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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소담출판사 | P.411
1.
부끄럽게도 이 책이 이렇게도 유명한 책인지 몰랐다.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이 모두 호평을 자아냈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나또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인 소로우는 1845년 문명을 등지고 월든이라는 호숫가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삶을 영위해나간다. 직접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며 2년 이상을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지내며 인간 본연의 삶이라던가 그들의 참된 사회 모습에 대한 성찰 할 기회를 들여다본다.
2.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쫓기듯이 삶을 영위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우리는 허기가 지기도 전에 벌써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_P.111 160년 전에도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과 가치관, 이념이 지금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었나보다. 얼마 전,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 라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런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휴가를 다녀오기 위해 1년 넘게 쏟아 부었던 적금을 해지하러 가는 길, 이 돈을 모으기 위해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모두 아껴가며 차곡차곡 모아뒀는데 휴가를 가자고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적금을 깨고 나는 휴가를 가야하는 것인가." 가끔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덕이고 삶에 치이고 있는 걸까.
그런데, 나는 소로우가 말 한 '인생의 낭비'란 과연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인생의 낭비란 없다고 본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고 쾌락에 집중 된 삶을 살지라도, 제 3자가 보았을 때 혀 끓는 말을 던질지라도 그들이 과연 그런 말을 할 가치가 있겠냐는 것이다. 과거 그러한 삶이 있었기에 현재 나는 반성하고 성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참되고 바른 길만을 갈고 닦았더라면, 소로우가 말한 인생의 낭비가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1세기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소로우의 책 <월든>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 인생의 낭비란 말을 주구장창 난발했던 나였다. 하지만 깨닳았다. 낭비란 없음을.
3.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현대의 보다 실질적인 학문을 위한 길이 되어 줄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모험심에 넘치는 학생이라면 그것이 어떤 언어로 씌어지고 그 언어가 얼마나 오래된 것이든 상관없이 고전을 공부할 것이다_P.122 신기하게도 아무리 오래된 고전 소설이라 할지라도 삶에 이치는 현재와 비슷하거나 매우 같다. 우리나라 왕들도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고전과 과거 위인의 업적 등과 관련된 서적을 끊임없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은 다른 누구도 펼쳐볼 수가 없었다. 과거의 행실과 업적으로부터 지혜를 터득하고 배움을 스스로 얻는 것, 이것은 글만이 가능케 하는 힘일 것이다. 뿐만아니라 같은 형태로 쓰여져 있지만 어떤 의식을 지닌 사람의 손에 가느냐에 따라 그 책의 값어치는 또 바뀌게 된다.
고전을 원어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대해 아주 부족한 지식을 얻을 수밖에 없다_P.123 소로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문학이 자세히 말하자면 '시詩'가 세계 문학상에 올라가기 어려운 것이 다른 나라말로 우리나의 색체, 음성언어를 우리 교유한 감성 그 자체로 담아내기가 어려워서이다. 서정주의 시 <귀촉도>가 예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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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
서정주
눈물 아롱라올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신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히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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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노벨 문학상에 올랐지만 상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눈물 아롱아롱'에서 아롱아롱을 A-rong A-rong이라고 번역했다. 그들이 이 말 뜻을 알아듣고 느낄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 때 이 사실을 알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서 느꼈던 것이 타국의 문학작품을 접할 땐, 원서로 읽어봐야 그것이 하고자하는 바를 잘 느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많은 원서작품을 접했을까. 영문과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작품을 읽어보진 못한 것 같다. 읽기 편함을 찾다 과거 느꼈던 그 씁슬함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각성하게 된다.
4.
사념에 사로잡힘으로써 건전한 의미에서 우리는 미칠 수가 있다_P.163 사람들은 혼자있기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들에게 섞여 있을 때 더 외룹다라는 감정을 느낀다. SNS인 페이스북. 팔로우한 친구가 많으면 많을 수록 사람들은 불행함을 느낀다고 한다. 관계를 잇기위한 행동이 오히려 끊음을 유발하는 이런 상황을 보자면 인간은 아무리 사회성 동물이라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사색을 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함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고독을 통해 자신과 자주 마주한 사람이야 말고 내면의 영혼이 강함을 본인이 느낄 것이다.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이런 '고독'의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부모와 친구가 아니다. 나 자신이다. 검색보다는 사색이 필요한 시간이다.
5.
소로우는 혹한의 날씨에 숲어 들어가 나무의 나이테를 세다가 결핵에 걸려 45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로우의 오두막 집에 방문한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그처럼 큰 기쁨과 평화로움을 가지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라는 말을 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 사로 잡힌 사람 일 수록 그 죽음에 대한 부정과 거부가 더 심하다고 하는데 소로우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하기 위해 좋은 음식만 먹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서도 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병마용을 만드는 등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쳤다. 소로우는 삶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무엇의 진리를 깨닳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