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쯤
되었다.
스탠드 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있었고, 이 책의 1권을 다 읽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섬뜩하여 2권이 있는 어두운 거실로 나가기가
무서웠다.
['가위손 미치광이'라 불리는 살인범. 병적으로 뒤틀린 그의 정신세계에서는 가위를 통해 벌이는 범행이 짜릿한
쾌감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
가위로 3명의 여성 피해자들에게 가슴과 다리 치골부위에 흉측한 흔적을 남긴 범인이 4번째는 살인을 했다. 그 진범이 밝혀지는 장면이 1권의
마지막 장면인데, 그 반전의 결말이 너무나 소름이 끼쳤던거다.
그런데 이 반전은 이 책의 진정한 마지막 반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지막 반전은 기대이상이다.
이 책은 괴물의 창세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 사이코패스 등
어느 순간 뚜렷한 동기도 없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악, 그 근원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인간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학습되어지는 걸까? 아니면 신의 존재에 대립하는 사탄의
모습일까?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어느 시점부터 한 인간의 운명이 180도 뒤바뀌는 걸까?
이 책의 저자 도나토 카리시는 이탈리아의 행동과학 범죄학자이다.
전작 <속삭이는 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도나토 카리시는 차기작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한 가톨릭 사제를 만난다.
그에게서 바티칸 내사원과 사면관의 활동, 고해성사를 통해 축적된 죄지은 자들이 직접 남긴 방대한 양의 범죄 관련 문서, 그리고 그것을
보관하고 있는 일명 ‘악의 도서관’이 바티칸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생존했던 <카멜레온 연쇄살인범>과의 조우로 이 책이 쓰여진다.
[그는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살인범으로 놀랍게도 외모뿐만 아니라 실종자의 습관, 지병,
평소 한쪽 다리를 전다는 것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타인의 신원을 도용하기 위해 피해자를 납치, 살해한 것으로 보이며, 마치 옷을 갈아입듯
실종자들의 나이는 순차적으로 많아졌다.]
바티칸 내사관과 카멜레온 연쇄살인범
두 실화를 바탕으로 이 소설은 쓰여졌다. 실화라는 것이 더욱 더 이
소설에 빠져들게 했다.
이 소설은 마르쿠스와 산드라, 그리고 1년 전 어느 추격자가 번갈아 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마르쿠스는 사면관이다.
[" 이 세상에는 빛의 세계가 어둠의 세계와 만나는 접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모든 일들이
비롯됩니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어둠의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일들 말입니다. 우린 그 경계선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간혹 그 경계를 뚫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존재를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일을 합니다. "
]
마르쿠스가 사면관의 하는 일을 산드라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마르쿠스는 기억상실증의 사제이다.
6년 동안 아무런 꺼리낌없이 네 명의 피해자를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쫓고 있다. 50대의 중년에다 매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수 없는
연쇄살인범은 대낮에 젊은 여성에게 향정신성 물질이 함유된 음료를 권했고, 납치후 한달동안 결박한 채 살려두었다가 한달이 지나면 목을 따서
살해한다.
피해여성들은 그가 건넨 음료를 순순히 마셨다. 반사회적인 데다 은둔형의 연쇄살인범은 도대체 어떻게 그 여성들을 속인걸까?
이 의문에 대한 답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산드라. 그녀는 과학수사대의 현장 감식 법사진 전문가이다.
르포 사진기자인 그녀의 남편은 로마 어느 공사가 중단된 어느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한다. 그런데 남편이 남기고 간 5장의 사진을 통해
남편이 살해되었을거라 의심하게 되면서 사진에 실린 장소에 가게 되고, 거기서 마르쿠스와 마주하게 된다.
남편이 남긴 사진을 통해 추리해 나가는 과정과 살인 현장을 찍은 사진속의 세세한 것들로 진범을 밝혀내는 산드라의 역할 또한 이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하는 큰 매력이다.
그리고 추격자.
[ 세계 도처에 발견된 얼굴없는 시체들 사이의 공통점과 연관관계를 따져보던 추격자는 누군가가 피해자들이
사망한 뒤로도 그들의 신분을 계속해서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살인범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치 양복 사이즈가 달라지듯
피해자들의 연령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는 점 역시 간파했던 것이다.
그가 쫓는 먹이감은 카멜레온 같은 변장술을 보유한 연쇄살인범이었다. ]
1년전으로 서술되는 이 추격자의 이야기는 대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의문이었는데, 딱 맞아떨어지는
퍼즐조각처럼 마지막에서야 의문이 풀렸다.
[ 산드라는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붉은 색 촛농을 발견한다.
생긴 게 꼭 갈색 얼룩처럼 동그란 모양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촛농이 아니었다. 핏자국이었다. 그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
이 부분이 oh! my god! , 어메이징, 써프라이징..기타등등..의 대 반전의 기록이시다!
왜 이렇게 놀라는지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악의 기운은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일종의 전염병과도 같아. 그런데 사면관도, 자신 역시
인간으로서 악이 발현하고 전염되는 과정에서 결코 무사할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시간이 흐르면서 악의 기운이 그 사제들을 옳은 길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그런 어둠의 힘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
"흠 잡을 것 하나 없이 유능한 형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약상의 공범으로 밝혀지는 일이 있지
않았나?"
위의 대화는 산드라와 샬버형사와의 대화이다.
이 대화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 인간의 무관심 속에 숨어든 악이라는 괴물과, 죄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엄청난 양의 고해성사 보고서에 의해
악에 물들고 마는 선. ]
<근묵자흑>이란 말도 떠오른다.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
악에 물들지 않도록 최소한의 방어책을 세울수는 있겠다.
3일 동안 책을 붙들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 주방에서도 펼쳐놓고, 침대 맡에도 펼쳐놓고, 아이 공부방 옆에서도 펼쳐보았다.
책 속 로마의 미술관과 고대성당, 카라바조의 그림들을 오가면서
이탈리아 로마의 거리가 자못 궁금해 졌다.
역사 유적지가 즐비해 있는 거리. 살아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로마의 도시 곳곳에 아직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고 한다.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비로소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공포의 전율이 두 배가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정말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