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의 이름은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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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이제 부를 이름조차 없는데도 아직 여기 남아 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이름이 없는 나는 나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나의 이름은





9개의 단편소설을 담은 소설집 <다시 나의 이름은>


담긴 소설 모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주인공의 상처가 모두 인간의 욕망이 낳은 갈등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점을 기억하면서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침묵의 벽


우리 모두를 위한 일


란딩구바안


꾸미로부터


나의 이름은


베스트 컷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모래의 빛


나무에 대하여





침묵의 벽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친구 은규가 사고를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나.


아무 말도 없이 끊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은규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나에게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나.


과연 그는 마지막 순간 나에게 통화를 한 걸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 들었던 걸까?


읽는 내내 물음표가 가득했던 단편이었다.





란딩구바안


주제도, 그걸 풀어가는 과정도 너무 마음에 들었던 소설.


단편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에서 근무한 후 번역 일을 짬짬이 하고 지내는 정옥. 중년의 정옥이 하는 일은 택배를 배송하는 일이다.


그날따라 어쩐 일인지 전철이 고장 나고, 배송 지역도 쉽게 찾을 수 없어 헤매는 정옥은 중간중간 원서를 번역해 읽곤 한다. 정확한 뜻을 몰라 여러 번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란딩구바안'이라는 단어. 과연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중년 여성의 경력 단절 못지않게 문제 되고 있는 것이 그들을 향한 인식이다.


케이크 배달을 하는 정옥에게 갈색 머리의 젊은 남성은 '늙은 년'이라며 대놓고 무시한다. 회색 베레모의 한 남성은 성관계를 맺자며 치근덕거린다.


정옥이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까? 그녀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저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상한 사람들을 피하면서 계속 중얼거리게 되는 '란딩구바안'


란딩구바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마력의 태동>에 나온 영어 단어이다. Landing Bahn. 일본식으로 발음한 영어라서 나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단어일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란딩구바안은 스키점프대의 착지 활주로를 의미한다.


정옥에게 란딩구바안이란? 지금 이 순간 아닐까. 처음 뛰기 전에는 너무나 무섭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되지만 뛰었을 때는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무서울 건 없다. 이미 그녀는 높이 뛰고 있으니까.



나의 이름은


주화영, 레나, 낸시, 연주황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연주황이라는 트로트 가수가 바로 그녀이다.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죽은 지금 그녀에게 남은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가 불린 이름 중 스스로가 붙여준 이름은 단 하나도 없다. 이름은 나를 가리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나의 의견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과연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지 묻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이름만 언급했지만 결국은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제 주화영, 레나, 낸시, 연주황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이름은 없다. 이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를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이제 그녀는 이름이 없는 동시에 어떤 이름이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소설이 전부 재미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았던 단편 소설은 위에 언급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씩 갈등이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상처부터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상처까지. 예를 들면 <나의 이름은>에서 다시 나의 이름, 나 자체를 찾아가는 주인공과 <베스트 컷>에서 학창 시절 왕따 당했던 친구와 회사에서 만나게 된 주인공의 왜곡된 기억이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이미 해결할 수 없게 된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에서 자신이 맡은 학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지만 자신의 정교사 전환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기간제 교사와 <침묵의 벽>에서 혼수상태의 남자친구에게 사고 직후 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묻고 싶지만 알 수 없게 된 주인공이 있다.



잔잔하게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 상황 속에서 나라면?이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겪게 될 아픔과 상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이 책에서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혼란한 우리를 위한 위로의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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