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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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과 공포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불행에 빠지지 않을 수위로 자신의 기억들을 재편집한다거나, 적절한 때에 다가와주는 망각에 의존한다거나, 미리 의심하고 미리 이별하고 미리 포기하기도 한다. 혹은 상상함으로써 현실 너머로 건너가기조차 한다.(「거짓말, 당신을 위하여」p.143)-143쪽

엄살하는 자는 엄살의 힘으로 산다. 엄살을 안으로만 삼켜온 자는 엄살하는 자의 엄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엄살하지 않는 자의 귀는 타인의 엄살 앞에서 언제나 오작동 번역기계가 된다. 엄살이 불과한 그것을, 지나치게 안쓰러워한다. 그래서 엄살을 간과하질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로 '나 좀 어떻게 해주라'말하고 싶을 때에만 엄살해왔기 때문이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며 무의식중에 내뱉곤 하는 '으차!'하는 기합과도 같은 그 엄살을. 오랜 숙고 끝에 내미는 구조의 요청으로 해석해버리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엄살하지 못하는 자드은 자기 앞에서 부디, 사람들이 엄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숨도 신음도 푸념도 넋두리도, 이 악물고 견뎌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걸 모으고 모아서 어느 한 날에, 대성통곡을 하는 진풍경을 관음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습관이 된 푸념 말고 진짜 푸념이 귀에 들린다면, 오감을 모아서 그 소리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엄살을 잘하는 자가 언제나 부럽다. 엄살도 기술이 있어서, 가뿐하게 들어주며 토닥거려줄 찬스를 잘 포착하여야 한다. 그러한 찬스를 적절히 -149-152쪽

활용하여 유대의 국면을 점입가경으로 만들어가는 그자가 부럽기만 하다. 엄살하지 못하는 자가 "있잖어......"하고 운을 뗄 때마다 상대방은 "아프다 그러려고 그러지, 내가 더 아퍼" 하고 그 입을 막곤 해왔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그 신음들이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으며, 자신의 불운함을 '참을성'이라고 거짓 해석을 해왔다. 한 번도 제대로 내비쳐본 적 없는 그 엄살이 독처럼 몸에 가득할 대, 누군가의 엄살을 들어주는 척하며, 자신을 포함한 두 사람을 함께 위로한다.(그래서 동분서주, 위로의 달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곤 하지만, 언제나 '겨우 그런 일로 너는 엄살을 떠는 거니' 싶은 울분이 남을 뿐이다.)스스로를 위한 독자적인 위로의 타이밍은 언제고 없다. 늘 그렇게 옵션처럼 누군가의 엄살에 대한 위로의 타이밍에 더부살이를 한다. 평생을, 그렇게.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그 틈을 타서 운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그렇게 해주길 바라왔던 것들을 엄살 잘하는 그자 앞에서 다 해준다. 위로란 언제나 자기한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형태대로 나오는 것이다.(「엄살」, PP149-152)
-149-152쪽

솔직함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려는 것이다.(「솔직함과 정직함」, P.200)-200쪽

당신은 이제 새처럼 자유로워져라. 당신은 이제 나 없이도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잠을 잘 사람. 당신은 이제 나 없이도 그래야만 하는 사람. 당신은 이제 모든 기억과 흔적과 추억과의 인연을 끊어라. 망각하라. 당신은 나로부터 얻으려던 것을 이제 다 얻었노라. 나는 더 이상 줄 것 없는 누추한 몰골이 되었도다. 그렇지만, 개새끼,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해 예의 그 그윽한 눈빛으로 또 '사랑해'라는 말을 할 거면서. 그 사람을 안고 핥고 탐미하다가 허기질 거면서. (「마지막에 하는 '사랑해'라는 그 말」, P.229)-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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