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밤 열한 시

황경신 | 소담출판사 | P.300 

  

 

 

 

 

 

1.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읽기장을 보는 듯 했던 책이였다. 이 책은 '문턱'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듯 하다. 가을에 받았던 책이었는데 책의 시작도 같은 가을 문턱이다. 책 제목을 보아도 밤 열한 시, 내일의 문턱 앞에 서 있다. '문턱'이란 단어를 쉽게 사용하지 않는데, 어쩐지 요즘의 나와 닮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중요한 결정을 앞 둔 시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내 꿈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그 문턱 앞일지도 모른다.

 가을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4계절의 색체를 담고 있다. [Fall wind, Winter sunshine, Spring rain, Summer lightning] 그런데 계절을 꾸미고 있는 명사를 보면 조금은 특이하다. 가을엔 바람, 겨울엔 햇살, 봄엔 비, 여름엔 번개라는 꾸밈을 주고 있다. 계절의 모양세가 우리의 인생살이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 흔히들 성숙을 나타내는 가을을 바람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마치 나의 20대의 모습, 현재의 나의 상황,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녹록치 않은 나의 20대의 나날을 , 따사로운 빛 한점 없이 바람만 부는 공허한 시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나, 가을이 곧 겨울이 되듯 바람은 햇살로 변한다. 삶의 희노애락이 있듯이 비가 내려 땅을 굳인 후, 여름의lightining이 오는 것이다. lightning은 번개 외에 뜻밖의 행운이란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을 거친 후 준비가 되어 있다면 행운을 맞이 한다는 뜻이 아닐까. 

 

 

 

 








 

 

 

 

 

 

2. 

 밤 열한 시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이 있었다.  

 

 



 

 

꽃과 창이 있으면 그 어떤 삶도 작고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작가의 말. 참 많은 뜻을 지닌 꽃과 창일 것이다. 나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그 어떠한 대상이라던가 사건은 꽃으로 충분히 표현될 것이다. 그리고 창이라 함은 본래, 방어의 수단이기 때문에 삶을 나아갈 수 있는 나만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참, 타인과의 관계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진실성을 부여하고 있을지 생각케하는 부분이였다. 과연 관계에서 '옳은 선택'이란 있을 수 있는걸까. 그것을 그렇다라도 인정하기 위해서 믿음이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희망을 수혈 받는다. 가끔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기운을 얻기도 한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나에게 메세지를 던져 올 때가 있다. 요즘의 내가 희망의 수혈을 받는 대상은 '기업 공채'다. 역설적이게도 공채를 준비하면서 낙심을 하기보다 무엇을 내가 해야 할지 희망의 문고리를 여는 것 같다. 그래서 근래 나의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앞은 깜깜하기만 하다지만 그런 과정에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싸움. 그리고 습관이라니, 여기에서 습관이라 함은 '변하지 않는 것'일테다. 어떠한 상황을 나의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선 약 3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다.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나지 않고선, 그것이 나에게 익숙함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변하려는 것들과 싸우는 것은 나의 의지력과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넓게 보자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저절로 변하는 것에 대한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지쳐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정보를 받아들여 익숙해지는 것이다.  

 

 

 

 

3.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으니 바쁜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진짜로 바쁜 것일지 무늬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의 삶에 lightning이 오기까지 나는 계속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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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 소담출파사 | P.295

 

 

 

 

 

 

 

1.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 철학 책이 아닐까 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읽기 내려간 책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입부를 넘기기가 참으로 힘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어떤 종류의 책인지 분간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도입부분을 일주일을 잡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잠을 들게 하지 않는 주사기'의 등장도 혼랍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든게 복선이였고 마르코스의 초능력과 외계인의 등장이 이야기의 속도에 힘을 입혔다. 

 

 

 

 

2. 

 마르코스는 어머니와 특별한 유대감을 지니고 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이자 정신적 지지자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마르코스는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이란 제목처럼 저녁이란 시간을 버리기로 한다. 저녁이라 함은 보통 잠을 자는 시간일 것이다. 이런 시간을 마르코스는 잠을 안 자게 해주는 주사기를 투여함으로써 '잠'을 없애고 저녁시간에 할 수 있는 그 행위를 포기한다. 이처럼 자연적인 행위를 포기함이란, 마르코스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크나 큰 고통이자 충격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러던 시점에 마르코스에게 무언의 일이 닥친다. 그는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뉴스 보도를 보게되고 상관으로부터의 연락을 받게 된다. 마르코스는 남들과는 다른 초능력이 있다. 상대방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래서 상관을 마르코스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마르코스는 그 외계인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마르코스의 정체와 내심을 들키고 만다. 그리고 외계인을 만나는 길에 한 광장에서 보게 된 한 소녀를 찾아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3.  

 이 책을 읽자마자 불교의 '일기일회'라는 말이 생각났다. 일생의 한 번 뿐인 인연 이란 뜻인데 외계인이 마르코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어머니의 인연이 아닐까 싶었다. 윤회사상을 보더라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 않았는가. 외계인은 과거 사고로 인해 팔, 다리를 잃게 되었고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 보낼 수 밖에 없던 사건과 그런 그녀 옆에서 잠들었던 이야기를 보면 마치 마르코스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그 슬픔과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이 외계인은 어머니가 보낸 것일지 의문이 든다. 사랑하는 아들, 마르코스가 잠을 포기하게 만드는 주사약에 취하지 않고 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광장에서 만난 그 여인과의 만남을 연결 해준 것이다. 아니면 그 여인은 어머니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이 인연이라면 어떻게해서든 다시 만나듯이 마르코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4. 

 사람은 이런 인연을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함부로 생각하고 단정짓고 행동하는 것이다. 마르코스는 그 인연으로 인해 자신을 망칠 뻔했다. 끝을 매진 그 만남이 결코 자신에게 실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 터인데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뻔한 것이다. 나의 상황과 열결하자면 얼마전, 친한 친구로부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면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잊고 있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나에게 해를 가할 인연이라면 지속할 필요가 없을 것인데 그것까지 다 떠안고 갈려고 했다. 나는 더이상 18살 여고생이 아닌데 감정은 그곳에 있고 나아가질 못하니 생각만 많아지고 마치 마르코스처럼 내 삶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내 친구는 그 외계인이였나 보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 처럼 내 감정과 미련하고 더이상 가치가 없어진 그 밤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그 소녀를 만난 것 처럼 새로운 밤을 만들어야지. 다시 한 번, 나의 인연이 된 사람들과 나의 행동, 생각, 모두에게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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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배진수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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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曜日

배진수 | 소담출판사 | P.405

 

 

 

 

 

 

 

1.  

  평소 웹툰을 즐겨 보는 나이지만 죄송스럽게도 배진수氏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도 호러&추리 소설 인 줄 알았다. 그리고 펴보기전 두꺼운 책에 조금 놀랐지만 웹툰이라는 사실에 뭔가 반가우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내가 생각했던 가벼움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없던 방식의 폭로와 풍자 웹툰'이라는 평과 걸맞게 심심하지 않은 내용을 스릴러로 담고 있다.  

 

 

 

 

  

 

 

 

2.  

  총 3부작으로 큰 스토리안에 작은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딜레마, 아이러니, 혼돈> 공포소재를 이렇게 잡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1부 딜레마에서의 <원룸>은 은둔자, 히키코모리, 니트족이라 불리우는 사람의 이야기다. 세상 사람들이 소위 '성공'이라는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네들처럼 평균을 한참 밑도는 능력과 외모를 타고난 사람이 이러한 '성공'이라는 것을 해낼 확률이 한없이 낮다고 여기는 사람들. 나는 이런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상에 나갈 힘과 욕심 열정 도전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자존감을 상실했을까. '원룸'의 주인공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으로 작은 원룸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꾸리고 9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결코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가상의 세상에서 돈도 벌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며 개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를 사러 밖을 나가려고 채비를 하고 문을 여는 찰나 그 안에 또다른 방이 있다. 방밖에 또 방이 있는 것이다. 수백번 문을 여닫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는 서서히 식(食)과 음(飮)의 본질을 깨닫는다. 의지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육식을 끊고 담배를 끊고 몸을 단련하게 되었다. 할 것이 없으니 스스로 유희를 만들었다. 글을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방문을 열었을 때 그 방문이 평상시의 것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꼭 나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분명 한정된 공간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정된 음식, 한정된 생활, 어쩔수 없이 실행했던 유희들. 마치 불가의 면벽수행과도 같았던 나날을 보냈을 그는 고통의 비례하듯 얻어낸 것들도 결코 작지 않았다. 건강한 정신과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 그리고 더 나은 인간으로의 도달. 하지만 이런 결과에 달리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 것을 보면 그는 한번이라도 자의에 의해 무엇을 행하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자신이 무엇가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조건이 되는 상황에서 부딪혀 볼 용기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상 상황탓하기 바쁘다. 사회가 날 받아주지 않아서, 체제가 이상해서 등등 모든 문제와 해결을 자신에게 달려있거늘 자신과 대화를 하고 살펴볼 여력을 두지 않는다. 사회가 만들어 낸 어쩔수 없는 흠집이라고 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작가가 1부에서 딜레마를 다룬 것을 보면 이와 같이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엔 너무 각박한 현실이 문제인지 건강한 정신,자아실현,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나가기 두려워 하는 본인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 자체의 딜레마를 생각해 보라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과연 나한테 있어서 성공이란 무엇이며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금 돌이켜본다. 

 

 

 

 

 

3. 

  2부 아이러니에서의 <지아비>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지아비(부)라는 한자를 보면 하늘을 뜻하는 글인 하늘(천) 天 에 하늘보다 높이 솟아 있다는 것을 붙여 지아비(부) 夫 가 만들어졌다. 즉, 가장은 하늘보다 높다라는 뜻이다. 웹툰 속의 한 가장은 한때 가족의 존경심과 사랑을 받으며 말 그대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생활비를 벌어오지 못하면서 가족이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며 폭력을 일삼는다. 심지어 예전에 나를 존경한 것이 아니라 내 돈을 존경한 것이라는 생각을 미친다. '보장일 2년 경과'라는 날짜에 가까워지고 그 날이 되자 이 가장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며 아들에게 묻는다. "넌 날 존경하냐?" 이 말에 아들은 "네.. 진심으로.."라며 말을 마친다. 그리고 그 가장은 넥타이에 목을 메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가족은 웃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알고보니 이 보장일 2년 경과라는 것이 생명보험과 관련 있었으며 사망시 지급되는 보험 약관이 '보장개시일로 부터 2년이 경과된 후 계약자 사망 시 망인의 사망사유에 무관하게 수익자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뉴스에서도 여러차례 보도 했듯이 자녀들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굉장히 어려워하며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기계라며 가족의 구성원 취급을 하지 않는 실태이다. 넘쳐나는 사교육비에 허덕이며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하며 그 사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녀들. 물론 교육 적인 측면에서만 문제가 발생 한 것은 아닐테지만 이러한 결과로 가족은 대화를 잃었다. 돈만이 생활을 유지하는 연결고리요, 살아가는 가치가 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사치일 뿐이다. 돈으로서 가장의 존경심이 표출 되며 유지가 된다니. 참으로 가슴아픈 이야기이며 우리네 현실일 것이다.  

 

 

 

 

4.  

   3부의 혼돈에서의 <카르마>는 가장 소름끼치게 보았던 부분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 즉 업보라 칭하는 카르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학생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하게 되면서 김씨라는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 아저씨는 누가봐도 선행을 행한다. 예를들자면 청소와 빨래는 물론이고 힘든 작업은 늘 손선해서 하며 아픈 사람이 있을 땐 밤새 간호해주고 쉬는 날엔 틈틈이 봉사활동을 나간다. 학생은 이 아저씨의 선행이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이 증폭되어 김씨에게 다가가 그 선행 뒤에 담긴 비밀을 깨내려고 한다. 그러자 김씨는 그 이후로 학생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거리를 지켜달라며 학생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김씨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질 즈음 다른 이로부터 김씨가 학생의 대학 선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시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한밤중, 학생은 김씨를 찾아가 자신이 예전 살인을 저지른적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로부터 과거의 죄를 씻기 우해 카르마에 집착하고 속죄를 위한 혼자만의 고행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된다. 문제는 그 일이 일어난 후, 김씨는 눈에 띄게 학생을 찾고 심지어 봉사활동을 같이 나가자며 권유한다. 다를 것 없는 막노동 생활이 이어지던 중, 한 노동자가 일을 하다 철조물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김씨는 이를 구한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이세상에 가장 순수하고 선한 사람인 줄 알았던 김씨는 사실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덕을 쌓고 있는 중이었고 마침내 사람을 구했기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그 죄가 상쇄된다고 믿는 '등가교환' 살인범이었다. 학생을 살인을 하는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씨를 보며 학생은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그 증거로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요." 라고 말을 하는데 김씨는 대답한다. "이 눈물은 말이예요, 기쁨의 눈물이예요." 

  카르마라는 단어속에 담긴 참 뜻과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다소 놀라운 이야기였다. 카르마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의 미래는 현재 자신의 행실에 의해 결정되기떄문에 덕을 많이 쌓을 수록 좋은 것에 다다를 수 있고 반대로 악을 많이 쌓을 수록 원하지 않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여기, 카르마의 논리라면 죄를 상쇄시키기 위해 덕을 쌓으면 덕으로 인해 나중에는 죄가 없어지게된다는 이야기인데 '혼돈'스럽게도 나중, 죄를 저지르기 위해 덕을 행하면 나중 그 죄를 저릴렀다 하더라도 그 죄는 무효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선한 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떤 죄를 혹은 악을 행하기 위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 죄라는 것에 어떠한 성취감이 있길래 선한 것을 취하면서 가면을 쓰듯 자신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내가 저지른 선한 악이라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방과후 보충 수업이 듣기 싫었던 날 평소 나의 모범적이었던 이미지를 이용하여 담임선생님께 거짓말을 하여 수업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한번의 악을 위해 그동안의 선을 희생해버렸을 때, 가슴 떨리긴 했지만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악이라는 것이 이렇듯 '선'이라는 것을 쉽게 내려놓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카르마라는 말 뜻에 집중해 보았을 때, 이 말을 잘 되세겨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나의 미래는 지금의 행실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 내가 무언가를 성취한다거나 혹은 나의 성격이 결정된다거나 하는 모든 것이 나의 과거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현재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과거의 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증빙하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 위치에서 어떠한 생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잠시 잊혀두었던 그 탐색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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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 -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베르나르 뷔페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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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독약

프랑수아즈 사강 | 소담출판사 | P.72 

 

 

 

 

1. 

  프랑수아즈 사강의 두 번째 서평 책. <독약> 책이 굉장히 얇고 글도 많지 않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금방 읽겠거니 하고 챙겨들고 펼쳤으나 바로 덮어버렸다. 글과 그림이 같이 어울러진 책인데, 그림이 너무나도 성적이어서 당당히 펼쳐보일 수 없었다. 

 1957년 프랑수아즈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석달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그곳에서 875(팔피움)이라는 모르핀 대용약제를 처방받게 되는데, 석달 뒤 이 약에 약물중독되어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일기 형식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나는 살면서 크게 다쳐본 적이 없다. 고로, 병원신세를 지다.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그렇데 와닿지 않는다. 물론 약물중독 자체도 느껴보지 못했을 터. 프랑수아즈는 책 제목을 <독약>이라는 소재로 삼은 것 만큼 그녀에게 있어 병원신세와 약물이라는 것이 그것과 비슷하거나 같음이였을까? 

 

 

 

 

2.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시간의 속성이라는 것. "나는 열여섯이었다. 열여섯이던 시절이 있었다. 열여섯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음 그 자체라고 믿는 나는, 나는 늙지 않았다. 실은,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수아주즈는 열여섯에 꿈꾸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을 아직 마음에 품어두고 있나보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기를 할 수 없다는 것. 아니 못하게 만들만큼 나에게 있어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드는 건 과연 행운일까? 누구는 그것을 찾지못해 정체성을 잃고 길을 헤메이지만 정작 알고 있는 어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부딪혀 또는 자신감의 결여 등의 내 ·외부적인 요인으로 장애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포기할 수 없을 만큼의 그 무엇이 비단길을 걷듯 미끄러지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답답할 노릇이다. 20대 중 후 반, 내 나이. 나도 포기할 수 없어 좋은 조건 좋은 사람들을 내려두고 뛰쳐나올 만큼 그 매력적인 그것이 나는 강하게 만들다가도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늙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늙는다는 것. 사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직업의 특성 때문일까. 나는 나의 목표를 잃고 싶지 않고 나의 젊음을 나의 그 열정을 잃고 싶지가 않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것이 변하거나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 순간을 잃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항상 과거를 추억하고 그 추억에 대한 회상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대학생활 많은 과제와 원어민수업. 스터디, 학원. 정신없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라고 생각할지라도 분명 그 속에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즐거웠던 기억으로 힘들었던 순간을 감싸안아버려 그 기억으로 만들어 놓는 것같다. 그래서 추억이 항상 즐겁다. 그 추억에 젖어 과거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나이가 먹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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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소담출판사 | P.411

 

 

 

 

 

 

 

1.  

  부끄럽게도 이 책이 이렇게도 유명한 책인지 몰랐다.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이 모두 호평을 자아냈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나또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인 소로우는 1845년 문명을 등지고 월든이라는 호숫가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삶을 영위해나간다. 직접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며 2년 이상을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지내며 인간 본연의 삶이라던가 그들의 참된 사회 모습에 대한 성찰 할 기회를 들여다본다.  

 

 

 

 

2.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쫓기듯이 삶을 영위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우리는 허기가 지기도 전에 벌써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_P.111 160년 전에도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과 가치관, 이념이 지금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었나보다. 얼마 전,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 라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런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휴가를 다녀오기 위해 1년 넘게 쏟아 부었던 적금을 해지하러 가는 길, 이 돈을 모으기 위해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모두 아껴가며 차곡차곡 모아뒀는데 휴가를 가자고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적금을 깨고 나는 휴가를 가야하는 것인가." 가끔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덕이고 삶에 치이고 있는 걸까.  

 그런데, 나는 소로우가 말 한 '인생의 낭비'란 과연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인생의 낭비란 없다고 본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고 쾌락에 집중 된 삶을 살지라도, 제 3자가 보았을 때 혀 끓는 말을 던질지라도 그들이 과연 그런 말을 할 가치가 있겠냐는 것이다. 과거 그러한 삶이 있었기에 현재 나는 반성하고 성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참되고 바른 길만을 갈고 닦았더라면, 소로우가 말한 인생의 낭비가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1세기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소로우의 책 <월든>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 인생의 낭비란 말을 주구장창 난발했던 나였다. 하지만 깨닳았다. 낭비란 없음을.  

 

 

 

 

3.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현대의 보다 실질적인 학문을 위한 길이 되어 줄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모험심에 넘치는 학생이라면 그것이 어떤 언어로 씌어지고 그 언어가 얼마나 오래된 것이든 상관없이 고전을 공부할 것이다_P.122 신기하게도 아무리 오래된 고전 소설이라 할지라도 삶에 이치는 현재와 비슷하거나 매우 같다. 우리나라 왕들도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고전과 과거 위인의 업적 등과 관련된 서적을 끊임없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은 다른 누구도 펼쳐볼 수가 없었다. 과거의 행실과 업적으로부터 지혜를 터득하고 배움을 스스로 얻는 것, 이것은 글만이 가능케 하는 힘일 것이다. 뿐만아니라 같은 형태로 쓰여져 있지만 어떤 의식을 지닌 사람의 손에 가느냐에 따라 그 책의 값어치는 또 바뀌게 된다.  

  고전을 원어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대해 아주 부족한 지식을 얻을 수밖에 없다_P.123 소로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문학이 자세히 말하자면 '시詩'가 세계 문학상에 올라가기 어려운 것이 다른 나라말로 우리나의 색체, 음성언어를 우리 교유한 감성 그 자체로 담아내기가 어려워서이다. 서정주의 시 <귀촉도>가 예라고 볼 수 있겠다.  

 

 

 

 

 

 

                   귀촉

 

 

                                        서정주 

 

 

 

      눈물 아롱라올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신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히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이 시가, 노벨 문학상에 올랐지만 상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눈물 아롱아롱'에서 아롱아롱을 A-rong A-rong이라고 번역했다. 그들이 이 말 뜻을 알아듣고 느낄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 때 이 사실을 알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서 느꼈던 것이 타국의 문학작품을 접할 땐, 원서로 읽어봐야 그것이 하고자하는 바를 잘 느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많은 원서작품을 접했을까. 영문과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작품을 읽어보진 못한 것 같다. 읽기 편함을 찾다 과거 느꼈던 그 씁슬함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각성하게 된다.  

 

 

 

 

4. 

 사념에 사로잡힘으로써 건전한 의미에서 우리는 미칠 수가 있다_P.163 사람들은 혼자있기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들에게 섞여 있을 때 더 외룹다라는 감정을 느낀다. SNS인 페이스북. 팔로우한 친구가 많으면 많을 수록 사람들은 불행함을 느낀다고 한다. 관계를 잇기위한 행동이 오히려 끊음을 유발하는 이런 상황을 보자면 인간은 아무리 사회성 동물이라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사색을 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함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고독을 통해 자신과 자주 마주한 사람이야 말고 내면의 영혼이 강함을 본인이 느낄 것이다.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이런 '고독'의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부모와 친구가 아니다. 나 자신이다. 검색보다는 사색이 필요한 시간이다.

 

 

 

 

5. 

 소로우는 혹한의 날씨에 숲어 들어가 나무의 나이테를 세다가 결핵에 걸려 45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로우의 오두막 집에 방문한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그처럼 큰 기쁨과 평화로움을 가지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라는 말을 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 사로 잡힌 사람 일 수록 그 죽음에 대한 부정과 거부가 더 심하다고 하는데 소로우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하기 위해 좋은 음식만 먹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서도 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병마용을 만드는 등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쳤다. 소로우는 삶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무엇의 진리를 깨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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