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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 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 테오리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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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보다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 재작년과 작년에 가족의 죽음도 있었다.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제목부터 끌렸다. 단순한 장의사가 아닌 시인 장의사는 어떤 특별함으로 죽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장황하게 이 얘기 저 얘기를 꺼내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조금 힘들어도 한 챕터씩 읽고 나면 공감이 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매년 나는 우리 타운 사람들 이백 명을 묻는다. 거기에 추가로 서른 명 정도는 화장터로 데려가 불에 태운다. 나는 관, 지하 납골당, 유골함을 판다. 부업으로 묘석과 비석도 판매한다. 요청이 있으면 꽃도 취급한다. (p17)

작가는 미시건의 작은 타운에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장의사이다. 장의사로서 죽음에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산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죽음이 안겨주는 슬픔 또는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한 손실 또는 이득은 그들의 것이다. 기억의 고통과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P27)

장의는 그 사람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산 사람들을 위한 의식인 것이고, 장의사는 그 산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죽음과 함께 그 사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아버지도 장례지도사였고 저자의 다섯 형제 가운데 셋이 장례지도사였다. 아버지의 죽음에 형제들은 아버지의 죽은 몸을 직접 돌본다.

그것은 우리가 늘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일이었다. … 그가 죽으면 아들들이 방부처리를 하고, 수의를 입히고, 관을 고르고, 염을 하고, 사망기사를 준비하고, 사제와 연락을 하고, 꽃, 음식, 경야, 행렬, 미사와 매장을 관리하겠다는 약속. (P49)

그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장례지도사 일을 하면서 모든 것에서 위험을 보았기에 두려움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자녀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 “안 돼!”를 먼저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하느님을 믿었다. 하느님이 보호해주고 지켜준다고 믿었다. 삶과 죽음의 일을 하느님에게 맡겼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왔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도 두려움을 배우게 되었다. (108p)
내가 아는 한, 두려움에 대한 현재 알려진 유일한 치료는 믿음뿐이다. (115p)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자신의 장례에 대한 이런저런 지침을 내린다. 하지만 결국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제 너희가 할 일이다-나의 장례는-내 일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죽음은 너희가 떠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p377)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은 증인이었다. 내가 있었다고 말해줄. 여전히 미친 소리로 들리지만, 어쩌면 내가 있다고 말해줄. 사람들이 물으면, 결국 슬픈 날이었다고 말해줄. 추운, 잿빛 날이었다고. 이월이었다고. (p377-378)

나의 죽음을 기억해주고 애도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 그들이 슬픈 날이었다고 말해줄 수 있도록 삶을 더 소중히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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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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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림과 짧은 글, 그리고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라는 부제목에 부담없는 편한 마음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다. 두 남녀가 함께 살면서 겪은 일상을 각자의 시각에서 솔직담백하게 써내려간 글인데 읽는 내내 소박하지만 따뜻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글과 함께 예쁜 그림이 더해져 한층 더 생생하게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또 남편과 나의 아이가 없던 신혼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현재 우리의 관계도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글들도 있었다.

“우리 집에 사는 뚜껑 요정이 뚜껑을 닫을 줄 모르는 마법에 걸려 내가 졸졸 따라다니며 뚜껑을 닫고 있다.”
요정은 개뿔…우리 집에도 전기 요정(?)이 살고 있다. 불을 켤 줄만 알지 끌 줄은 모르는…

“같이 살게 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 일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지낼 때가 많았다. 산책은 그랬던 우리에게 ‘햇볕 따라가기’같은 것이다.”
우리도 집에서는 남편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나는 안방에 있는 내 의자에 앉아 태블릿으로 영상을 본다. 그렇게 따로 놀다가 운동겸 걷기라도 나가면 그제서야 대화라는걸 하게 된다.

12년이면 꽤 함께 오래 지낸 것인데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책을 읽다 보니 결혼 생활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인데 동거생활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둘 다 결혼을 할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동거와 결혼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삶을 함께 살아가는 건 같은 일인데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하고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일을 두고 남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하나 둘 읽다보면 금세 끝까지 다 읽게 되는 재미있는 책이다.

“꽃이 주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보고만 있어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고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못난 구석이 없다. 저마다 제 모습 그대로 이쁨을 뿜어내고 있다. 뿜뿜이들 같으니라고.”
나도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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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 좋다, SF 영화 - 이 우주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한줄도좋다 3
유재영 지음 / 테오리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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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총 30편의 SF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각 영화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인상적인 대사 한 줄을 가져와 그것을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30편의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12편 정도 되었다. 그러나 이미 보았던 영화들도 본 지가 다 너무 오래되어서 개괄적인 내용만 기억날 뿐, 디테일은 당연히 기억이 안났다. 책을 보기 전에 영화를 보면 작가의 글에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먼저 몇 편 보았다. 확실히 영화를 보고 글을 읽으니 글에 대한 이해가 더 잘되긴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하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나만의 한 줄 대사를 뽑아봤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뽑은 것이랑 같은 것인지 비교도 해보았다. 나라면 이 대사를 가지고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ㅋ

공감갔던 이야기 중의 하나는 영화 <아일랜드> 편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같지 않은 인간을 ‘짐승’이라 표현하는데, 복제인간을 만들어 그것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는 인간이나 본인의 생명연장을 위해 살인도 묵인하는 인간을 볼 때, 오히려 “인간아”라고 말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작가의 말에 심히 공감이 갔다.

영화 <블레이드러너>는 보지는 않았지만 소개해준 내용만 보아도 “그 기억도 모두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라는 대사가 몹시 슬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애도할 수 있어서 죽은 이를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보았던 영화들이 하나같이 다 괜찮았다. 작가에게 재미있는 SF영화를 30개나 추천받은 느낌이다. 시간 날 때 하나씩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김에 책도 한 번 더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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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고 읽습니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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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와 ‘읽다'가 다 들어가 있는 제목인데, 오히려 ‘쓰기’가 더 강조된 제목인데, 나는 왜 이 책을 독서법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독서법이 아닌건 아니다.) 나의 기대와는 맞지 않은 내용이 나오면서(쓰기만을 너무 강조)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고 책 읽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독서의 목적이 오직 쓰기 위한 실용적 목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도 계속 반감이 느껴졌다. 독서법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가들이 결국에는 글쓰기나 책에 대한 서평 써보기 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내용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이 책은 오로지 쓰기에만 강하게 초점이 맞춰진터라 책 내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독서에 대한 패러다임이 조금은 바뀐 느낌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 다독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많이 읽고 싶어할 뿐이다.) "깨끗하게 읽으면 깨끗하게 잊힌다." 예전에 읽었던 메모 관련 책에 나왔던 말이다. 항상 머리 속에 생각하고 있는 구절인데 막상 책을 읽을 때에는 멈춤이 잘 되질 않는다. 빨리 이 책을 읽어 끝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 때가 많은데, 일종의 ‘다독'에 대한 강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 말마따나 책장은 착착 넘어가지만 헛배만 부를 뿐인데… 이런 공허함을 느꼈기에 독서법에 대한 책도 한두 권 읽어보고 이 책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에 읽었던 책들보다 한 술 더 나아가 독서는 쓰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한다. 사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쓰기를 싫어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쓰기란 초등학생 때 의무적으로 해야했던 일기쓰기, 학창시절 주어진 과제, 그리고 직업과 관련하여 작성해야하는 논문쓰기가 전부이다. 그 흔한 블로그나 SNS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기록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하루 몇 줄 안되는 일기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말했다. 쓰기와 읽기는 사실 한 몸이라고. 책을 통한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읽기에만 고정된 시선을 쓰기의 영역까지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사실 저자가 말한 쓰기의 방법은 내게 익숙한 것이다. 논문을 쓸 때 주제를 정하면 먼저 주제와 관련된 키워드를 입력해 참고문헌을 찾는다. 그것들을 대충 훑어보고 필요한 것들을 추려내어 인용하기도 하고 내 자료의 부족한 점을 알아내어 보완도 하여 좀더 완성된 논문을 작성하게 된다. 그런데 난 한 번도 이것을 실생활의 내 문제에 적용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책을 읽다가 잠깐 멈추고 현재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적어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적다보니 읽어보고싶은 책들이 몇권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게 용기를 주는 구절을 쓰고 싶다.
"지금부터 읽기와 쓰기를 할 때 '어렵다‘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버립시다. 전부 '익숙하지 않다'라는 개념으로 바꾸는 겁니다. … 어떤 영역이든 반복적으로 접하면 낯섬은 익숙함으로 두려움은 편안함으로 바뀝니다. 어려움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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