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시인선 214
안희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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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다만 기다리고 있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풍경을 골똘히 바라볼 뿐이다

수많은 이유로 아침을 사랑하고
그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 여름을 증오하는 것처럼

숲이 거기 있다는 이유로
숲을 불태우러 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것은 조용히 타오른다

-갈망 中-

실온에 두면 금세 썩는다고 했다.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다. 여름이 상하게 한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해서.
-터트리기 中

한 바구니에 담겨 있어도 골라낼 수 있다
비파 살구 매실

눈을 가린 채 만져도 골라낼 수 있다
비파 살구 매실

내 안에서 굴러나온 것들이니까

비파는 비를 피할 수 없어서
살구는 살아 있고 싶은 날
매실은 매일의 구원을 위해
쌓아놓은 것

나는 바구니를 들고 약수ㅌㅓ로 간다
쏟아버리려고

길바닥에 흩뿌리지 않는 것은
나의 작은 예의,
-소등구간 中

나에게서 지옥을 본다면 그건 당신의 지옥이라고
물이면 물. 불이면 불이라는 표정을 짓는군요
-청귤 中

굳은 모양을 보면
어떻게 슬퍼했는지가 보인다
어떻게 참아냈는지가
-간섭 中

시라고는 하상욱의 '서울시' 애순이가 전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 사고싶네 라고 했던 '개점복'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이런것들만 알았고..나에게는 시 구절안에 들어있는 의미들이 너무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장르였다.
그런데 주책공사님 이성갑님의 '오늘도 펼침을' 읽고서 안희연 시인님의 시집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구입했는데..
으아~~너무 좋은거 아니냐고..
'물고기가 파도에 지치면 어떻게 되죠' 완전 내스타일!
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거..
작가님이 그런 시를 쓰게 된 의도가 분명히 있겠지만..
그 시를 읽고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각기 다른 의미도 그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시집을 읽고 느낀 감정이 이 시집을 기억하는 방식이 되는거니까..
알쓸별잡에 출연하시는 작가님을 보면 너무나 밝으신 분인데..
이 시집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깊이는 너무나도 깊어서 놀랬다.
기쁨과 슬픔. 아픔등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도 깊고 넓게 느끼시기에 시인이신건가?
너무 너무 좋았던 시집이었다

#당근밭걷기 #안희연 #문학동네 #문학동네시인선214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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