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가 이파리를 포기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끊어내기로 결심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나무는 모든 잎을 떨귀야만 겨울의 혹한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버티고 살아남아 봄을 맞이해야 다시금 새로운 이파리를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성해지고 충만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날이 스산해지면 잎을 하나둘 포기하겠지. 그러한 반복반복... 혹시 나무에게도 기억이란 게 있을까. 만약에 나무가 제게서 돋아난 잎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한다면 해마다 몇백 번의 이별을 감당해야 할 텐데 과연 기억이란 게 있을까.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나무에게 기억을 주었을 리 없다. 아니 신이 있다면 나무에게 기억을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어떤 생명체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주었겠지. 그리하여 생애 겪은 모든 이별을 간직하도록, 잊지 못하도록 계획해두었을 것이다. 그것이 신이다.
p.013

어떤 원망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분석하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해소할 수는없는 것 같다.
p.074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항상 내 잘못이었다
내 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내 죄였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늘 내가 죽어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신하건대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도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든다.
p.094

오늘날 독자가 책에서 원하는 건 내밀한 공명 같아요. 언젠가 자신도 겪었으나 그게 무엇인지 모른 채 막연히 흘려보냈던 시절을, 애써 덮어두고 잊어버리려 했던 상처를, 사랑하는 이에게도 차마 발설할 수 없었던 욕망을 작가가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해냈을 때 그걸 좋다고 느끼는 거죠.
p.109


책을 읽을 때 줄거리도 중요하지만 작가님들의 문체에 끌리는 경우가 많은데..이 작품 역시 완전 내 스타일의 문체였다.
몇번이나 곱씹어보게 만드는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읽으면서 계속 '너무 좋잖아~~'하고 생각하게 만든 책!
문학동네 북클럽에서 웰컴도서 선택할때 그 수많은 책들에서 표지부터 제목까지 내 눈길을 자꾸 끌더니만..어둠뚫기 선택한 나자신 매우 칭찬해!
군대생활 2년을 빼고서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엄마와 함께 살고있는 주인공은 학점에 맞춰 경영학과를 전공했다가 증권회사를 잠깐 다닌후 그만두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이다.
어릴적 교통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다리장애를 가지게 된 형은 어떻게 엄마를 견디며 함께 살수있냐면서 차로 2시간 떨어진 도시에 살면서 명절에는 선물세트만 택배로 보내오고..
자신도 엄마라는 존재가 세상 가장 미우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는걸 느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퀴어소설이기에 중간정도에 주인공의 사랑과 만남에 대한 부분에서는 익숙치 않아라하는 사람도 있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주인공의 삶을 이야기 하고 그가 어둠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챕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자신보다도 훨씬 어린나이에 아들 둘과 세상에 남겨져  스스로 자신과 아이들의 삶까지 책임져야만 했던 엄마가 귀가 안들린채 평생을 살아왔음을 알게되고 이제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보살핌을 받고 있는 주인공이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병원에서 자신의 보호자로써 엄마의 고충이 이랬을지를 이해하게 된다.
글쓰는 모임을 하면서 주인공이 했던 말처럼 이 어둠뚫기 라는 책이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책을 읽고서 공명하게 되어서 이지 않을까..

#어둠뚫기 #박선우 #문학동네 #제30회문학동네소설상수상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