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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만난 이후로 장르 소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고작해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정도를 읽은게 다였을 뿐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를 시작으로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를 시작으로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오츠 이치, 아야츠지 유키토, 하라 료.... 정말 많은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의 책을 만났다. 좀비가 등장하는 헐리웃 공포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사연이 있고 한이 있는 동양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딱 들어맞았다.
일본 미스터리에 빠져있다 보니 한국의 장르 소설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고 찾아 읽기도 했다. 한국에서 장르소설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일본 장르 소설에 비하면 한국의 장르 소설은 취약하기만 했다. 몇 권의 괜찮은 한국 작가의 장르소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실망스러웠다. 물론 전적으로 내 취향을 기준으로 하는 얘기일 뿐이다.
'온다 리쿠의 서늘함, 미야베 미유키의 따뜻함, 오쿠다 히데오의 유쾌함을 완벽하게 재현' 했다는 출판사의 광고문구에는 전혀 현혹 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명한 작가를 들먹거리는 책치고 정말 좋은 책을 그다지 만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거 뭐야...'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작가의 장르 소설을 가급적 읽어야 겠다는 생각의 실천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면서...
이 책에는 표제작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포함해 10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사채 빚에 시달려 이혼을 한 아내가 했던 거짓말이 드러나는 <그녀의 거짓말>, 자신만의 뮤즈를 찾아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벙어리 남자의 이야기 <안녕, 나디아>, 너무 한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에 뒤통수 제대로 맞은 <시선>, 하나의 심장을 갖고 태어난 샴 쌍둥이가 등장하는 <하나의 심장>, 지옥과의 안녕을 고하는 <굿바이 파라다이스>까지.
열 편의 단편들 하나 하나가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하며 독특하다. 일본 장르소설에 익숙해진 나조차도 문득 문득 느껴지는 한기에 책에서 눈을 떼고 잠시 숨고르기를 해야할 정도다. 하지만 무작정 잔혹하기만 하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 책은 잔혹하지만 매혹적이다. 인간의 내면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을 대면하는 오싹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책이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한국 장르소설을 만났고 강지영씨의 다른 책들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꼭 읽어봐야 겠다. 새 책 출간을 손에 꼽으며 기다리는 장르소설 작가에 한국 작가가 추가되어서 남다른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디 강지영씨 같은 신선한 한국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