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가는 초원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니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무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꽃 피우는 나무에게


이리저리 굽어 꺾였지만 천공(天空)을 향해 뻗어가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평범한 대기 속에 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꽃을 나눠주고 나눠주어도 꽃이 줄어들지 않는 꽃나무가 있었다 어두운 예감이라곤 조금도 없는 색채였다 간혹 나처럼 옹색한 사람에게는 제일 높은 곳의 꽃을 내려주었다 가도 가도 우러르면 꽃나무 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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