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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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동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새롭게 들여다 본 책. 각 편마다 기발한 반전들을 이루어낸다. 간혹 억지스러운 각색들도 있지만.... 그 중 '아기돼지 삼 형제'를 바꾼 '분홍요정 세 자매'에 대한 독후감상문이자 아들 가진 엄마의 넋두리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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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임신했을 때 마음먹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아이를 내 소유물처럼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키우겠다고. 그 결심은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공중으로 날아갔다. 산부인과에서 퇴원하면서부터 나는 아이에게 내 욕망을 투영하고 있었다. 역시 나도 세상의 때에 찌든 속물이었던 게다.

아이에 대한 내 원초적 욕망은 예쁘게키우기였다. 내 옷은 안 사도 아이 옷은 사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사로잡혔다. 유아복 매장에 걸린 레이스 달린 옷들이 내게 손짓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런데 그런 옷들은 모두 치마였다는 게 문제. 안타깝게도 내 아이는 아들이다.

 

남자아이 옷은 죄다 파란색 계열이었다. 특히 유아기 옷은 성별 구별을 위해 존재하는가 보다. 딸은 핑크, 아들은 블루가 무슨 규칙처럼 적용된다. 하늘색을 좋아하긴 하지만 확실히 블루옷은 핑크옷보다는 덜 예뻐 보인다. 그런데도 분홍색 옷을 살 용기는 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속물인가 보다.

대신 딸을 둔 엄마에게서 그 아이 옷을 물려받았다. 예쁜 핑크색 내복이 왔다. 아이의 뽀얀 피부가 더 뽀얗게 보이는 것 같다. 역시 애들 옷은 핑크 정도는 들어가야지, 라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도 레이스달린 치마를 한번 입혀볼까 하는 충동에 문득문득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 내게 분홍요정 세 자매는 제목부터 매력적이다. 아들 하나로 아들 키우는 느낌을 알아버린 나. 아들을 셋씩이나 키운 아기돼지 삼 형제의 엄마돼지에게 마음 속 깊이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기돼지들을 분가시키면서도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집 지으러 가다가 딴 길로 새 강아지풀을 뜯고 있지는 않을지, 개구리들과 대화를 하느라 해지는 것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았을 게다. 악의 축, 늑대만 없다면 그런 모습도 예쁘게 봐 넘어갈 텐데 세상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딴 짓을 하기엔 너무 위험해졌다는 것도 속물 엄마에게 변명거리를 더해준다.

 

반면 분홍요정 세 자매의 세계는 아름답다. 갖가지 색의 꽃들이 한가득인 여왕의 정원이 그들의 세계다. 그 꽃들에게 색을 입히는 분홍요정들에게는 어떤 위험도, 역경도 닥치지 않을 것만 같다. 그건 착각이었다. 인간세상에서도 여성들이 더 살기 어렵듯이 요정세계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기돼지 삼 형제에서는 악의 축, 늑대가 나오지만 분홍요정 세 자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인 사람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플로리안 울프. 늑대는 사자나 호랑이보다는 덜 위험한 동물인데도 왜 이리 동화들은 울프를 악의 축으로 그리는지 미스테리다. 동물의 왕들은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금기 때문에, 그 밑에 좀 촐싹대는 녀석을 등장시키곤 하나보다.

 

아무튼 여왕의 수석 정원사인 플로리안 울프는 요정 세 자매를 싫어한다. ? 꽃들을 분홍색으로 칠했다고. 분홍색은 계집애나 좋아함직한 색상이어서질색이란다. 이놈의 울프를 끌어다놓고 분홍색이 얼마나 기품 있는 색인지 일장 연설을 하고 싶다. 그리고 계집애라니 계집애라니!! 울프야, 너도 그 계집애뱃속에서 나왔거든. !! 입을 앙 다물고 주먹에 힘을 줬다가 풀었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이니.

 

우리의 세 자매도 위대한 여성들이었다. 분홍색으로 물들인 꽃들을 다시 다른 색깔로 바꾸든지 정원에서 꺼져버리라는 울프의 협박에 세 자매는 장미덤불 속에서 가시를 뽑아 들고 울프에게 달려드는 공격을 감행한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똑똑한 여성들이다. 그리고 용감하기까지 하다. 정원의 주인인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제니까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돼로 마음을 모은다. 힘이나 권력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문제에 맞부딪히는 그 용기가 부럽다.

 

그러고선 세 자매는 각자 새로운 집을 짓기로 한다. 집 짓는 과정 또한 삼형제와 다르다. 삼형제는 자신들의 편의대로 집을 지었다면 세 자매는 집 잘 짓기로 소문난 동물들을 찾아간다. 비록 첫째와 둘째는 동물을 잘못 택해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로 집을 짓긴 하지만 그들 역시 동물 친구들의 말을 100프로 수용했다는 면에서는 셋째와 차이가 없다.

 

마침내 울프가 찾아온다던 아침이 밝았다. 두 언니들은 울프에게 당당히 맞서지만 집은 날아간다. 두 언니는 말벌의 말을 따라 진흙집을 지은 막내네로 피신해서 결전을 치르는데. 얼른 항복하라고 협박하는 울프에게 셋째는 말한다. “너는 절대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할 수 없어.”라고. 마지막에 퍼붓는 멍청아!’라는 욕에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결국 울프는 말벌떼의 공격으로 처참하게 부운 모습으로 항복한다. 그러나 아기돼지 삼형제의 울프와 달리 죽지는 않는다. ?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이니까.

 

드디어 결론이다. 이 동화의 교훈은? ‘역시 나에게는 마음을 나눌 딸이 필요하다가 되겠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니 말썽꾸러기 아들이라도 딸처럼 키워봐야겠다. 현명하면서도 용감하게.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핑크옷이 필요하겠다. 옷장 속 분홍키티가 박힌 바지를 꺼내면서 음흉하게 웃는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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