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여름을 기다리면서, 나는 당신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그 순간 내 여름은 지독해졌고, 그것은 끝이었다. 그 아침, 당신으로부터 튕겨져 나오던. 나는 쪼그려 앉아 훌쩍였다. 저녁 나절 내내 걸었다. 종아리가 당기고 발바닥이 욱신거릴 때까지 걸었다. 걷는것 만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매해 여름은 다시 온다. 그리고 다시 간다. 매해 여름은 끝나지만 그것이 여름의 영원한 끝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여름이 그 해의 여름과는 같지 않다. 그 여름은 박살났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여름의 끝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쏟아져도, 쏟아져도 나는 당신을 자꾸 올려놓고
올려놓는대로 당신은 다시 쏟아지고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아니, 내 여름은 끝날줄을 모르는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