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의 사훈이 그 표면적인 의미이다. ‘고객의 목소리는 신으로부터의 한마디’라는 사훈은, 고객을 우선시하는 회사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의 실상은 정작 고객을 응대하는 상담실이 ‘인간쓰레기 처리장’ 의 다른 말로 사용되고 있는 회사이다. 회사의 회장이 잠적하고, 그 사이를 타고 들어 온 고위직들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파벌싸움 하기에 바빠서 정작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고객을 위한 제품 만들기’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한 가지를 건드리고 싶어도,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이 회사의 내부는 가면 파고들수록 손대기 힘든 어마어마한 실타래가 엉켜 있다.


주인공은 이러한 회사에 다니면서 집세만 내면 당장 그만 두겠다 운운하면서 지낸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는 료헤이는 중역회의에서 머릿속 욕을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는 바람에 처리장인 고객상담실로 좌천되고 만다.


이 회사가 사훈으로 걸고 있지만 실상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있던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고객상담실로 주인공이 들어가게 만든 것은 인간 내면에 대한 메타포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무엇이 하고 싶은데 나는 지금 어쩔 수 없이... 라면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 회사의 고객상담실로 들어가게 됨으로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길로 들어서게 된 셈이다.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설령 회사 뿐이 아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잊지 못하는 연인인 ‘린코’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이 이야기에 얽혀 들어간다.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간단히 도식화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회사 = 주인공(료헤이)
고객상담실 = 주인공의 내면
사훈 ‘신으로 부터의 한 마디’ = 공원의 노숙자 ‘존의 한 마디’
고객상담실을 사훈으로 걸어놓고 정작 뒷전으로 두고만 있었던 회사의 모습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던 료헤이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회사는 고객상담실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구조조정용 대기실 정도로만 사용함으로써 결국은 부도의 지름길로 향하고 있다. 회사의 중역들은 회사에 신경 쓰기보다는 밥그릇 다툼에 위신 세우기에 바쁘다. 제 할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 또한 료헤이와 맞닿아 있어서, 되는대로 ‘지금 당장 급한 불만 끄면 돼’라는 생각만 하고 살던 료헤이의 내면세계와도 같다. 료헤이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붕괴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가 고객상담실로 가며 회사에서 구조조정 대기자로 발령난 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마지막 한계선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료헤이는 고객상담실에서 ‘신=고객’의 불평과 불만을 처리하면서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위 사람과 비교해가면서 찾아가게 된다.


이에 맞물린 또 하나의 ‘신으로부터의 한마디’는 공원의 노숙자인 가칭 ‘존’의 말을 뜻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료헤이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면서, 대뜸 나타나서 신비롭게 말 한 마디를 던지고 사라지는 ‘존’의 말을 신의 말인양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다. 회사가 물건을 만드는 것은 고객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모토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이다. 그것 또한 가장 기본적인 모토이다. 회사가 고객의 말을 소홀히 했던 것처럼, 료헤이는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팔뚝의 늑대 문신이 메타포인)를 소홀히 했었다. 료헤이는 공원의 노숙자에 불과한 존의 한 마디를 듣지만, 그것은 정말 신의 말을 듣듯이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깨우기 위한 계기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훌륭하게 당의를 입힌 약이다. 표면적으로는 회사에서 제 성질 못 이기고 잘릴 뻔 했던 한 청년이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고 멋지게 사표 던지며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을 각 시대를 살아왔던 인물들과 비교하면서 그 내면을 그려 보이고 있다. 또한 옛 시대를 거쳐온 인간들도,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각종 문제를 떠안은 회사와 마찬가지로 당장 붕괴되어버릴 아슬아슬한 내면을 부도 어음막듯 스스로를 속여 가며 존재하고 있음도 묘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말을 재미있는 표면적인 구조로 전하고 있는 셈이다.

표면적으로만 읽어도 스트레스 쌓인 직장인들이 통쾌함을 느낄 수 있어 대중성을 확보한 셈이 되고, 표면 아래의 내부를 잡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층위를 만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도 전달할 수 있어 문학성 또한 잡았다고 볼 수 있겠다.

당의를 굉장히 잘 입혔기 때문에 내부를 잡을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스스로에 대해서 돌아볼 계기 정도는 당의만 맛보아도 약을 어느 정도 먹은 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쉬운 점은, 독자를 웃게 하기 위해서 다소 억지스럽게 집어넣은 부분들이 있고, 회사를 묘사하기 위해서 할애한 부분들이 다소 지루하다는 점이다. 그 전자는 일본식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게만 안 맞을 뿐이지 이게 재밌어서 깔깔대고 웃을 사람도 있을 수 있을 테고.) 또 하나는 환경을 묘사하기 위해서 였을 테고, 어떻게 생각하면 소설을 쓰기 위해 치밀한 사전 조사를 한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어 보이는 곁다리 지식들이 널려 있다는 점이다. 독자에게 필요한, 그러니까 소설에 필요한 요소가 아닌데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마치 ‘작가의 사전 조사에 대한 과시’ 정도로 여겨진다는 게 문제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서는 요즘 소설 중 대중성과 문학성을 잡은 드문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꽤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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