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사회 -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 지음, 김범수 옮김 / 용오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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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 할머니가 아무런 연고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한 며칠 후 내 손에는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 무연사회>가 들려 있었다.

 어디 맥도날드 할머니뿐이랴. 요즘은 신문 사회면에서 미라로 발견된 시신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홀로 세상과 작별하는 아픔을 겪은 육신이 영혼이 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볼 때의 심정은 어떠할까. 사람(人)이라는 한 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데 이 넓고 넓은 세상에 기댈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의 막막함을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그런데 이건 결코 상상 속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무연사회>를 기획한 NHK 프로젝트 팀은 '이 어처구니없는 거대한 현실'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도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똑똑히 바라봐야 한다. 그 현실은 이웃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이기에. 어쩌면 나에게 닥칠지도 모를 미래이기에.

 

 

 

  <무연사회>는 NHK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기획의도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더 이상 제 일로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이 남성은 생활보호도 받지 않고 노숙 생활을 해 가면서 일자리를 계속 찾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원래 '관계'나 '인연'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그것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의문이 취재팀의 가슴 속에 못박혀 풀리지 않았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상징하는 멀어진 인간 관계.

  우리는 '혼자서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혼자서도 안심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사회'이기를 바랐고 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답을 찾기 위해 취재를 계속하였다. (16쪽)

 

 사람들이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현실을 목도한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 현실의 생얼굴을 보기 위해 프로젝트팀이 찾아간 곳에는  거실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로 앞으로 쓰러져 넘어진 모습에 부패한 상태로 발견된 60~80세 남성의 시신, 사후 1개월 가까이 지나 발견된 90대 여성의 시신 등이 있었다.

 프로젝트 팀은 그들의 삶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혼자였지만 처음부터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 속에서 아픈 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몇 십 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가족이나 친척들은 무연사한 이들의 유골을 거두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 유골들은 택배로 무연사한 사람들의 납골당이 있는 절로 '배달'되기도 한다.

   

   그런 절 중 한 곳의 구리하라 주지는 말한다.

  "저는 유골이 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만 혹시 이 사람은 살았을 때부터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죽은 뒤도 고독하지만 살아 있을 동안부터 사실은 혈연이나 지연이라는 사회관계, 인간관계에서 멀어져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관계가 끊어져 고립되어 버린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혼자이고 또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장례식에도 아무도 오지 않고 죽은 뒤에도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90쪽)

   주지는 어느 누구라도 이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들이 결코 우리와 다른 인생을 걸어 온 사람들이 아니"라면서.

 

 프로젝트 팀은 고독사한 사람들만 찾아 가지 않았다. 고독사의 그늘이 가장 가깝게 느껴질 평생미혼자들의 삶도 조망한다. 56세의 미즈노 유키오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30대쯤에는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었지만 일자리를 자주 옮겨 수입이 불안정하고 버블경제 붕괴로 월급이 크게 줄어 가족을 보살필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정월 초하루에 홀로 설 특집프로그램을 보던 미즈노 씨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의 인연이 없어지는 것은 살아 있는 채로 고독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자신도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다면 살아 있는 거나 죽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존재가 없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과의 인연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44쪽)  

 

 또한 결혼은 했었지만 회사 일에 파묻혀 지내다 이혼에 이르고 노인 요양시설에서 쓸쓸히 노년을 맞은 다카노 씨(63세)의 목소리에서도 외로움은 묻어난다.

 "노인 요양시설에서는 떠들썩하게 이야기 나누는 친구도 많이 있습니다. 또 각종 행사도 열려 즐거운 나날을 지내고 있어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이고 방에 들어가면 쓸쓸합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착각입니다. 지금까지의 나이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180쪽)

 

 무연사의 공포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도 퍼져 있다. 갈수록 일자리는 불안하고 그만큼 홀로 사는 이들도 늘어나는 젊은 세대에게 미래는 결코 장밋빛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무연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마루코(38)씨가 젊은 세대의 고민을 전한다. 그는 독신이다.

  "지금은 혼자 살면서 독신으로 있는 것도 주위에서 인정해주고 저도 일을 가진 몸입니다. 다만 그것이 반대로 무연사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는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 '평범한 행복'을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지 자문해봅니다. 요즘 세상은 그러나 그것조차 얻을 수 없게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233~234쪽)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은 기노시타 씨의 사연을 마지막에 소개함으로써 대안의 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 역시 무연사했지만 그에게는 죽기 전 30년 동안 가족과 다름 없이 살아온 인연들이 있었다. 한 번 결혼에 실패했던 과거를 완전히 묻어버리고 새 이름으로 살았던 그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 "두 번째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 받으며 살고 싶다"고 했던 기노시타 게이지 씨의 바람대로.

 

  하필 이 책을 읽은 날은 너무도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창문 밖 파란 하늘과 책 속의 외로운 죽음들이 겹쳐지니 마음이 두 배로 무거웠다. 프로젝트 팀의 깊이 있는 취재와 생생한 묘사가 눈 감고 싶은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게 했다. 르포의 힘이 강하게 전해진 책이다.

 

 책임프로듀서인 다카야마 진은 에필로그를 이렇게 끝맺는다. 나 역시 그와 같은 바람이다.

 '타인에게 흥미를 갖지 않는 사회'가 확산되는 지금,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무리라고 해도, 적어도 '사람 그리고 생명을 염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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