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부남 A와 사랑에 빠졌지만 ‘나’의 집에서 만나고 함께한 시간의 대부분은 서로의 몸을 갈구하는 것이었으며 결국 A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대단한 모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밀한 성애 묘사도 없이 그저 사랑이 끝나갈 즈음 담담하게 자신의 내면을 써내려간 이 단편이 마음 아래 한구석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나’는 A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A에게만 집중한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미용실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심지어 사람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지만 A와 실날같은 연결이 있는 정보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상태를 무의식중에 말하게 될까 매순간 조심한다. 아들마저 A에게 시간을 양보해야 했으며, 카펫에 남은 자국마저 그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흔적이다. ‘나’는 A와 물리적으로 한 장소에 있지 않을 때에도 정신적으로는 함께 존재한다.이 엄청난 몰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저 성관계의 만족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자신을 세계와 단절하고, 자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오는 몰입만 가능할 것이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짧은 몇시간의 환희를 위해 일상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그 외의 어떠한 감정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하지만 모든 시작은 끝이 있듯, 영원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진리처럼 결국 그 순교적인 사랑도 끝난다. 다만 그 ‘끝’은 A가 고국으로 돌아간 그 시점에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으로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사랑의 끝이다. A를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가면서 감정이 희미해지면서 끝이 난다.석가모니가 제자 가섭에게 물었다. 이 꽃이 아름답지 않냐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유한하고 무상한 것이기에 아름답다. 누구도 영원히 지지 않는 플라스틱 조화를 보며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과정도 있겠지만 끝이 존재함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는 것에 있지 않을까. 마음 아래 한구석에 이 짧은 이야기가 남는 것은 내일이면 질 것을 알면서도 피는 꽃처럼 사랑하고, 사랑이 끝나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정직하게 이별하는 ‘나’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