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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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는 기분>, <게스트하우스 Q>,<안의 가방> 등을 쓴 박영란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표지는 여름과 잘 어울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딘가 스산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들어 찬 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읽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준, 엄마는 오래된 단독주택의 ‘2층’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1층은 주인집으로 나의 가족이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현재는 누구도 살고 있지 않다고 알려진 공간이다. 나와 준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1층에서 숨어 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나와 준의 성장을 통해 책을 읽고 있는 우리의 마음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지만 알찬 성장소설이다.



거실 바닥 가운데로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막아둔 2층 집. 집주인이 외국에 있어 지금은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1층에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렴 어떻냐며, 딱 2년만 여기서 살자는 엄마의 말을 따라 아이들은 2년 동안 자신의 집일 공간을 둘러본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무도 없어야 할 곳에서 백발의 키 큰 할머니를 동생 준이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다. 







1층에는 할머니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있었다. 여자아이는 종려, 남자아이는 자작. 나는 언뜻 할머니가 ‘종려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동생 준은 그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사정을 궁금해했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준은 그들에게 홀린 듯했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진짜 1층의 주인인지, 애초에 보아서는 안 될 존재인 건지. 나도 살짝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할머니 대신  ‘장희’라는 손자가 나와 준 앞에 나타났다. 할머니의 손자 장희는 제대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할머니가 오면 바로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준은 장희를 잘 따랐다. 장희와 종려, 자작과 함께 나가서 꿩도 보고 1층에 함께 있기도 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준은 그들에게 매우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끌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형, 할머니, 종려야, 자작아 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준은 장희가 떠난 이후 장원에 가기로 했다. 아빠가 있는 곳 장원. 복잡하면서도 쉽게 얽혀있던 그들의 매듭이 정체 모를 1층 집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풀리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왔던 엄마도 더 이상 냉장고에 식재료를 쟁여두지 않았고, 쉬는 날마다 장원으로 갔다. 아마 나의 입시가 끝나면 모두 장원에서 살게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처음에는 ‘그래서 할머니와 자작과 종려는 죽은 사람인가?’였고, 끝날 때쯤에는 ‘그들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였다.

나의 물음과 아쉬움은 작가의 말을 읽으며 해소됐다. 처음에 작가님은 할머니, 자작, 종려를 죽은 사람으로 설정했었다. 손자인 장희는 그리운 장소를 찾아오는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이 시공간 속에서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 있도록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제목과 내용이 100%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이야기. 외로움과 공허함 속에서 따뜻함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소설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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