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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샤 ㅣ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평점 :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나는 일정의 경유지 공항.
버샤의 가족에게는 이 공항이 경유지가 아닌 정착지로 자리 잡았다.
난민 문제부터 정규직 문제까지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고민과 문제들을 잘 녹여낸 소설이다.

여행지로 가기 전 들뜬 마음으로 향하는 공항이라는 장소에 대한 표현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당연한 말들로 가득한 문장이지만 버샤의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버샤 가족이 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바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것. 각자 갈 길이 바빠 버샤 가족에게 눈길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은 여행객들이 남긴 음식, 인형, 옷들에 관심가져서는 안 된다. 공항에서 지내는 ‘난민 가족’이 아닌 공항을 지나치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한 우유를 바닥에 쏟자 서둘러 씨리얼을 쏟아 우유를 머금어 먹는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강한 생명력으로 이 공항에서 버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어증이 생긴 맏딸 버샤. 그리고 그녀의 실어증 통역사 김만겸.
이 만남으로 그들은 난민 인정 심사에 한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난민 문제는 더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와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생기면서 뉴스를 통해 난민 관련 소식을 볼 수 있었다. 찬성과 반대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법이나 제도가 필요해보이긴 한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공항에서 지내는 난민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너희 나라로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니야? 라는 질문을 함부로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은 버샤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공항의 비정규직 직원 진우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진우는 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사원, 그리고 종현은 진우의 친구로 공항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원이다. 과거 진우는 종현보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둘의 운명은 뒤바뀌게 된다. 친구이자 상사 종현의 부탁으로 진우는 공항 야간 순찰을 돌다 포근하게 꾸며진 여자 화장실의 칸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만다. 정신차려보니 밖에서 들리는 물줄기.. 밖에는 월경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우리의 무슬림 소녀가 있다. 문을 열고 나간 진우와 마주치게 된 버샤.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갈 곳을 잃은 버샤 가족, 그리고 안정되지 않은 자신의 자리를 불안해하는 진우.
진우는 보이지 않는 버샤를 궁금해했고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난민 인정 심사와 설상가상으로 전염병이 돌아 폐쇄된 공항 상황에 잠시 낙담하게 된다.
실어증의 무슬림 소녀 버샤는 낯선 타국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난민 가족이 공항의 중심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