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다 삼촌 느림보 그림책 38
윤재인 글, 오승민 그림 / 느림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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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사다리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하야카와 교수가 고안했다는 이 용어는 구체의 사물을 점점 더 추상으로 표현해 가는 체계를 뜻한다. 예를 들면 우리집 식탁 위 바나나 -> 과일 -> 먹을거리 -> 생존식으로 범위가 넓어지는 거다.

<이가령 선생님의 싱싱글쓰기>(이가령, 지식프레임)에서 이가령 선생님은 글쓰기는 추상 사다리의 아래쪽에서 출발하라고 말하면서 추상 사다리를 연습할 수 있는 문제를 낸다. 다음에 나오는 추상 사다리를 보면서 그렇다, 아니다로 답해 보자.

 

흑인종 백인종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그렇다, 아니다)

흑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 수 있다.(그렇다, 아니다)

흑인이 우리 도시에서 살 수 있다.(그렇다, 아니다)

흑인이 우리 옆집에 살 수 있다.(그렇다, 아니다)

나는 옆집 흑인을 만나면 인사할 수 있다.(그렇다, 아니다)

우리 아이가 흑인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 수 있다.(그렇다, 아니다)

 

여기까지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면, 저자는 다음 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 딸이 흑인 청년과 결혼할 수 있다.(그렇다, 아니다)

 

글쓰기는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에서 시작하라면서 든 예시였는데 글쓰기 방법론보다 저 질문에 과연 나는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더 강렬하게 나를 파고들었더랬다.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수가 170만 명(20144월 말 기준)이 넘고, ‘다문화라는 말도 꽤 익숙해졌음에도 나의 인권 감수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되묻게 되는 질문이었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전혀 세계화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아이만은 좀더 글로벌하게살기를 바라면서 손에 든 책이 바로 <찬다 삼촌>이다.

 

솥을 만드는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주인공 여자아이네 집에 찬다 삼촌이 온다. 와서 아빠와 함께 솥을 만드는 걸로 봐서 외국인 노동자인가 보다. 어른들은 바로 선입견으로 찬다를 볼 테지만 아이의 눈엔 그는 그냥 이름이 웃긴삼촌일 뿐이다. 얼굴색에 대한 언급도 없다.

 

아빠는 손으로 밥을 먹는 찬다 삼촌에게 젓가락질부터 배워야겠구만이라고 말하지만 주인공 아이는 내 손가락이 그거 싫다 해요. 손가락도 맛을 알어요라는 찬다 삼촌의 말을 따라 몰래 손으로 밥을 먹어본다.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쉽게 찬다 삼촌에게 다가가고 그가 태어났다는 히말라야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태원에 있는 외국 음식 전문점들에서 흑인들은 홀 서빙 일을 구하기 힘들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도 있으니까. 한국의 공장이나 농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과 멸시에 대한 사례들은 또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그래서 더욱 이 그림책이 소중하다. 2학년 통합교과서 <가족>에 수록됐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핏줄로 연결된 사람들만 가족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는 말이니까.

 

글이 뚝뚝 끊기는 듯한 서술방식에 조금 아쉬움은 남지만 <찬다 삼촌>은 우리 아이가 외국인을 지구촌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줄 첫 책으로서는 손색이 없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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