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의 국가와 시민단체는 과거에 비해 풍부해진 자원을 활용하여 한때 가문이 제공하던 복지 기능을 자임하게되었다. 그 확대된 공적 관계의 저변에서 유사 가족의 언어는 각자도생 중인 인간들을 여전히 끈끈하게 묶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공사(公私) 구분은 희미해지고, 계약서는 제대로 작성되지 않고, 직무는 정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정치학자 유홍림에 따르면, "혼란을 공동체 의식에 호소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특히 약자는 계약서의 조항보다는 강자의 가변적인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시인 신해욱의 표현을 빌리면, 이 사회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곧 수동태 문장으로 된 자서전을 쓰는 일이다. 수동태 문장으로 하루에 한 줄씩 삶을 "당하는 일이다. "타성에 젖는 맹렬한 쾌락에 사로잡히지 않고 능동태 문장으로 된 자서전을 쓸 때 새로운 공동체는 시작될 것이다. 그 새로운 공동체의 사회계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것이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을 맞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벗어나고 싶은 현재가 주는 참담함이 있다. 우리가 건축한 현대는 부실 건물이었다. 허겁지겁 베껴온 제도들은 헛돌고 있다. 시민이 대거 출현하는 데 마침내 실패했다. 자신들이 추구할 공동선을 정교하게 정의하는 데 기어이 실패했다. 우리의 성취는 꼭 성취가 아니었다.
새로운 사회계약은 무엇인가. 미국의 SF 소설가 할런 엘리슨은 자신의 작품에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제목을 붙인 바 있다. 우리는 대답할 입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와 같은 길을 앞서 걸어갔던 미국의 의학자이자 작가인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삶> 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는 담담히 회고한다. 자신은 맹렬하고 폭발적이고 극단적인, 불같은 열정의 인간이었다고, 즉 그의 삶은 헬조선과 같았다고, 열정을 가지고 지옥을 통과한 그가 내린인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이자 생각하는 동물(thinking animal)로서 이 아름다운 행성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특권(privilege)이며 모험(adventure)이었다." 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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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 <미나리>는 "버티라"고 말한다. 미나리는 버티는 식물의 대명사다. 실로, 삶에 아이러니가 있다는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아이러니가 있기에 희망도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불행이 있는 만큼 예상치 못했던 선물도 있다. 아칸소주 시골로 이사 왔을 때, 그 환경 변화가 손자의 심장 상태를 개선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쁜 일만 있는 게 삶이라면 삶은 예측 가능하리라. 삶은 예측 가능하지 않기에, 아이러니는 좌절할 이유도 되지만 버틸 이유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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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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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써 발견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철학에서 관찰할 수있었던 아주 특별한 이 추상의 의미이다. 이것은 실제로 정말 기이한 추상인데, 왜냐면 추상이 목표로 하는 것이 과학에서 하듯 세계안에 실존하는 사물들에 대한 인식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모든 것과 이뿐 아니라 실존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존재들의 자리와 의미와 기능에 관해 언제나 현존하는 선행 갈등을 내포하는 방식으로, 외부로부터 철학을 지휘하는 갈등, 철학이 철학으로 실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 내부로 끌어와야만 하는 갈등, 그러니 능동적 추상,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자기분열적인 논쟁적 추상, 이 추상은 자신의 대상들"이라 주장한 것들이 실존할 수도 실존하지 아니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대상들과 관련될 뿐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입장들 즉 자신의 고유한 "테제들과도 관련되는 것인데, 이 테제들은 역설적 조건에서만 확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테제들에 의해서 부인되면서도 확실히 이 철학의 끄트머리에 처박혀 있으면서도 그래도 현존한다는 역설. 그렇게 철학적 추상의 이 전혀 예기치 못한 특성이야말로 분명하게 이 추상을 과학적 인식의 추상과 그리고 그런 만큼 실천적 기술적 인식의 추상과 구별해준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보았듯, 바로 이 특성이야말로 철학적 추상을 기이하게도 이데올로기적 추상에 근접시킨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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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YDADDY!님
크리스마스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ヾ( *・ω・) °・ 🎅🏻
`し( つ つ━✩* .+°
(/しーJ

DYDADDY 2021-12-24 20:41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마음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이 작은 책에서 우리가 이 모든 질문을 떠올리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우리가 하려는 거대한 우회에서, 우리는 비철학 지형에 속하는 특정한 인간적 실천들에 대해서만, 요컨대 철학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실천들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가 다른 실천들의 실존을 염두에 두어도 좋다. 말해지게 될 이 모든 것을 저 다른 실천들이 조용히 뒤따라올테니.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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