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김정남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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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이야기하는 책은 대체로 밝다.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지기도 하고, 여행의 설렘과 기대가 어우러져 누구라도 껴안고 싶은 마음이 들게한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이 책은 참으로 어둡다.

삶의 어느 구석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이 남자에 대해 정리하자면 "칼 맞아 죽은 아버지와 불에 타 죽은 어머니를 둔 가난뱅이. 종말론에 미친 남편을 둔 불쌍한 누나가 유일한 피붙이" 인 사람이다.

게다가 아내는 2년전에 집을 나갔고, 아들은 자폐아이다. 본인은 해직된 교수다.

 

이보다 더 처절하고 비극적으로 묘사된 남자를 실로 오랫만에 보았다.

아이의 자폐 상황은 책을 읽는 내내 한숨이 절로 나오게 했다. 아비가 삶을 마감하려는 여행을 감행하는데 아들은 현실과는 닿지 않는 자신만의 생각속에 갇혀 밑도 끝도 없이 까르르 웃어댄다.

["맥퀸이 넘어졌어요."

겸아. 멕퀸이 넘어진 게 아니라, 네 아비가 넘어졌단다. 이젠 다시 일어설 수도 없단다. 철저하게 버려졌단다.]

 

이들의 여행은 7번 국도를 따라 아버지 승호의 지난 삶을 기억하는 길이다.

7번 국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고 한다.

우리나라지도 등허리 쪽으로 길이 죽 나있으며, 속초 강릉 경주 부산을 잇고 있다.

이 아름답다는 7번 국도에 놓인 그의 삶은 참으로 비루하다.

그는 자기 삶을 악순환의 고리라고 일컫는다. 사랑이었으나 박복한 두 운명이 한몸이 된 아내와의 결혼은 악재에 악재를 더하는 일이었다고 기억하고, 아들의 질병은 억울해 미치겠다.

 

그는 폐과 된 학과의 교수다.

[문학 나부랭이를 전공한 박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병에 걸린 자식 하나 구하지 못하는 게 무슨 공부라고, 헛공부에 세월을 써버렸다고 자책할 수 밖에 없다.]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온 그는 흰 가운을 입고 다니는 의사들을 한없이 부럽게 바라본다.

이 사회는 그가 힘들게 쌓아온 학업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는 이 사회에 남아도는 잉여인간이 되었다.

 

저자 김정남은 갈수록 뻔뻔해지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글은 어두울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남자가 잡은 희망조차 왠지 석연치 않다.

그가 생을 더 연장시켜도 되겠다고 생각한 희망은 연봉 2400만원의 허울뿐인 교수자리의 복직과 부도가 난 남편과 별거중이라는 송희에게서 온 전화, 그리고 아내가 남긴 통장의 8천여만원의 잔고다.

 

이 책에는 장애아를 가진 부모의 고통이 그려져 있다.

사회에서 자꾸 밀려나기만 하는 남자 승호의 어두운 현실이 있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들 겸이가 있고, 어둡기 그지없는 주변인물들의 삶이 그를 둘러싸 있다.

 

아슬 아슬한 희망을 잡은 남자 승호가 삶의 어둠을 밝힐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누구의 잘못이랄것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져서 몸을 불살라 살아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삶의 순간은 어느누구에게나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비록 남자 승호가 윤리적이지 못하고 속물스럽기도 했으나, 그래도 그가 잡은 희망이 그에게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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