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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삶에 홀리다 - 손철주 에세이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옛 그림을 좋아한다지만 잘 안다 고 할 수가 없어 그림 숲에서 길을 잃는다. 동양화, 서양화 모두 좋지만 특히 혜원의 동양화에는 무언지 사연이 깃든 이야기가 숨겨진 애틋함에 잠시 머물면서도 이내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다. '한시와 꽃, 그림과 붓글씨 한 잔 술이 있으면 썩 잘 노는 사람이다'라는 저자가 그간 그림을 사랑하며 즐겼던 삶을 요리하는 이야기를 한보따리 풀어 낸 글 앞에 '가난은 대낮에 달 보듯 해야 한다. 는 말뜻을 이제야 아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림에 관한 에세이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란 책이, 그림이 돋보인 글 로 익숙했다면, 이 번 책은 그림 속에 녹아든 삶의 풍경이 엿 보인다. 저자의 맛깔 나는 문장으로 빚은, 가족이며 이웃의 정겨운 삶의 예찬이 에세이 속에 빛난다. 옛 선인의 한시에서 운치를 느끼고 꽃피는 삶의 황홀함을 느끼는 저자의 소박한 삶의 일상이, 한시와 옛 그림에 어우러진 한판의 춤사위에 공감하며,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꽃피는 삶에 홀리다 , 손 철주, 생각의 나무, 2009 >에는 그림 보기와 세상 보기의 맛과 재미가 하나 가득 담겨 있다. 한시가 첫사랑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미술칼럼 니스트인 저자의 해박함이 돋보이는 글 50여 편이 황홀하게 사람과 사랑에 취해 흥겨운 삶을 펼쳐 놓는 에세이다. 일간 신문 칼럼에서 이미 선보인 글이지만 다시 모아 읽는 글맛이 반갑기 그지없고 감칠맛이 제대로다. 시사에 조금 밝고, 한시를 음미한다면, 저자의 감성어린 글의 정겨운 삶에 동하게 한다.
글의 즐거움은 심오함에서도 나오고, 화려함에도 깃들어 있다. 때로는 순수함이 비치고, 달빛에 그윽한 옛 풍경을 그린 듯 도 하다. 잘 아는 익숙한 이야기 보다 처음 접하는 신기한 그림 속 사연에 마치 구수한 옛이야기를 듣는 듯이 즐거움에 책장이 절로 넘어간다. 값비싼 민어를 먹은 이야기를 비롯한 글맛의 여운과 느낌은 꽃이 지천인 꽃밭에 노는 기분이며, 꽃의 향기와 한시의 여운이 그림 속 행복과 춤추는 기쁨이다.
삶의 즐거움을 찾게 하고 그림 한 폭 , 도자기 한 점, 시 한 수 에서 행복을 찾는다. 세상의 일이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행복이 깃드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베란다에 피어난 꽃에서 즐거움을 얻고 한 폭의 동양화 깊은 사연에 옛 선인의 놀라운 지혜를 깨닫게 한다. 일상의 삶에서 한시와 옛 그림의 절제된 미의식과 여유로움을 엿보게 한다. 아울러 표지그림의 화가 최 재덕에서 찰나의 황홀함을 놓치지 않는 화가 사석원에 이르기 까지 홀딱 반하고 말게 한다.
반 고흐가 그린 <일본 여인-오이란>이란 왜색이 짙은 작품소개에서 미술 문외한의 눈을 뜨게 하고, 꽃의 향기로움을 마음으로 느끼는 매력을 풍긴다. 매화의 반가움과 국화의 애환을 옛 얘기 속에서 생생하게 꺼내 준다. 도자기 한 점이나 몽블랑 만년필 사랑의 깊은 사색으로 넘쳐나고, 마지막 까지 깃든 아름답게 맺어진 정 깊은 인연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고전에서 포착한 옛 그림의 이치에 무릎을 치게 하고, 삶의 지혜에 감탄하게 한다.
예술의 멋이 배어나는 글맛의 흥겨움은 소박함을 즐기고, 여유로운 삶의 기쁨은 예술에 사는 솔직한 저자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흐른다. 충선왕의 연애담도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예술의 혼은 작가 이병주 , 아깝게 떠난 오 주석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도 녹아난다. 근원의 수필이나 ,패션 잡지 기자 김 경의 독특함에 호감 하는 저자의 고전적인 탐닉이나 쪽빛 사랑이 넘치는 전통 염장의 글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간곡한 유혹의 손길이 머문다.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수묵 빛깔로 퇴색해버린 장지 도배에 스며드는 묵흔처럼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
-P 148 ~149 -
크게 3장의 주제로 나뉜 글 중에는 연꽃에 담긴 사랑 이야기를 비롯한 꽃 이야기와, 좋아서 잊지 못하는 그림과 글 그리고 책에 얽힌 삶의 창에 비친 인연이 행간의 여백에도 흥취를 품어내고 있다. 책 읽는 옛 그림의 풍류나, 유 은홍, 장 승업의 서책에 심취 하는 독서 풍경에 반하게 한다. 짧아서 황홀한 봄의 흥취도 빼놓을 수 없다. 춘정의 욕망과 번민의 괴로움을 삭히는 풍자의 해학과 흥미로운 풍경을 품격 높은 예술의 정서로 감칠 맛나게 소개한다.
저자는 일상과 예술, 세태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버무려진 글을 희고 곰팡 슨 소리라고 겸손 떨지만, 볕을 즐기기 좋은 짧아서 아찔한 봄의 이야기와 다시 봄을 기다리는 애틋한 심정이 서린 산문의 아름다움과 꽃피고 지는 봄이 가득한 애정 고백의 글에 취하며, 옛 그림은 물론이고, 돔 배기와 단팥죽의 참맛을 알려주는 이 책을, 우리 문화 사랑의 참의미를 찾아보며, 그림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우라고 널리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