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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인
에이미 벤더 지음, 한아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의 이름부터 모나 그레이, 회색빛이 가득하다. 검정과 하양의 중간색인 회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비가 오기 전의 하늘, 스모그로 가득한 땅, 오염된 물... 긍정적 이미지 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떠올려지는 회색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리 활기찬 색깔은 아닐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왕국에서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신체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가족에 대한 동화로 시작되어, 영원히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나가는 동화로 끝나는 이 소설은 내게 조금은 위로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건강하지 않다고, 너무나 건강한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건강을 위한 행동을 계속 했던 이유는 사실은 건강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모나는 그런 아버지가 열 살에 들려준 동화를 듣고, 자신 또한 그런 아버지의 삶에 동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다. 성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진다고 해도, 어린 시절 받은 영향들을 쉬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나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 요즘이다. 스무살 생일이 되어 도끼-신체 일부분을 언제든 잃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 연장을 최고의 선물 운운하며 자기 곁에 가까이 두는 행동 또한 그런 강박관념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생명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유가 아닌, 타인에게 강요받은 이유로 끊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버지처럼 아무 것도 즐기지 않고 그저 그레이-회색빛으로 메말라가고자 노력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모나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그러한 진심-아버지의 죽음에 동참하는 겉모습과 다른-을 새어나갈 필요가 없는 나무에 쏟아낸다. 똑똑똑똑. 들이마시고, 내쉬고, 똑똑똑똑.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자신의 두드림을 알아채지 못하기에) 생각하던 그레이지만, 사실 자신의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고, 그녀는 조금 아프며(죽음 향해 억지로 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로부터 알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전해받은 그녀의 강요된 정체성, Grey를 끊어버릴 결심을 하게 된다. 밥은 맛이 없고, 달리기는 이기고 싶지 않으며, 소질있어 보이는 직업은 버려 버리던, 그런 행동들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가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어떤 것도 그다지 즐겁지 않고 식상하며, 감정이 적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진전이 된 듯하다. 기분을 나타내는 숫자를 목에 걸고 지금이 순간의 삶에 충실한 존스, 팔에 화상을 입어가며 실험을 하는 벤자민, 어머니의 죽음을 수용하면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리사...내 주변에, 모나에게 힘을 줬던 그들이 있었으면 싶다.
때론 스스로의 힘만으로 일어나기 힘들 때가 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같은 말들은 시궁창에 처박혀버리라지. 결국 살아가려고 힘을 내는 것은 본인이라고 말하지만, (또 그것이 사실이지만) 내게도 모나에게처럼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