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집에 가니 여덟시가 다 되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나서 세탁기를 돌리는데, 색깔있는 빨래를 넣고나서 '흰빨래도 오늘 빨까'를 잠깐 고민했다. 엊그제의 늦은 음주로 몹시 피곤해 일찍 자고 싶었는데, 오늘 빨래를 두 번 돌리면 자는 시간이 그만큼 늦춰지니까...
일단 색깔있는 빨래를 돌리면서 남동생에게 줄 술안주를 만들었다. 참치(따고 보니 고추참치 였다)를 계란과 섞어서 참치전을 부치고, 감자를 갈아 감자전을 만들었다. 감자전 만든지 시간 좀 지났다고 그새 만드는 방법을 까먹어, 여동생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는 거였지? 물었다. 간 감자를 체에 받쳐야지, 위로 뜬 물은 버리고 가라앉은 녹말은 써. 그래, 맞다. 그리고 일전에 팁으로 얻은 계란 노란자까지 넣어서 감자전을 부쳐냈다.
도시락을 먹고 왔지만 배가 고팠고, 그래서 남동생 옆에 주저앉아 함께 참치전이며 감자전을 먹었고, 별 수없이 와인도 마셨다. 그러다 빨래가 다됐고, 세탁기에서 빨래를 빼낸 후에는 바로 흰빨래를 넣었다. 그래, 오늘 한시간 더 늦게 자고, 내일 완전 편하게 널브러지자. 빨아둔 빨래를 널고는 남동생 옆에 다시 앉아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했다. 화면속에서 김장 담그는 아저씨가 나왔는데, 그거 보다가 갑자기 [리틀 포레스트] 다시 보고싶어져서 급다운 받았다. 봤던 영화 다시 보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아, 리틀 포레스트의 모든 음식들을, 그 음식을 만들기 전까지의 과정을 다 다시 보고 싶다! 그렇게 내리 두 편을 다운받고, 자기전에 여름편에서 가장 첫번째 음식을 보고 잤다. 빵이었다.
아무 때고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영상 돌려가면서 조금씩, 음식 하나씩 봐야겠다.
장마철이라 집안이 눅눅해져 곰팡이를 없애고자 여자는 스토브에 불을 떼웠고, 그 불을 그냥 놀리지 않고 거기에 오랜 시간을 들여 빵을 구워냈다. 땀이 났고 집안은 뽀송뽀송 해졌다. 그리고 여자는 혼자 말한다.
장마 따위에 질까보냐.
아, 정말 좋았다.
나도 아무것에도 지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움 따위에 질까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