고는 싫증 내버리는 그녀가, 자신의 미모를 몹시도 과신하는 그녀가 싫었습니다. 역시 여자들이 싫어하는 여자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전부이고 자신이 믿는 사랑 앞에서 당당한 그녀가 나중에는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루리코와 모에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모습의 '사랑'에 어쩐일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싶습니다. 어떤 모습이던 내 사랑에 당당한 그녀들의 앞날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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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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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는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몇 권이나 읽었나 헤아려보니 최소한 여섯 권을 읽었더군요. 개인적으로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데도 이 정도로 읽었다니 그의 책이 우리나라에 그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도 거의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고선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는게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일단 그의 책이 출간되면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는 사실입니다. 책을 덮을 때에는 좋고 싫음이 책마다 다르지만 일단은 읽어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번에는 대박인 책일까, 중박인 책일까, 쪽박인 책일까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결혼 8년차의 평범한 주부 모모코가 <사랑에 난폭>의 주인공입니다. 결혼 초에는 사이가 껄끄러웠던 시어머니와도 이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고 얼마 안되는 돈을 받긴하지만 문화센터에서 비누공예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남편 마모루는 집에 들어와서는 겨우 몇 마디 하는게 전부지만 모모코는 살뜰하게 내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모모코는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됩니다. 우유부단한 남편대신 자신이 정리하겠다고 나선 자리에서 뜻밖에도 모모코는 자신과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마음을 알게됩니다. 모모코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야기는 내연녀로 짐작되는 여자의 일기와 작가 시점의 이야기, 모모코의 일기가 순서대로 반복됩니다. 평범했던 모모코의 일상부터 남편의 불륜을 알게되고 모모코의 이상한 행동이 계속 되는 상황까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조금씩 드러납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잔잔하게 진행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만 생각하는 모모코, 우유부단하기 그지 없는 모모코의 남편 마모루, 아들의 잘못엔 너그럽고 며느리의 잘못엔 날을 세우는 시어머니.... 등장인물들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누구의 마음에도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았다는게 맞는 말입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다음 책은 대박 작품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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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아녜스 르디그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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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일겁니다. 하물며 자식을 잃은 슬픔이란 차마 짐작할 수 조차 없습니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처럼 자식의 죽음을 겪어야 하는 부모는 가슴속에 자식을 묻고 남은 생을 묵묵히 살아내야 합니다. 이 책을 받아들고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읽고는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아픈 아들의 상태를 지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매주 쓰던 이메일을 통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아들을 잃은 절망에서 구출해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서른 여덟의 살에 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커다란 슬픔을 겪은 사람은 그만한 깊음을 갖기 마련이라 그녀의 책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상당히 기대하면서, 혹시 실망스러우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책을 읽어갔습니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줄리는 미혼모로 생계를 책임져야만 합니다. 상사로부터 호되게 당한 어느날 눈물을 흘리는 줄리를 중년의 남자가 위로해줍니다. 그 남자는 첫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그리움을 간직한채 냉장고 같은 두 번째 부인과의 30년 결혼생활을 얼마전 마감한 폴이었습니다. 곤경에 처한 줄리를 폴은 사심없는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자신의 휴가길에 줄리를 초대합니다. 망설임 끝에 줄리는 아들 뤼도빅과 함께 폴의 별장으로 떠납니다. 그 휴가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었는데 폴의 아들 제롬입니다. 제롬은 얼마전 우울증에 빠진 아내가 자살한 후 아무런 감정없이 묵묵히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를 가진 네 사람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자기의 상처를 어떻게 봉합하는지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조금은 따뜻하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따뜻합니다. 어색했던 줄리와 경계하던 제롬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고 너무나 큰 상처로 인해 제대로 아파하지도 못했던 제롬을 세 살짜리 뤼도빅이 천진하게 위로하던 장면도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줄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폴의 그 마음이 좋았고 뤼도빅을 너무나 사랑하는 줄리의 마음도 애잔했습니다. 오랜만에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습니다. 아녜스 르디그가 아이를 잃은 슬픔을 글 쓰는 것으로 조금은 극복했던 것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슬픔을 극복해가는 모습들이 좋았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에는 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저마다의 방법으로 슬픔을 가누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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