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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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둘뿐인 일상은 더없이 단조로웠다. 준우는 어렸지만 아버지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 돼지들이 그랬듯. 준우는 아버지에게 길들고 있었다.
돼지처럼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없다. 자다가도 바가지로 사료를 푸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잤다. 돼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난지 반년만 되면 육돈으로 쓰일 정도로 큰다. 돼지는 동족의 고기도 가리지 않고 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다. 그런 놈들이 용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인다.
p.025

준우는 그때 깨달았다. 준서에게 박한서 능력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박한서를 믿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엄마가 죽은 후. 준서가 박한서의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고, 경찰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같이 근무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준서가 박한서에게 의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p.141

간혹 떠올랐다. 정의할 수 없는 아버지의 어떤 부분을 자신이 이어받지 않았을까, 동물의 죽음과 시체를 대하는 태도가 그부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들.
p.146

모른 척하는 거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거라고.
숨기려 하지 말고 덮어라.
아버지가 찾아낸 해결책이었다. 병든 돼지를 남몰래 살처분하는 일은 인간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돼지를 싣고 다니는 트랙터의 엔진음 을 빗소리로 덮고 돼지사체를 묻고 흙으로 덮었다.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덮
일 뿐이었다.
p.216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 수상작이 괜히 선정된게 아니었구나를 확실히 알게 해준 책이었다.
잔인한거 못 보는 분들은 읽기 좀 많이 힘들수도 있을듯한 내용들도 나오는데..
직접적인 살인과 그 후의 과정등도 잔인하긴 했지만..
돼지농장을 했던 아버지와 중학생 시절의 준우의 그때의 상황들과 분위기가 훨씬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건 나뿐인건가?
아버지와 둘이서만 살고 있던 어느날 농장으로 경찰들이 찾아오고 집을 나가 펜션을 운영하던 엄마가 안치호라는 인간에게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얘기를 건넨다.
그로부터 12년후 2년전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돼지농장을 부수고 그 위에 피스리버라는 반려동물 소각장을 운영하는 서준우. 그는 안치호를 죽이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중..비내리는 어느날 안치호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반격을 당해 쓰러진다.
눈을 떴을때 자신의 옆에는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안치호가 쓰러져있고 한쪽 발목이 잘린채 고무장갑이 씌워져 있었는데..
순간 울리는 핸드폰 알람. '잡혀 들어가기 싫으면 시체 치우기'
한편 아라뱃길에서는 토막난 시체가 5구나 발견되고 지문도 dna도 발견되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안치호의 시체를 소각로에 처리한 준우는 검정봉지에 담겨있던 발목을 함께 태우지 못했다가 누나인 서준수에게 안치호가 도망간게 아니라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릴 목적으로 아라뱃길에 유기한다.
아라뱃길 살인사건 담당형사인 박한서는 거의 셜록홈즈와도 같은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로 사건을 수사중이었는데..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한 남자 백상.
백상은 말그대로 그냥 미친놈이 아닐까 싶다. 꼭 이런 미친사이코들이 부자더라고 😡
안치호를 죽인 범인은 준우에게 다른 시체처리를 맡기는 연락을 해오고..준우는 자기 나름대로 그 범인을 찾기위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영업장으로 찾아온 한 남자..그는 준우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데...
어릴적 아빠의 사진속에 있던 녹색 지포 라이터..안치호가 갖고있던 녹색 지포 라이터..지금은 그 라이터가 누나인 준수에게 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다 일반적이지 않다. 감정이 배제된 사람들이라고나 할까..어릴적 돼지들을 마당에 묻던 아버지 사진식. 그걸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자란 사준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살인을 하는 백상. 형사인 박한서. 그리고 서준수와 그녀의 엄마 공예지.
그래서 소개글에 '핏줄을 타고 이어지는 업의 멍에'라는 표현이 나오는거였나..
사건을 벌이는 사람이 있고..그걸 치우고 덮는 사람이 있다는건가..
이들의 업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가 죽어야 끝남을 이야기 하며 끝을 맺은소설..
킬링타임용으로 읽어내려가기 너무 좋았다. 이런 장르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덕분에 언젠가는 극장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살포시 기대해본다.

#돼지의피 #나연만 #북다 #제11회교보문고스토리대상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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