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전화박스
도다 가즈요 지음, 다카스 가즈미 그림, 이선아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산 속에 엄마 여우와 아기 여우가 살았다. 아빠 여우는 없었지만, 엄마 여우는 매일매일 아기 여우가 커가는 걸 보면서 행복함을 느꼈다. 아기는 엄마 앞에서 재롱을 떨기도 했고 엄마를 끌어 안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기여우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금세 나을거라고 생각했고 그러길 바랐지만, 아기여우는 점점 더 힘을 잃다가 결국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엄마 여우는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기슭의 공중전화 박스에 어린 소년이 찾아온다. 어, 사람이구나. 여우는 소년이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된다. 소년은 소년의 엄마와 통화하고 있었다. 엄마 여우는 그런 소년을 보며, 아 우리 아기 여우가 살았다면 저 소년 또래였을 텐데, 자꾸 아기 여우 생각이 난다. 저 소년도 지금은 엄마랑 떨어져 있구나, 나도 아기 여우를 보지 못하는데. 엄마 여우는 자꾸 마음이 찡해진다.





아기 여우 생각이 너무 간절한나머지 소년의 뒤에 여우꼬리가 달린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 저건 우리 아기처럼 꼬리가 난건가?





소년은 엄마와의 통화를 끊으며 내일 또 전화하러 온다고 말했다. 엄마 여우는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소년을 기다린다. 그래, 정말 소년에게 꼬리가 달려있는지 그것도 확인해보자. 그리고 마침내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은 엄마와 통화를 한다. 그리고 얘기한다.

"엄마, 보고 싶어‥‥‥."(p.31)





소년의 그 말에 엄마 여우는 더 간절히 아기 여우를 떠올린다.





그리고 엄마 여우는 소년의 엄마가 되어, 소년의 말을 들으며 엄마의 말로 대응한다. 소년에게는 차마 들리지 않을 말을. 마치 아기 여우와 통화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 그런데 이를 어쩐담. 소년이 전화를 하러 올텐데, 오늘은 공중전화 박스에 불이 들어와있지 않다. 가까이 가보니 종이 쪽지가 문에 붙어 있는데 글씨를 읽을 수가 없다.





그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공중전화를 걸러왔다가 전화가 고장이라고 말을 한다. 전화를 쓸 수 없어 곤란하다고.





엄마 여우는 애가 탄다. 어쩌지, 소년이 엄마랑 통화를 하고 싶을텐데. 전화기가 고장인 걸 알면 무척 서운해할 텐데. 그런 소년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니, 엄마 여우는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다. 어쩌니, 어쩌니. 그런 간절한 마음이 닿았기 때문일까. 엄마 여우는 공중전하 박스 옆에서 공중전화 박스로 변신한다.





소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러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을 때, 그곳엔 공중전화 박스가 두 개 있었다. 소년은 이해한다. 아, 고장났다고 새로운 전화를 가져다 놨구나. 소년은 밝은 빛이 있는 새로운 전화박스로 들어간다.





소년이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자 엄마 여우도 행복해진다. 그리고 소년의 온기가 그대로 엄마 여우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엄마 여우는 이제 다시는 소년을 볼 수 없음을 알게된다. 소년의 할아버지가 엄마가 있는 도시로 일하러 가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소년에겐 잘된 일인데, 소년은 이제 행복해질 수 있는데, 소년은 이제 엄마를 매일 볼 수 있는데, 엄마 여우는 서운해진다. 이제 다시는 소년이 엄마와 통화하는 걸 들을 수 없구나.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고장난 공중전화 박스에 갑자기 깜빡깜빡하더니 불이 들어온다. 여우는 그 박스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아기 여우에게 말한다. 소년이 엄마랑 함께 살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동안 소년의 통화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덕분에 아기 여우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이 이야기가 슬퍼서 울고 싶어지다가, 그 울음이 결국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엄마 여우로 하여금 깜빡이는 빛을 보게 해준 공중전화 박스 때문이다. 늘 묵묵히 그곳에 있던 공중전화 박스는 제 남은 힘을 온통 쏟아 서운해한 엄마 여우 앞에서 고장난 공중전화 박스에 불을 밝혀주었다. 이에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를 그리워하며 소년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었다. 그래, 잘 견뎌내야지, 꿋꿋해질 수 있었다.


살다가 가끔 아니, 아주 자주,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가 생각나 힘들 것이다. 슬프고 절망하고 삶에 의욕을 잃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는데 왜 안그렇겠는가.


그렇지만 버틸 수 있을것이다. 공중전화 박스처럼 내내 지켜보며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존재들이 삶에 등장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가며 엄마 여우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기대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한없이 슬프기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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