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을 뚫어지게 응시해 봤자 돌아오는 건 역시 후회와 숨을 데가 없다는 사실뿐이더군요. 그 숨을 곳이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정직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p.075처음 해 보는 도전이나 시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후회나 두려움처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사춘기적 마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해야할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짓을 해서 우스광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 같은 것. 때문에 뭔가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재인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 사이에서는 '한다' 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남는게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p.080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인은 속으로 '해 본 것' 리스트에서 유독 도드라진 단어들을 읊었다.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어딘가에 아직 찾지 못한 근육이 있을 것이었다. 재인은 이제 겨드랑이 뒤쪽에 있는 그 근육의 이름을 알았다.p.107"모든 게 화무십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끓이면 뭐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닫고 들어가면 다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p.156제목부터 설레이는 '시작하는 소설'시작이라는 단어는 보기만해도..듣기만해도 설레고 긴장도 되는것 같다.이 책에는 '시작'이라는 주제의 일곱가지 단편소설이 담겨있다.친구와의 첫 가출이지만..비행청소년들의 가출이 아닌..성장에 관한 이야기 '마법사들'첫 정규직 직장에 출근하는 긴장과 설레임, 다짐들이 오롯이 느껴진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보육원에서 처음 만나고 10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스승에게 요리를 배우고..처음으로 혼자서 강의를 하는 '봄의 피안'한다와 하지 않는다 리스트를 만들어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재인..인생에서 좋지 않았던 기억들조차 해본 것이라는 리스트에 적어놓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나가는 재인과 자신이 하고싶은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 자신에게 놓여진 짜증날법한 일들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은영의 이야기 '근육의 모양'주차장요금정산소에서 일하는 장애인 주인공. 그녀에게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에 의해 사라졌던 기억들이 돌아오고..자신이 학교폭력 가해자였음을 알게 되지만..오해로 인해 연락이 끊겼던 가족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어나가려 노력하고..그림책작가로써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해나가는 '어제의 일들'개인적으로 가장 난해했던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라 믿었던 아이에 관한 '실뜨기놀이'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어보며 추억하는 손녀. 갑자기 돌보게 된 손녀 손자와..또 갑자기 떠나게 된 프랑스에서의 생활. 말 한마디 통하지않고 주변에 아는사람 하나 없이 낯선 곳에서 친구를 만들게 된 할머니. 그 둘의 관계가 친구였는지 애인이었는지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낯선곳에서의 관계의 시작을 보여줬던 '흑설탕 캔디'모두 시작에 관한 이야기들인데 역시 제일 좋았던 작품은 '근육의 모양'이었다.이제는 뭔가를 도전해볼까 하다가도..내 나이가 몇인데~~라는 생각으로 시작조차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에 이제는 설레임보다 긴장과 걱정이 먼저 앞서는거 같아서 도전하기가 쉽지가 않다. 언제 이렇게 쫄보가 되어버린건지...하지만 재인처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좌절하거나 힘들어하는 대신 '내가 해본 일'이라고 생각하면 시작하는데 진입장벽이 훨씬 낮아질꺼 같아서 이 책이 참 고맙다!모두의 시작을 응원합니다!#시작하는소설 #마법사들_윤성희 #백한번째이력서와첫번째출근길_장류진 #봄의피안_조경란 #근육의모양_김화진 #어제의일들_정소현 #실뜨기놀이_박형서 #흑설탕캔디_백수린 #창비 #창비서포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