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림만 보아도 감탄을 자아낼 실력을 가졌지만 신사임당은 글 쓰는 것에도 재능이 있었다.
현재 그녀가 쓴 시는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어머니를 그리며' 이렇게 두 편의 시문과 어머니를 생각하는 낙귀 한 구절만이 전해진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사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千里家山萬疊峯(천리가산만첩봉) 천 리 고향은 만 겹의 봉우리로 막혔으니
歸心長在夢魂中(귀심장재몽혼중)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길이 꿈속에 있도다
寒松亭畔孤輪月(한송정반고륜월) 한송정 가에는 외로운 보름달이요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경포대 앞에는 한바탕 바람이로다
沙上白鷺恒聚散(사상백로항취산) 모래 위엔 백로가 항상 모였다가 흩어지고
波頭漁艇各西東(파두어정각서동) 파도 머리엔 고깃배가 각기 동서로 왔다 갔다 하네
何時重踏臨瀛路(하시중답임영로) 언제나 임영 가는 길을 다시 밟아
綵服斑衣膝下縫(채복반의슬하봉) 비단 색동옷 입고 슬하에서 바느질할까?
그녀는 율곡 이이를 잘 키워낸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업적도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 명의 여인, 허난설헌도 있다.
허난설헌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 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이로도 유명하다.
허난설헌은 글재주가 아주 뛰어났는데, 그녀가 8살의 나이에 쓴 글을 보면 아마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시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으로 허난설헌이 신선 세계에 있다는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 상량식(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며 행하는 상량 의식)에 자신이 초대받았다고 생각하며 쓴 글이다.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새벽에 봉황 타고 요궁에 들어가 날이 밝자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도다. 어영차, 남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옥룡이 하염없이 구슬못 물 마신다. 은평상에서 잠자다가 꽃그늘 짙은 한낮에 일어나, 웃으며 요희를 불러 푸른 적삼 벗기네. 어영차, 서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푸른 꽃 시들어 떨어지고 오색 난새 우짖는데, 비단 천에 아름다운 글씨로 서왕모 맞으니, 날 저문 뒤에 학 타고 돌아가길 재촉한다. 어영차, 북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북해 아득하고 아득해 북극성에 젖어 드는데, 봉새 날개 하늘 치니 그 바람 힘으로 물이 높이 치솟아 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 비의 기운이 어둑하다. 어영차. 위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이토록 멋진 허난설헌의 글의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바로 그녀의 유언 때문인데, 그녀의 죽기 전 유언은 바로 "나의 저작들을 모두 불태우라"였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허난설헌의 시는 동생이 허균이 만든 필사본과 친정에 남아있는 시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더라면 얼마나 더 사랑받고 기억되었을지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이 책에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군신관계부터 만난 적은 없지만 예술로 공통점이 있는 사람까지 나온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더 많이 다뤘으면 새롭게 알게 되는 점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 나오면 반가운 마음에 더 집중해서 읽는 부분도 있었다.
살펴보니 나랏일에 관해, 예술에 관해, 상업에 관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교과서에서는 왕의 업적과 전쟁 부분을 강조해서 배우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세종대왕의 업적은? 하고 서술형에는 나와도 허난설헌이 지은 시를 주고 이 시의 제목을 쓰라고 하는 서술형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인물 한 명 한 명에 관해 깊게 살펴본 좋은 시간이었으며, 조선이 아닌 고려 시대나 조선시대 2 편이 나온다면 또 읽어볼 것 같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