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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마르그리뛰 뒤라스 지음 / 산호 / 1992년 4월
평점 :
품절
창 밖은 새까맣게 어두웠고, 방 안은 따뜻했다. 그리고 집어든 이 책은 더없이 잔잔했고, 격정적이었고, 아름다웠고, 슬펐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소녀는 그 누구보다 초라하다. 소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녀의 드레스는 커다란 푸대자루 같은 센스 없는 모양이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남자 모자를 쓰고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30세의 중국 남자는 그녀의 어디에 끌린 것인가.
만남, 그리고 섹스, 만남, 그리고 섹스. 남자는 사랑을 원하지만 이 조숙한 소녀는 비웃는다. 그리고 외친다. 당신이 방에 데리고 들어오는 다른 여자들처럼 날 대해달라. 남자는 흐느끼고, 그녀는 곧 떠나게 된다.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올라탄 그녀는 점점 멀어지는 그 남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깨달았을까.
배가 뭍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그 때, 길고 검은 그의 승용차가 보이고 그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난간에 몸을 기댄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슬퍼진다. 생활에 찌들어 그를 선택한 그녀였지만 그 장면만큼은 소녀의 남루한 차림새도, 남자의 사치스러워 약간은 천박하기조차한 취향도, 모순덩어리 소녀의 가족들도 모두 잊혀지고. 그 자리엔 둘의 시선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