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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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부남 A와 사랑에 빠졌지만 ‘나’의 집에서 만나고 함께한 시간의 대부분은 서로의 몸을 갈구하는 것이었으며 결국 A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대단한 모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밀한 성애 묘사도 없이 그저 사랑이 끝나갈 즈음 담담하게 자신의 내면을 써내려간 이 단편이 마음 아래 한구석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A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A에게만 집중한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미용실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심지어 사람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지만 A와 실날같은 연결이 있는 정보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상태를 무의식중에 말하게 될까 매순간 조심한다. 아들마저 A에게 시간을 양보해야 했으며, 카펫에 남은 자국마저 그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흔적이다. ‘나’는 A와 물리적으로 한 장소에 있지 않을 때에도 정신적으로는 함께 존재한다.
이 엄청난 몰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저 성관계의 만족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자신을 세계와 단절하고, 자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오는 몰입만 가능할 것이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짧은 몇시간의 환희를 위해 일상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그 외의 어떠한 감정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시작은 끝이 있듯, 영원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진리처럼 결국 그 순교적인 사랑도 끝난다. 다만 그 ‘끝’은 A가 고국으로 돌아간 그 시점에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으로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사랑의 끝이다. A를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가면서 감정이 희미해지면서 끝이 난다.
석가모니가 제자 가섭에게 물었다. 이 꽃이 아름답지 않냐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유한하고 무상한 것이기에 아름답다. 누구도 영원히 지지 않는 플라스틱 조화를 보며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과정도 있겠지만 끝이 존재함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는 것에 있지 않을까.
마음 아래 한구석에 이 짧은 이야기가 남는 것은 내일이면 질 것을 알면서도 피는 꽃처럼 사랑하고, 사랑이 끝나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정직하게 이별하는 ‘나’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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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5-02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조화도 예쁘게 나온 꽃이 많이 있지만, 생화가 주는 느낌은 다르더군요.
일주일 정도면 지나가는 유한한 시간이라는 것도 있지만, 향기가 있고 살아있다는 것의 느낌이 달랐어요.
DYDADDY님, 좋은 일 가득한 5월 보내세요.^^

DYDADDY 2023-05-03 00:41   좋아요 1 | URL
요즘에는 향기가 나는 조화도 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AI같은 느낌이랄까요. 사람도 각자의 향기(체취가 아닌 정신적인)가 있고 각자 취향에 따라 그 향의 호불호가 있겠죠. 서니데이님이 느끼시기에 좋은 향이 나는 인연이 오래 가시기를 바라요.
뭐든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거에요. 전에도 쓰셨듯이 자연스레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지요. 엔트로피는 자연스레 증가하고 그것을 줄이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습관이 되면 처음만큼 힘들지는 않을거에요.
어린이날이 오늘까지 포함해서 이틀 남았어요. 소풍날이 정해지면 소풍 전날까지 설레고 기분이 들떠서 그 기간이 더 좋았어요.
즐거운 설레임으로 좋은 밤 보내시기 바라요. ^^

젤소민아 2023-05-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리뷰를 썼더랬죠. ‘포옹‘이 이분 연인의 답소설...이라고 해야 하나...암튼 놀라운 나라란 생각이 듭니다~그 나라라서 이런 소설도 가능한 것 같기도 해요~읽으면서 자꾸 ‘불륜‘임을 망각하게 되는. 그런 나 자신에게 옅은 짜증이..ㅎㅎ

DYDADDY 2023-05-03 12:32   좋아요 0 | URL
프랑스는 성적인 부분에 있어 우리 나라에 비해 자연스러운 사회적 허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직접체험이 아니니 과장되거나 변질된 부분도 있겠지만요.
불륜의 ‘륜‘은 사회적 질서를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 질서는 사회구성원 중 어느 계층이 만들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죠. 그러한 사회적 금기에 대한 위반의 욕망이 불륜이라 생각해요. 또다른 관점에서는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감정인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사고처럼 들이닥치는 감정의 추동에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볼 수도 있겠죠.
아니 에르노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포착하셨기에 ‘불륜‘임을 망각하고 빠져드는 것 같아요. 성적인 부분이 회자되고 부각되지만 실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에 대한 소설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