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 P63

개소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하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나 의무들이 화자가 가진 그주제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 P65

이론상뿐만 아니라 분명히 경험상으로도 우리가 자신에 대한 진리를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특이한 판단을 지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들은 특별히 단단한 것도, 회의주의적 해체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다. 다른 사물들에 비해 악명 높을 정도로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다. 그리고 사실이 이런 한,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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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개소리쟁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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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은 반드시 옳다고 여기거나 반드시 틀리다고 무시해야 하는 융통성 없는 규칙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교리‘, 즉 견고한 도그마와 직업적 사제 계급이 있는 그런 ‘교리‘, 세속의 교수대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그런 ‘교리‘가 없었기 때문에, 각 지역의 사람들은 각자의 종교적인 생각과 윤리적 개념을 각자의 취향에 맞게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다. - P37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가르쳤는데, 소크라테스는 아예 "인간의 보이지 않는 양심은 만물의 궁극적인척도이며(또는 척도가 되어야만 하며,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라고 설교했다. - P51

철학자(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논쟁했다.
"땅 위의 어느 누구도 다른 이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명령할 권리가 없으며, 각자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친구들이 인정해주지 않거나 돈이나 가족, 집이 없어도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하나의 문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 의견 모두를 철저히 검토해보지 않고서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어떤 문제든 완전히 자유롭게, 권력의 간섭 없이 토론할 수 있어야만한다." - P52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시마쿠스‘는 화해를 제안하는 그 유명한 편지를 썼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이교도와 이웃 기독교인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같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행성에 사는 동료 여행자이고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다. 각 개인이 궁극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어떤 길을 따르는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해답에 이르는 길이 오직 하나여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존재의 수수께끼가 너무나 크다" - P103

테미스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 어떤 통치자도 감히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덕의 영역, 특히 개인의 종교적인 신앙의 영역입니다. 신앙의 영역에 무언가를 강요하게 되면 사기를 바탕으로 한 전향과 위선을 낳습니다. 그렇기에 통치자는 모든 종교를 관용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시민의 분쟁은 오직 관용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관용은 신의 법입니다. 신은 당신이 많은 종교를 바라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직 신만이, 인류가 신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열망하는 여러 방법을 두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신은 당신께 바쳐지는 다양한 경배를 기뻐하며 받으십니다. 신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식으로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식으로 이집트인들은 이집트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 P104

삶은 진보를 뜻하고, 진보는 고통을 뜻한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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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매우 소중한 감정에 토대를 두고 있죠. 두 친구를 이어 주는 끈이 너무도 가늘기 때문에 그게 일단 끊어지고 나면 다시 붙이거나 이을 수가 없어요. 끈이 연결되었다고 해도 더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 거죠! - P36

모두가 어떤 특정한 순간에 약간씩 치사해질 수 있습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죠, 우리의 치사함은 항상 흔적을 남기니까요. - P41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여 주는 역량, 그리고 그와 아울러 명석한 통찰력과 현명한 거리 두기. - P43

내가 보기엔 날 때부터 신중하게 태어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모두 조심성 많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태어나야 할 것 같다고요. 실제로 우리는 부주의하고, 서투르며 때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데 말입니다. - P44

우리는 본래 야만인인데 가끔씩만 착하죠. 우리는 본래 무자비하게 상대를 짓밟는 짐승들이지만 어쩌다가 남을 돕기도 하는 아주 복잡한 존재입니다. - P98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사람은 예전에도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 - P102

친구가 그득하다느니 너무 많다느니, 이런 말 수상한데, 안 그런가요?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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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대랄지 관용이랄지 인간애랄지 하는 것들이 약자와 죄인, 혹은 인간 일반에 기울이는 동정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친절뿐만 아니라 우정까지도 잘 생각해 보면 특정한 대상에 쏟는 변함없는 동정심의 결과인 것이다. 누군가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P82

인간의 최초 감정은 자기 생존에 대한 감정이었으며, 최초 과심은 자기 보존에 대한 관심이었다. - P94

마침내 탐욕스러운 야심과, 진정한 욕구에서보다는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타인과 비교하며 재산을 늘리려는 열의는 모두에게 서로에게 해를 끼치려는 악한 성향과 은밀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질투심은 흔히 더욱 안전하게 활동하기 위해 친절이라는 가면을 쓰는 만큼 더욱더 위험하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경쟁과 적대가, 다른 한편으로는 이익의 대립, 그리고 타인의 희생 위에서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는 음흉한 욕망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 모든 해악은 소유가 낳은 첫 번째 결과이며 막생겨나는 불평등의 불가분의 동반자다. - P108

갖가지의 이런 격변들 속에서 불평등의 진전을 추적해 보면 우리는 법과 소유권의 확립이 그 첫 번째 단계이며, 행정관직의 제도가 두 번째 단계였음을, 그리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로는 합법적인 권력의 전제 권력으로의 변화였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신분은 첫 번째 시기에, 강자와 약자의 신분은 두 번째 시기에, 그리고 주인과 노예의 신분은 세번째 시기에 의해 허용되었다. 그런데 주인과 노예의 신분은 불평등의 마지막 단계로, 새로운 격변들이 정부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정당한 제도에 근접시킬 때까지는 다른 모든 단계가 거기로 귀착되는 단계다. - P124

정치 차별은 필연적으로 시민 차별을 야기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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