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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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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 | 소담출판사 | P.405

 

 

 

 

 

 

 

1.  

  평소 웹툰을 즐겨 보는 나이지만 죄송스럽게도 배진수氏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도 호러&추리 소설 인 줄 알았다. 그리고 펴보기전 두꺼운 책에 조금 놀랐지만 웹툰이라는 사실에 뭔가 반가우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내가 생각했던 가벼움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없던 방식의 폭로와 풍자 웹툰'이라는 평과 걸맞게 심심하지 않은 내용을 스릴러로 담고 있다.  

 

 

 

 

  

 

 

 

2.  

  총 3부작으로 큰 스토리안에 작은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딜레마, 아이러니, 혼돈> 공포소재를 이렇게 잡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1부 딜레마에서의 <원룸>은 은둔자, 히키코모리, 니트족이라 불리우는 사람의 이야기다. 세상 사람들이 소위 '성공'이라는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네들처럼 평균을 한참 밑도는 능력과 외모를 타고난 사람이 이러한 '성공'이라는 것을 해낼 확률이 한없이 낮다고 여기는 사람들. 나는 이런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상에 나갈 힘과 욕심 열정 도전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자존감을 상실했을까. '원룸'의 주인공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으로 작은 원룸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꾸리고 9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결코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가상의 세상에서 돈도 벌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며 개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를 사러 밖을 나가려고 채비를 하고 문을 여는 찰나 그 안에 또다른 방이 있다. 방밖에 또 방이 있는 것이다. 수백번 문을 여닫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는 서서히 식(食)과 음(飮)의 본질을 깨닫는다. 의지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육식을 끊고 담배를 끊고 몸을 단련하게 되었다. 할 것이 없으니 스스로 유희를 만들었다. 글을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방문을 열었을 때 그 방문이 평상시의 것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꼭 나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분명 한정된 공간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정된 음식, 한정된 생활, 어쩔수 없이 실행했던 유희들. 마치 불가의 면벽수행과도 같았던 나날을 보냈을 그는 고통의 비례하듯 얻어낸 것들도 결코 작지 않았다. 건강한 정신과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 그리고 더 나은 인간으로의 도달. 하지만 이런 결과에 달리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 것을 보면 그는 한번이라도 자의에 의해 무엇을 행하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자신이 무엇가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조건이 되는 상황에서 부딪혀 볼 용기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상 상황탓하기 바쁘다. 사회가 날 받아주지 않아서, 체제가 이상해서 등등 모든 문제와 해결을 자신에게 달려있거늘 자신과 대화를 하고 살펴볼 여력을 두지 않는다. 사회가 만들어 낸 어쩔수 없는 흠집이라고 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작가가 1부에서 딜레마를 다룬 것을 보면 이와 같이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엔 너무 각박한 현실이 문제인지 건강한 정신,자아실현,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나가기 두려워 하는 본인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 자체의 딜레마를 생각해 보라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과연 나한테 있어서 성공이란 무엇이며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금 돌이켜본다. 

 

 

 

 

 

3. 

  2부 아이러니에서의 <지아비>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지아비(부)라는 한자를 보면 하늘을 뜻하는 글인 하늘(천) 天 에 하늘보다 높이 솟아 있다는 것을 붙여 지아비(부) 夫 가 만들어졌다. 즉, 가장은 하늘보다 높다라는 뜻이다. 웹툰 속의 한 가장은 한때 가족의 존경심과 사랑을 받으며 말 그대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생활비를 벌어오지 못하면서 가족이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며 폭력을 일삼는다. 심지어 예전에 나를 존경한 것이 아니라 내 돈을 존경한 것이라는 생각을 미친다. '보장일 2년 경과'라는 날짜에 가까워지고 그 날이 되자 이 가장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며 아들에게 묻는다. "넌 날 존경하냐?" 이 말에 아들은 "네.. 진심으로.."라며 말을 마친다. 그리고 그 가장은 넥타이에 목을 메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가족은 웃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알고보니 이 보장일 2년 경과라는 것이 생명보험과 관련 있었으며 사망시 지급되는 보험 약관이 '보장개시일로 부터 2년이 경과된 후 계약자 사망 시 망인의 사망사유에 무관하게 수익자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뉴스에서도 여러차례 보도 했듯이 자녀들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굉장히 어려워하며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기계라며 가족의 구성원 취급을 하지 않는 실태이다. 넘쳐나는 사교육비에 허덕이며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하며 그 사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녀들. 물론 교육 적인 측면에서만 문제가 발생 한 것은 아닐테지만 이러한 결과로 가족은 대화를 잃었다. 돈만이 생활을 유지하는 연결고리요, 살아가는 가치가 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사치일 뿐이다. 돈으로서 가장의 존경심이 표출 되며 유지가 된다니. 참으로 가슴아픈 이야기이며 우리네 현실일 것이다.  

 

 

 

 

4.  

   3부의 혼돈에서의 <카르마>는 가장 소름끼치게 보았던 부분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 즉 업보라 칭하는 카르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학생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하게 되면서 김씨라는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 아저씨는 누가봐도 선행을 행한다. 예를들자면 청소와 빨래는 물론이고 힘든 작업은 늘 손선해서 하며 아픈 사람이 있을 땐 밤새 간호해주고 쉬는 날엔 틈틈이 봉사활동을 나간다. 학생은 이 아저씨의 선행이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이 증폭되어 김씨에게 다가가 그 선행 뒤에 담긴 비밀을 깨내려고 한다. 그러자 김씨는 그 이후로 학생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거리를 지켜달라며 학생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김씨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질 즈음 다른 이로부터 김씨가 학생의 대학 선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시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한밤중, 학생은 김씨를 찾아가 자신이 예전 살인을 저지른적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로부터 과거의 죄를 씻기 우해 카르마에 집착하고 속죄를 위한 혼자만의 고행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된다. 문제는 그 일이 일어난 후, 김씨는 눈에 띄게 학생을 찾고 심지어 봉사활동을 같이 나가자며 권유한다. 다를 것 없는 막노동 생활이 이어지던 중, 한 노동자가 일을 하다 철조물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김씨는 이를 구한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이세상에 가장 순수하고 선한 사람인 줄 알았던 김씨는 사실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덕을 쌓고 있는 중이었고 마침내 사람을 구했기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그 죄가 상쇄된다고 믿는 '등가교환' 살인범이었다. 학생을 살인을 하는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씨를 보며 학생은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그 증거로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요." 라고 말을 하는데 김씨는 대답한다. "이 눈물은 말이예요, 기쁨의 눈물이예요." 

  카르마라는 단어속에 담긴 참 뜻과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다소 놀라운 이야기였다. 카르마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의 미래는 현재 자신의 행실에 의해 결정되기떄문에 덕을 많이 쌓을 수록 좋은 것에 다다를 수 있고 반대로 악을 많이 쌓을 수록 원하지 않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여기, 카르마의 논리라면 죄를 상쇄시키기 위해 덕을 쌓으면 덕으로 인해 나중에는 죄가 없어지게된다는 이야기인데 '혼돈'스럽게도 나중, 죄를 저지르기 위해 덕을 행하면 나중 그 죄를 저릴렀다 하더라도 그 죄는 무효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선한 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떤 죄를 혹은 악을 행하기 위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 죄라는 것에 어떠한 성취감이 있길래 선한 것을 취하면서 가면을 쓰듯 자신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내가 저지른 선한 악이라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방과후 보충 수업이 듣기 싫었던 날 평소 나의 모범적이었던 이미지를 이용하여 담임선생님께 거짓말을 하여 수업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한번의 악을 위해 그동안의 선을 희생해버렸을 때, 가슴 떨리긴 했지만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악이라는 것이 이렇듯 '선'이라는 것을 쉽게 내려놓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카르마라는 말 뜻에 집중해 보았을 때, 이 말을 잘 되세겨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나의 미래는 지금의 행실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 내가 무언가를 성취한다거나 혹은 나의 성격이 결정된다거나 하는 모든 것이 나의 과거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현재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과거의 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증빙하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 위치에서 어떠한 생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잠시 잊혀두었던 그 탐색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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