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영원히 이용 가능하고 풍부하며 관대하리라 전제하고, 그 누구도 자원 고갈을 염려하지 않으며 쓰레기의 행방을 알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정된 공간인 지구에서 이런 가정은 터무니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비 방식, 나아가 우리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이 절실합니다. 지금 이 환경은 미래 세대가 이어 살아가야 할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소비한다는 건 지구에있는 무엇인가를 쉼 없이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착한 소비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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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 모두가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다. 무지에의 의지라는유혹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기꺼이 팬데믹을 사유할 것인가? 팬데믹을 생화학적 건강 문제만이 아니라 자연에서 우리 인간이 점유하는 위치와 우리의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 관계를 포괄하는 복잡한 총체성에 뿌리를 둔 어떤 것으로 사유할 수 있는가? 이 선택으로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일상성을 만들어내는 결정을 해낼 것인가? p202-203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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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포스트휴머니티)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건설하는, 힘들고 고통스런 길로 나서야만 한다. 이 건설 작업은 의학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속속들이 정치적 문제다. 우리는 사회적 삶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발명해야만 한다. p166-167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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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궁극적 선택은 이렇다. 과거의 일상으로돌아가기 위해 분투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팬데믹이 우리가 새로운 ‘포스트휴먼‘의 시대(인간됨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지배적 인식과 관련한 ‘포스트휴먼‘)에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 중 하나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이는 우리의 심리적 삶과 관련된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존재론적’ 선택이며, 우리가 현실(로 경험하는 것)과 맺는 모든 관계에 결부된다. p163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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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붉은 알약을 먹는 일은 이러한 폭풍들의 위협에 대면할힘을 모으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상당한 정도까지 그 폭풍들이 우리에게 달려 있으며 우리가 이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할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옛날의 일상성으로 돌아가려는 꿈은 꾸지 말자. 그렇다고 집단적 정신 존재라는 새로운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진입하려는 꿈도 꾸지는 말자. 현재 진행 중인 팬데믹 덕분에 우리기 우리의 개별 육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차원에서 우리는 싸움에 임해야만 한다.p113-114 - P113

필립 올스턴은 <가디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미 존재하던 가난이라는 팬데믹의 뚜껑을 열었을 뿐이다. 가난, 극단적 불평등,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시가 판을 치는 세상, 그리고 법적이고 경제적인 정책들이 가난을 종결시키기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부가 창출되고 유지될 수 있게 설계된 세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도달하게 한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가난이라는 팬데믹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 팬데믹을 봉쇄할 수 없다는 것이다. p118-119 - P119

명확한 전망이 제시되지못하고 있기에 우리는 두려움보다 더 심각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두려움에서 우울증으로 넘어갔다. 명확한 위협이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힘써 얻고자 하는 것에 이르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거듭 생겨날 때, 우리는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울증은 우리의 욕망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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